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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티 Nov 30. 2023

부모는 필요하면 덮고 더우면 발로 차는 이불

90년대생 엄마의 첫 육아일기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사실 시어머니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멀리 떨어져 살기도 했지만 가까이 이사를 오고 나서도 맞벌이라는 이유로 왕래를 자주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가 임용고시 공부를 하느라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이 계획을 미루니 더더욱 서로 대화할 일이 많이 없었다. 그렇게 지내도 사이가 나쁘다거나 하지는 않았고 서로 불편하게 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지내온 것 같다.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부터 다들 그렇겠지만 시댁이랑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조리원에서 돌아온 날부터 산후도우미가 오기 전까지 주말 이틀 동안 남편과 내가 아기를 케어하기가 서툴까 봐 어머님이 청소라도 도와주시겠다고 와주셨다. 아기가 태어나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배워야 했던 우리는 어머님의 도움이 감사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사실 이런 상황이 엄청 불편할 것 같았는데 막상 도움을 받으니 몸도 마음도 편했다. 그렇게 서서히 어머님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어머님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지내보니 어머님과 나는 잘 맞는 구석이 많았다. 오히려 친정 엄마보다 편할 때도 있었다. 엄마에게 이야기하면 원래의 상황보다 더 많이 걱정을 해서 내가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많았는데 어머님은 현재 상황 그대로만 바라보시고 고민해 주시니 내가 더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아기에 대해서 너무 자랑하고 싶어도 막상 자랑할 곳은 많이 없었는데 어머님은 가족이니까 아기의 작은 변화도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어떤 분들은 이런 게 불편할 수도 있다지만 나는 나이가 어린 사람보다 오히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어머님과 매일 아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다.


내가 힘들까 봐 아기가 신생아 때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씩 와서 내게 자유시간도 주시고 반찬도 해주시는 어머님. 아기가 4개월이 된 지금까지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오신다. 손주가 보고 싶어서도 있겠지만 내가 힘들까 봐 오시는 거라고 하니 마음이 더 쓰이고 감사하다. 와서 집안일도 많이 도와주시는데 그래서 어머님과 자연스럽게 살림 이야기도 주고받게 되었던 어느 날이 있었다. 그날 어머님께서는 집에 가던 길에 카톡으로 나에게 "민지가 살림하는 거 보면서 나도 많이 배우고 간다."라고 남겨주셨다. 어른이 나에게 배운다니. 어머님에게서 좋은 엄마의 모습을 많이 배우게 된다.


어머님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반찬을 해오시는데 보니까 그것이 곧 어머님의 기쁨인 듯했다. 어머님과 잘 맞으려고 그랬는지 어머님의 반찬이 내 입맛에 너무 딱 맞아서 맛있다고 말씀을 드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어머님 반찬이 없어서 냉장고가 텅텅 비었다라고 망언(?)도 했는데 어머님이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너무 좋으셨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친해지려고 해도 친해질 수가 없는데 어머님과는 지난 6년간의 세월 동안 어색하게 지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이젠 친해졌다.


지내보니 남편과 어머님이 많이 닮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남편과 친구처럼 잘 지내는 편인데 그런 부분이 어머님을 대할 때도 나타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힘든 점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것, 맡은 일이 있으면 끝까지 책임지는 것, 수가 틀리면 바로 포기해 버리는 것, 어떤 상황이든 긍정적으로 웃어넘기는 것,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꼭 해내는 것. 이 모든 것이 남편과 어머님의 닮은 점이다. 우리 은율이도 나랑 이렇게 닮아갈까. 은율이는 나의 어떤 점을 닮을까. 좋은 점을 많이 물려주고 싶은데 그렇게 하려면 먼저 내가 나의 장점을 잘 알고 있어야겠지. 나의 장점도 잘 써 내려갈 수 있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오늘도 어머님과 통화를 했는데 어머님이 내가 있어서 우리 은율이가 있다고 하신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울컥해서 눈물이 왈칵 나올 뻔했다. 남편의 말에도 나는 종종 이렇게 위로를 받는데 이제는 어머님께도 위로를 받고 있다. 모자가 하는 말도 참 닮았다.


생각해 보니 우리 엄마도 엄마의 시어머니인 우리 할머니와 사이가 각별했다. 잘 맞기도 했겠지만 엄마가 남편인 아빠보다 시어머니를 더 좋아하고 따랐던 것 같다. 어쩜 이런 부분까지 엄마와 닮는 건지 참 신기하다. 이런 게 가족인가 보다.


지금까지도 아이를 키우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내가 집에서 건조기 없이 살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어머님이 안쓰러우셨는지 오늘 건조기를 사주시겠다고 한다. 내가 좋아서 하는 절약이고 살림인데 어머님은 그 모습을 보고 매번 적잖이 충격과 감동을 받으시는 듯하다. 검소하고 소박하게 지내는 나의 모습이 좋으면서도 안쓰러우신가 보다. 청소포로 청소하는 게 편해서 그렇게 지내왔는데 청소기를 사주시고 알뜰폰으로 요금제를 바꿔서 통화량이 부족하다고 하니 요즘 그런 애가 어딨 냐면서 너무 기특하다고 하신다. 모든 게 잘 보이려고 하는 행동이 아닌데 하다 보니 자꾸만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자꾸 쓰다 보니 내 자랑 같지만 아무튼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사이는 어떻게 해도 그렇게 되나 보다.


건조기 없이도 잘 살아왔는데 아기랑 있다 보니 먼지가 꽤나 신경이 쓰이고 특히 수건에서 나오는 먼지는 빨래를 아기 옆에서 갤 때 참 신경이 쓰였다. 이런 마음을 알아채셨는지 우리 집에 오셔서 우리의 상황을 자주 보셔서인지 어머님이 계속 마음이 쓰이셨나 보다. 그렇게 우리 집에도 건조기가 생겼다. 항상 내가 말하기도 전에 미리 내 필요를 채워주시는 어머님께 감사하다. 앞으로 나도 은율이에게 그런 엄마가 되기 위해 또 어머님께 그런 며느리가 되기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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