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과 황금 사과, 샴페인과 파피요트

N.V. Guy Charlemagne Grand Cru

by aalto

2025년, 1월 11일 저녁, 뉴욕 브루클린에서.



J: 음, 기포도 좋네.

G: 그러네, 두 번째 잔은 또 괜찮네. 근데 샴페인은 한 번도 이렇게 음미해서 마셔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매번 그냥 "맛있다, 이거는 기포가 좀 있네, 산미가 좀 있네" 이러고 말지 이렇게 레드와인을 시음하듯이 샴페인을 시음해 본 적은 없어.

J: 한번 해볼까?


(짠)


G: 약간 꿀 향 같은 게 나. 너무 신기하지 않아? 다 포도로 만드는 건데 어떻게 이런 다양한 냄새가 나는 건지.

이 샴페인도 길이감을 한 번 느껴봐 봐. 얘도 길다. 신기하네.

J: 음, 그러네. 이거 진짜 맛있다. 이 꿀 향이 되게 좋아. 꿀에다가 꽃 향이 살짝 섞였는데.

G: 약간 아카시아 꿀?

J: 응 근데 끝맛에 약간 산미가 있어. 마지막이 되게 상큼해.

G: 맞아. 정확해. 나도 똑같이 느꼈어.


G:

파도가 철썩철썩 치는 바닷가의 레스토랑. 화창하지만 덥지 않은 날씨 아래서 마시는 샴페인과 브런치. 식빵과 꿀.

Notes: 아카시아꿀, 부드러운 기포. 끝맛에 약간의 산미.


J:

행복한 주말 저녁, 사랑하는 사람, 막 나온 파피요트와 달콤한 식사.

Notes: 꿀향, 배꽃향, 산미.


G: 근데 나는 이 와인의 인상적인 노트는 꿀 향인 것 같아. 꿀 향이 진짜 많이 나.

J: 꽃 향도 좀 나.

G: 그래서 아카시아 꿀이라고 한 거야. 아카시아가 꽃이잖아. 근데 내가 아카시아 꽃 향을 맡아본 적이 없어서 이게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어. ㅎㅎ 어쨌든 뭔가 꽃 같은 꿀 향이 나.

J: 되게 좋아. 감칠맛이라고 해야 되나 담백함이라고 해야 되나. 황금 사과 같기도 해.

G: 오 맞아! 사과도 맞는 표현이겠다. 이게 향은 꿀인데 질감이 되게 가볍잖아. 기분 나쁜 단맛이 없고 상쾌한 단맛이 있어. 오빠가 황금사과라고 한 게 맞는 표현인 것 같아. 색도 황금빛 사과 색깔과 같아. 근데 황금사과 하니까 그리스 로마신화에 황금사과 이야기가 생각나네. ㅎㅎ

방어회, 연어 파피요트와 함께 마신 샴페인

J: 근데 이 와인은 진짜 주인공은 아닌데 너무 완벽한 조연이다.

G: 왜 주인공은 아니야?

J: 음식이랑 너무 잘 맞고 딱 자기 역할을 너무 잘해, 샴페인의 역할을. 기분도 좋아지고.

G: 약간 오스카에 와인 주연상이 있다면 수상할 것 같은? ㅎㅎ

J: 음식보다 더 튀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고. 페어링이란 게 진짜 이럴 때 좋다는 말을 쓰는구나라는 느낌이 들어.

G: 난 내 기억상으로 가장 맛있게 먹었던 샴페인 안주는 생굴에다가 연어알을 올린 거였어. 그거 하나 먹고 샴페인 한 번 먹고. 난 그게 제일 맛있었어.

예전에 Bollinger 샴페인과 함께 먹었던 연어알과 딜을 곁들인 생굴

(중략)


G: 내가 내 인생에 와인 셀러를 갖게 될 줄이야. 오빠 덕분이다.

J: 나도 너 덕분에 맛있는 와인을 많이 먹고 있는 것 같아.

G: 난 오빠가 놀라워. 나보다 와인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감사하기도 하지. 만약에 오빠가 와인을 싫어했다면 불행의 시작이었을 텐데.

