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구하기

어쩌다, 해방촌

by 조헌주

나에겐 동거인이 있었다. 혈혈단신 서울에 올라와 혼자 살 때는 외로움이 많이 느껴졌다. 그때 사실 공부를 하러 서울로 온다는 언니의 말에 조금의 의지가 되었던 건 사실이다. 꽤 오랫동안 잘 지냈다. 그런데 경매 사건 이후, 아니 그전부터 서서히 쌓였다고 봐도 좋겠지. 같이 사는 동거인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불편은 불만으로 표출이 되었고, 사소한 것으로 우리는 서로 골을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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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순간 상대를 배려해서 내가 했던 당연한 행동들에 ‘왜 내가 내 집에서 숨죽이면서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예를 들면, 친구랑 통화를 하는데 동거인을 배려해서 추운 겨울에도 밖에 나가서 받고, 언제나 쓰레기를 버리는 건 나라는 거다.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일에 태클이 걸리는 순간, 그 사람과 예전 같은 관계는 유지하기가 힘들어진다. 서로 이해하고 맞춰가려는 노력이 없다면 말이다.


언제부터인지 난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졌다. 정확히는 동거인과 같은 공간에 있기가 싫어졌던 거다. 사실 언제부터 감정이 쌓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지점에서 폭발했는지는 알 것 같다. 그리고 난 친구네 집을 떠돌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생각난 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다.

너무 싫을 땐 잠시 거리를 갖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혼자만의 공간이 절실했다. 그래서 난 본격적으로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이런 경험을 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이사를 간다는 건 너무 큰 일이고, 그래 잠시 있을 셰어 하우스가 좋겠다.

먼저 네이버 카페에 있는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와 외국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https://seoul.craigslist.org/ 란 사이트를 많이 활용했다. 집을 알아보면서 이 기회에 외국인들과 함께 한번 살아보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아닌 남이랑 살아 본 적 없는데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갑자기 신이 나기 시작했다. 여러 집들을 보다가 그중 세 개의 목록이 만들어졌다.


1. 해방촌 언덕에 자리 잡은 햇빛 잘 드는 큰 방


집주인은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강아지와 함께 살아본 경험이 있기에 괜찮을 거 같았다. 집은 언덕 위에 있는 2층 주택 집이었다. 바로 앞으로 미군 부대가 보였고 햇빛도 잘 들어왔다. 방도 꽤 크고 마음에 들었다. 하우스 메이트는 나보다 나이 많은 여자분이었고 중요한 건 내 키의 반 정도 오는 반려견과 함께 한다는 것이었다. 털갈이 시즌에는 털이 엄청 날린다고 했다. 아!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난 괜찮지 않았다. 방이 아쉽지만 패스!


2. 대문이 있는 단독주택 1층에 있는 작은 방


1번 집보다 올라가지 않는 언덕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었고 앞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어 조용했다. 방은 세 개였고 거실도 잘 사용하지 않는 듯했다. 집주인은 학생이었고 이태원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낮에는 집에 없다고 했다. 다른 방에는 자신과 같이 일을 하는 오빠가 살고 있다고 했다. 나쁘지 않았다.


3. 경리단에 위치한 지하 방


위 두 집은 네이버 카페에서 찾은 방이고, 이 집은 craigslist에서 찾았다. 외국인들과 함께 살아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일 거 같아서였다. 방은 세 개였고 필리핀 여자 둘이서 살고 있었고 게스트 방을 내놓은 것이었다. 앞에 바로 공원이 있었다. 친구들은 아주 친절했으나 방도 작도 답답한 느낌이 들어 패스!


이렇게 정리해 보니 내가 제일 들어가고 싶었던 방은 2번인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2번 방에 친구가 들어올 거 같다면서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이렇게 되니 그 집이 더 아쉬워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난 다른 집을 알아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 괜찮은 가격으로 나온 곳이 있었다. 여긴 셰어하우스가 아닌 아예 혼자 사는 집이었다. 이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화장실 위 창문으로 하늘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들어오면 절대 가볍게 나와서 살 수 있는 수준이 안되리라는 것을 인지했다.


집을 알아보면서 재미있기도 했지만, 반대로 지치기도 했다. 내 마음에 딱 드는 집을 구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가 만족이 되면, 다른 하나가 걸리는 게 있다. 그럴 때는 내가 제일 중요시하는 우선순위대로 결정하면 된다. 그리고 자꾸 생각이 나면서, 마음이 나도 모르게 기울고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여러 가지 조건을 봤을 때 두 번째 집이 괜찮을 거 같았다. 하지만 우선순위에서 내가 밀려났으니 포기해야 한다. 다른 집을 더 알아봐야 하나? 그냥 살아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무렵 두 번째 집에서 연락이 왔다.


들어오기로 한 친구가 오지 못하게 됐어요. 들어오실 수 있으세요?


올레! 간절히 원하던 직장에 면접을 보러 가 합격 문자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비록 예비 1번이었지만, 합격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난 언제나 끌어당김의 법칙을 믿는다. 내가 원하는 것을 계속 생각하고 있으면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그것이 나에게로 온다는 것! 만약 나에게 오지 않았더라도 실망하지 않는다. 그건 분명 더 좋은 것, 나에게 맞는 것이 오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제안에 두 번 생각할 이유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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