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어쩌다, 해방촌

by 조헌주


이사를 하는 날이다. 내가 이사를 갈 곳은 대문을 열면 주방과 거실이 바로 나오고 방이 세 개가 있는 구조이다. 무엇보다 오롯이 혼자만의 공간이 있는 것이 좋았다. 다시 찾게 된 나의 공간. 방엔 장롱 하나가 있는 게 전부였다. 사실 이사라고 할 것도 없었다. 내 짐이 있는 집은 그대로 있었고, 난 몸만 빠져나와 잠깐 동안 나의 공간을 월 30만 원에 빌린 것이다. 원래 살던 집에서 7분 정도만 걸으면 되는 거리였기에 난 잘 때 덮을 이불과 베개만 가지고 나왔다. 필요한 것들은 조금씩 옮길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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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친구와 소꿉놀이를 하면서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러 물건들을 가져다 놓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우리만의 주방이라고 하며, 아주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비록 지금의 아이들처럼 ‘시크릿 쥬쥬의 주방’, 이나 ‘샤워 룸’처럼 미니어처의 핑크 핑크 한 아기자기 함은 없었다. 다분히 야생적이고 자연친화적인 공간이었지만, 우리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공간에 대한 집착은 시작되지 않았나 한다.


이사 첫날, 이불만 가지고 가서 바닥에서 잤다. 집은 1층이었다. 바닥에서 찬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침대가 필요할 것 같다. 집에 있는 매트리스를 가져오자니 일이 너무 커질 것 같고, 주변에 이사하는 친구들의 중고 매트리스를 노리기로 했다. 인터넷을 통해 저렴한 가격에 침대를 판다는 것을 봤다. 거리도 가까웠다. 침대를 보러 가서 난 중고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 난 텔레비전과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을 중고매장에서 구매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고장이 났다. 중고는 AS도 힘들다. 그 이후 난 생각을 바꿨다. 이제는 어떤 물건이든 가급적 새 물건을 산다. 그리고 난 어떤 물건이든 한 번 사면 오래 쓰기도 한다. 새 물건을 내 방식대로 접하는 것이 좋다.


어떤 공간에 머물 때 ’ 얼마나 있겠어. 대충 있지 뭐.‘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나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으로 살았다. 나중에 좋은 걸 쓰겠다며 지금 당장의 행복을 유예시킬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계속 지금, 현재 좋은 것을 쓰지 못하게 만든다. 미래는 예측할 수가 없다. 잠깐 있으려고 했던 생각이었는데, 계속 있게 되는 상황도 생기는 거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만끽할 수 있는 행복을 유예하면 안 된다.


난 이제 잠깐을 거주하더라도 나에게 최선의 분위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려고 한다. 지금 제일 좋은 것, 날 행복하게 하는 것을 먼저 취하려고 한다. 그럼 매일이 그렇게 채워진다. 잠깐을 있더라도 나의 최고의 공간을 만들고, 매 순간 좋은 기분을 느낀다. 그때 느꼈던 공기와 기분은 두고두고 기억되어 나중에 기억할 수 있는 좋은 추억이 된다.


그래서 난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는 나의 공간에 대해 투자를 아끼지 않기로 한다. 처음에는 집에서 쓰던 것들을 하나씩 옮기려고 했지만, 가져오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차라리 새로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배송 시스템이 있으니까. 난 인터넷 쇼핑으로 침대, 책상을 주문하고 있었다. ‘그래, 잠깐 있더라도 새 기분으로 있자.’ 그렇게 또 내 공간은 금세 물건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새로 간 집은 혼자 사는 게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조용했다. 내가 생각한 셰어하우스는 가끔 각 방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술도 마시고 친하게 지내는 거였는데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 나와 계약을 했던 집을 관리하는 솔지 외에 다른 방에 사는 친구는 얼굴도 보지 못했다. 그는 새벽에 아주 조용히 왔다가 아침에 바람처럼 나가곤 했다. 이들은 식사도 집에서 먹지 않았고, 잠만 자는 듯했다. 어쩌면 나에겐 이게 더 좋은 환경일 수도 있었다.


해방촌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고바우 슈퍼, 몇 년 전만 해도 그 일대가 해방촌의 가장 중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은 해방촌 신흥시장 쪽으로도 범위가 많이 넓혀졌다. 매일 저녁 시간이면 사람들이 줄 서 있는 풍경이 익숙한 보니스 피자는 예전에는 부동산이었다. 고바우 슈퍼는 지금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같은 지역에 산다고 하더라도 집의 위치와 구조에 따라 걷는 길이 달라지고 매일 마주치는 이웃이 달라진다. 같은 해방촌이라고 해도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달랐다. 예전에는 직진으로 올라갔던 길을 이제는 왼쪽 골목으로 올라온다. 전에 살던 곳으로 갈 때와 이곳으로 올 때의 기분이 달랐다.


내 살림살이는 원래 집에 있었고, 난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있었기에 식사도 거의 밖에서 해결했다. 오히려 여행지에서 느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카페에 오랜 시간을 있다 보니 해방촌에 사는 이웃들과도 교류가 많아지고, 얘기를 몇 마디 나누다 보면 금세 친구가 되곤 했다. 그중엔 에린이란 친구가 있다.


에린은 중국에서 일을 하다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친구였다. 대구 출신인데 캐나다에서 대학을 나오고, 그 이후 스페인에도 오래 살았다고 했다. 이 친구는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까지 3개 국어를 구사했다. 한국에 와서 경리단에 집을 구한 이 친구는 처음 사람을 만날 때 낯을 가리는 나와는 달리 친화력이 좋은 친구였다. 동갑이기도 했고 가까이 살아서 우린 급속도로 친해졌다. 내가 이사를 가고 나서 알게 된 첫 한국인 친구이기도 했다.


어느 날, 에린은 자신이 우연히 경리단에서 영국 왕자를 만나 교제를 시작했다고 했다.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곧 결혼을 할 거 같다고도 했다. 영국 명문 가문 출신에 영국에서 명문 학교를 나왔다고 하는 그! 본 적은 없지만 모든 게 갑작스러운 상황에 에린이 좀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에린은 그 남자한테 사기를 당했다고 말했다. 어느 날,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좀 의심스러웠는데, 에린이 아는 언니를 통해 그 남자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고. 그 남자는 영국이 아닌 나이지리아 사람이었고, 심지어 결혼을 한 상태였으며 에린한테 접근한 건 결국 돈으로 사기를 치기 위함이었다. 결국 들통 날 사기를 이 좁은 동네에서 치고 다니다니! 그 후 에린은 소리 소문 없이 연락이 끊겼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SNS에서 그녀를 우연히 볼 수 있었는데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은 것 같았다.

사람은 자신과 맞는 곳을 찾아 평생 유랑하면서 살다가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인해 정착을 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환경이 자연스럽게 변하는 사람도 있다.


난 지금도 그대로 해방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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