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날들의 연속이다. 분명 나의 삶인데, 나의 삶이었는데, 삶은 나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고, 나는 그저 밀려오는 상황에 자꾸만 적응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검사를 받았고, 갑자기 큰 병원으로 갔고, 갔더니 수술을 해야한다고 해서 수술을 했다.
간단한 수술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고, 나는 전방저위절제술이라는 대장(직장)절제술을 받고 하루아침에 장루환자가 되었다.
'장루'와 '환자'. 둘 다 도무지 유쾌할 리 없는 단어의 조합이다. 외과 환자들이 주를 이루는 간호간병통합 병동에서도 나는 단연 가장 어린 환자였다. 안 그래도 낯선 병실 생활에, 옆구리엔 장루까지 달고 있었다.
입원 중에는 조무사님들이 수시로 오셔서 내 장루를 체크하고 비워주셨다. 하지만 그 당연한 처치조차 나에게는 매번 높은 벽을 넘는 일이었다.
빵빵하게 차오르는 초록색 액체가, 그리고 (회복의 징후였지만) 나중엔 묽지만 적당히 점도가 있는 변이 되어서 채워지는, 그래서 정말 변 냄새가 나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내 생리현상의 부산물 타인에게 비워달라고 요청하는 일은 곤욕이었다.
처음엔 수치심이었고 나중에는 미안함이었다.
다 큰 성인이 나의 변을 비워달라고 하는게, 그리고 묘한 노폐물의 냄새가 나는 게 부끄러웠고
그리고 나의 몸 속에서 나온 노폐물을 아무리 직업이라지만 타인에게 비워달라고 요청하는게 죄송했다.
다 큰 성인이 자신의 변을 비워달라고 말해야 하는 부끄러움, 그리고 아무리 직업이라지만 타인의 몸에서 나온 노폐물을 묵묵히 처리해 주는 이들에 대한 죄송함. 그 묘한 냄새가 공기 중에 퍼질 때마다 나는 자꾸만 도망가고 싶었다.
하루 빨리 집에오고 싶었는데, 마침내 집에 와 보니, 이제 이 놈의 장루가 나의 '미션'이 되었다.
퇴원 전, 장루 교체 교육을 받았고 스스로 해보기도 했지만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나는 아직 묽은 죽을 먹어야 했고, 하루에 몇 번을 비워야하는 지 아직 (내 몸이지만) 아무것도 모른다.
게다가 배 밖에 나와있는 소장(정확히는 회장)은 부어오른 상태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붓기가 가라 앉는다고 했다. 그 말인 즉슨, 장루 주머니 사이즈를 교체할 때마다 매번 다르게 잘라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잠은 어떻게 자야하지?
나는 옆으로 자야지만 잠이 오는데 장루를 달고 옆으로 누울 수 있을까?
자다가 장루가 터지면 어떡하지?
모든 걱정을 끌어안고, 마침내 처음으로 내 손으로 직접 장루를 비우던 날,
냄새가 날까 물티슈로 장루 주머니 입구를 몇 번이나 닦고, 장루 비우기라는 작은 미션을 성공해 낸 날.
아무것도 아닌 그 작은 일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에 휩싸여 나는 나와 10주간 생활해야할 장루에게 다른 이름을 붙였다.
이른바 나의 작은 응가주머니 미니풉(Mini-Poop). 미니풉 라이프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