J: 와인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G: 있을 수도 있지. 왜냐하면 와인에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 것 같거든. 사실 되게 재밌는데. 좀 어렵긴 해도 재밌어. 그리고 와인을 마시면 또 하나 좋은 점은 와인과 함께 기억이 같이 저장된다는 거야. 처음에는 전에 마셔봤던 와인이 잘 기억 안 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기억을 잘하게 되고 같이 마셨던 음식과 시간들이 함께 떠올라서 좋아.

J: 기억 못 할 때도 많던데? ㅎㅎ

G: 못할 때도 많지. 그렇지만 내 말은 기억하는 능력이 제로에서 올라간다는 거지. 다 기억하진 않지만 이렇게 저녁 식사에서 제대로 된 한 병을 깠을 때는 기억이 잘 나는 것 같아. 근데 이런 와인들을 만약에 우리가 기록 안 하고 그냥 팡팡 터서 마셔버렸으면 그냥 지나가는 와인 중 하나였을 것 같아.


(짠)


G: 근데 생각해 보니까 나 이번에 샹빠뉴도 다녀왔었네.*

J: 그래?

G: 6월에 부르고뉴에서 파리 올라오는 길에 시간이 좀 남아서 샹빠뉴를 들렀어. 근데 그때 당시에 내가 너무 체력이 떨어진 상태여서 많이 못 즐겼어. 아빠는 계속 설명을 계속해줬는데 귀에 잘 안 들어왔어.

작년 6월에 아빠와 함께 다녀온 샹빠뉴 투어

*당시 사진들을 찾아본 결과, 놀랍게도 오늘 마셨던 생산자의 와이너리 앞도 다녀왔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G: 이거 지금 한번 찾아보자. 우리가 지금 먹는 와인이 어디 와인인지 한번 찾아보자.

샹빠뉴 지방의 Côte des Blancs 지도

G: 우리가 지금 이 마시는 샴페인은 메닐 쉬르 오제(Le Mesnil-sur-Oger)라고 그랑크뤼(Grand Cru) 밭이야. 혹시 랭스 대성당 들어본 적 있어?

J: 응 들어봤어.

G: 랭스 대성당이 있는 프랑스의 랭스Reims라는 도시의 밑에 지방으로 샹빠뉴 지방이 형성돼 있어. 우리가 지금 마시는 곳은 여기 꼬뜨 데 블랑(Côte des Blancs)이야. 프랑스어로 꼬뜨는 언덕이라는 뜻이고 블랑은 화이트라는 뜻이야.

J: 화이트의 언덕?

G: 그렇습니다. 그런데 나 방금 완전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어.

J: 뭔데?

G: 모에샹동이라고 사람들이 진짜 많이 마시는 대중적인 샴페인이 하나 있거든. 그리고 뵈브 클리코, 크룩 등 유명한 샴페인들이 다 LVMH 계열사들이었어.*

J: 그렇구나.


* 샹빠뉴 지방에서는 대형 메종 생산자가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스틸 와인에 비해 제조 및 저장의 원가가 상당히 비싼 샹빠뉴 지방은 대규모 설비를 갖추고 대량생산을 하지 않으면 이익을 내기 어렵습니다. 또한 판매에 있어 거액의 마케팅 비용의 투자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대형 메종은 많은 이윤 추구를 위해 그룹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출처: 김만홍 저자, '12일 만에 끝내는 프랑스 와인의 모든 것')



(중략)


G: 파피요뜨 왜 이렇게 맛있지. 이 해산물 향과 올리브 향과 소금 후추와 레몬의 향이 진짜 절묘하네.

J: 맛있지. 말해 뭐 해.

G: 너무 맛있다. 와인도 완벽했지만 음식도 안주도 완벽했던 것 같아. 방어는 좀 아쉬웠지만 파피요트가 완벽했어.

J: 완벽한 한 끼였다.

G: 우리 이제 마지막 잔이야. 마무리하자.


(짠)


연어 파피요트

Screenshot from Viv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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