어쩌다, 해방촌
언제부터인지 나에게 편지가 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나랑 친하지 않은 법원에서. 집이 경매에 들어간다는 통지서였다. 사실 몇 년 전부터 편지가 왔고, 난 아래층에 사는 주인에게 편지에 대해 여쭤보았다. 주인은 다 해결했다고, 괜찮다고 했고 집에는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난 불안하긴 했지만,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믿음은 그런데 쓰라고 있는 게 아닌데 말이다. 무엇보다 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하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이기도 했다. 현실주의자보다는 이상주의자였고, 미래에 대해 대비를 하기보다는 현재 하고 싶은 일에 목숨을 거는 철부지 없는 청춘이었다.
이 집에 들어올 때만 해도 난 21살이었다. 부동산 등기부 등본 따위 볼 줄 아는 눈 전혀 없고, 가지고 있는 돈에 맞춰 그저 햇빛이 잘 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택한 집이었다. 부동산을 통하지도 않고, 인터넷으로 찾아서 전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주고 들어왔다. 그래도 등기부 등본은 띄어 봐야 한다는 말은 어디서 들어서 띄어보긴 했는데 내가 뭘 알 수가 있나.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건 등기부 등본이 아주 지저분했다는 것이었다. 그때 함께 일을 하던 프로덕션 피디님께서 이 집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이미 나는 계약을 했고, 이사까지 마친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려하던 일이 터진 것이었다. 매번 집에 대해 공매 통지서가 날아왔었는데 큰 금액이 아니었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쨌든 주인도 그때마다 잘 넘기신 것 같았고.
매번 되풀이되는 습관이 무서운 것이다. 처음에는 의심이 되고, 걱정스러웠어도 몇 번 정도 잘 넘기면 그때 안정감이 생긴다. 그런데 그 안정감이 생기는 순간 일이 터진다. 이건 사기를 치는 사람의 수법과도 통하지 않을까 한다. 몇 번 정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를 준다. 그 신뢰를 이용해서 상대방이 믿고 있을 때 크게 한 방 때리는 것이다.
내가 바로 그랬다. 괜찮겠지, 가만히 있으면 잘 해결되겠지 생각했던 그 마음에 펀치 한 방 제대로 맞았다. 주인이 건물을 담보로 빌린 돈의 이자를 계속해서 내지 못해 집이 경매에 들어갔고, 곧 공판이 있을 거라 했다. 그때서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보증금을 날리고 길거리로 나 앉게 된 것이다.
그전에 수도 없이 날아온 우편물들을 무시했던 결과였다. 위험에 처한 상황을 3자가 계속해서 알려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듣지 않고, 인지를 못한다. 자신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란 확신을 가지고 말이다. 정말 지금 생각하면 한 대 쳐서라도 말을 듣게 하고 싶다. 정신 차리고, 뭐든 준비하라고 말이다. 사태를 빨리 파악하고, 조금만 더 알아봤으면 되었을 일을 그게 귀찮아서 손 놓고 있었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경우에 세입자를 보호해줄 제도가 있어서 배당 신청이란 것을 하면 되는데 그 당시 난 아무것도 몰랐다.
공판이 있기 한 달 전 즈음에 난 그 사실을 알게 되고 그때서야 주변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절망스러운 답뿐이었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난 한 달 동안을 눈에 수도꼭지를 단 것처럼 눈물이 마르지 않는 시간들을 보냈다. 돈 한 푼 못 받고 그냥 쫓겨날 생각만 하니 암담했다.
드디어 법원의 공판이 있는 날, 전에 살던 집 근처에 있는 서부 지방 법원에 갔다. 인정에 호소를 해 봤지만 이미 떠나간 배에게 돌아오라고 소리치고 있는 격이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어도 되는데. 후회해 봤자 소용없었다.
공판 후에 난 또 한 장의 편지를 받았다. 이쯤 되면 내 앞으로 오는 편지가 무서워진다. 부동산 인도 명령서였는데 기한을 줄 테니 집을 비워달라는, 자의적으로 나가지 않을 대는 강제로 짐을 뺄 수도 있다는 아주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위기에 닥쳤을 때 나오는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당시의 나는 매우 많이 쭈그러져 있었다. 만약 지금 그런 일을 당했더라면 조금은 여유 있는 모습으로 대처할 수 있었을까. 상상력은 그런데 쓰라고 아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난 최악의 상상을 키워가며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슬퍼만 했다.
그때 더 나를 힘들게 했던 건 같이 살고 있던 친언니의 반응이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언니와 함께 살고 있었고, 언니는 이미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언니는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상태였다. 어떤 방법이라도 찾아볼까 해서 백방으로 뛰고 있는 나에게 언니는 어떻게 해도 받을 수 없는 돈이라며 그냥 포기하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아주 태평해 보이는 언니를 보며 난 화가 났고, 그 태도로 인하여 점점 깊은 골이 쌓여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무너질 때 큰 걸로 무너지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언니가 임용에 합격하자마자 분리를 했었어야 했는데 서로의 신상에 변화가 자연스럽게 생기면 어떻게든 정리가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다. 난 그렇게 두 배의 상처를 받았고, 관계는 끝이 났다.
경매에 들어간 집을 누군가 샀다고 했다. 부동산 인도 명령서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는데 대리인이라는 사람이 연락이 왔다. 지방에서 아빠가 올라오셨고, 아빠와 함께 그분을 만나러 나갔다. 굉장히 무서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푸근한 아저씨의 모습에 한시름 마음을 놓고, 본격적으로 집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보증금은 어쩔 수 없이 잃어야 했지만, 다행히 일부는 인정을 해 주었고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잃은 부분에 대한 보증금을 더 주고 새 주인과 계약을 다시 하자는 것이었다. 최선의 방안이었고, 그렇게라도 배려해 준 집주인에게 감사했다. 이게 한 달 여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우울의 극치를 달했던 그 기간에 대한 결과이다. 그리고 이 결과가 내가 지금껏 해방촌에 살 수 있게 만들어 준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만약에 경매 사건을 겪지 않았더라면 내가 해방촌에 계속 살고 있었을 까? 가족들과 함께 산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해방촌에서 살 수 있었을까? 지금과는 또 다른 삶의 변화가 있었겠지? 그러면 결혼을 좀 빨리 할 수 있었을까? 별 생각이 다 든다.
어쩌면 그 경매 사건으로 인해 내가 해방촌에서 계속 살 수 있지 않았나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 순간에는 전부인 거 같은 문제도, 지나고 나면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깨닫게 되는 것! 그 일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나저나 이번에는 미뤄왔던 부동산을 꼭 공부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