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깝다!
아빠 쉬는 날
지민은 꺄륵꺄륵 웃으며
“뚀! 뚀!(또! 또!)”를 외치고,
남편은 혹한기에 땀을 뻘뻘 흘리며 겉옷을 벗어젖히곤
딸의 욕구를 모두 채워주었으며,
나는 파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미소만 띄워 보내며
이들을 지켜보았다.
아빠, 파이팅!
170103
잠시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다르게 성장한다.
내 눈에 완전히 다 담기도 전에
스르르 빠져나가
아기는 제 몫의 성장을 일구어내고야 만다.
아깝다!
170104
눈물의 이유
온종일 아기와 붙어있으면서도
순간순간을 꽉 움켜쥐고 싶다.
제발.
눈이 부신다.
가슴 한가운데가 지글거린다.
필요하다면 내 심장 따윈
너와 몇 번이라도 바꿀 수 있다.
*
엄마가 자주 눈물이 나는 이유는
사랑으로 눈 부시고 가슴 저려서일까?
아니면,
내 존재가 지워지는 것을
애도하기 위함일까?
170115
지민 첫 그림
엄마, 아빠를 그린 거란다!
그 어떤 명화보다 더 아름답다!
170122
액땜(이길...)
지민 엄지발가락 골절
갑상선이 부실한 에미가
방 안 소파에 누워서
빌빌 거리고 있었다.
아기는 옆에서 꽁냥꽁냥
앙증맞게 잘도 놀았다.
갑자기 곶감을 달라고 외쳤다.
내가 일어날 새도 없이,
타다다다!
쏜살 같이 달려 나갔고,
곧 둔탁한 소리가 났다.
나는 쏜살보다 더 빠르게 일어났다.
지민은 절망에 휩싸인 포즈로 엎드려
대성통곡을 예고하는
깊은 호흡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올해는 이제 좋은 일만 남은 건가?
170130
엄마 따라쟁이
그러니까 내가 더 더
많이 웃어야지!
170202
평온한 마음
설거지에 집중하고 있는데
“후드득”
싸한 효과음에 고개를 돌렸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지민은
‘저 사람이 왜 저러나.’
하는 표정으로
하던 일을 계속하며 나를 보고 있었다.
"하하하! 괜찮아!
우리 지민이 우유를 아주 박력 있게 먹고 있었구나!
하하하하하하하!!!"
우유를 엎지른 것만으로
꼭지가 돌 것 같은 날도 있지만
오늘은 아니다.
아주 아주 오래간만에 컨디션이 좋다.
‘평온한 마음’이라는 건
고통 후 날카롭게 찾아온다.
더 바랄 것이 없는 날이다.
지민과 함께 자주 웃었다.
170205
아빠 생각
아빠 자리에 ‘아빠’를 앉힌다.
아빠, 아-
자기가 맛있게 먹던 딸기를
‘아빠’에게 건넨다.
뽀로로는 뽀요요고,
패티는 빼띠고,
루피는 윱삐고,
에디는 에디다.
포비는 ‘아빠’다.
처음부터 그랬다.
아빠 생각이 나나보다.
나도 남편이 필요하다.
170208
아, thㅣ러
언어구사능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아,thㅣ러!(아, 싫어!) / 쪼아 / 다른 거 / 뚀(또)
귀짢아(귀찮아) / 사탕 / 떡국 / 공주 / 레잇꼬(Let it go)
떠져쪄(떨어졌어) / 어디 / 모지 / 모야 / 어듀워(어두워)
무서(무서워) / 귀여어(귀여워) / 이뻐 / 썬샘(선생님) / 느네(그네)
지민의 발 부상으로 바깥 활동이 자유롭지 못해서 배로 힘들지만,
덕분에 대화할 시간이 많이 생겨서 말도 더 빨리 느는 것 같다.
‘대화’,라고 하기엔 나 혼자 주절거리고 쇼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아이의 쌩쌩한 청각을 자극하기엔 충분한 것 같다.
삭신이 쑤시지만 뿌듯하구나!
170209
내 생일
아주 많이
힘들었던 날.
온몸이 자근자근 아파서
내 팔 한 짝 들어 올릴 힘도 없던 날.
널뛰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화장실에 들어가 펑펑 숨죽여 울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민을 향해 방긋 웃어 보였던 날.
그러다 결국
유독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는 지민에게
격분해서 화를 마구 퍼부었던 날.
*
해맑은 얼굴로 퇴근한 남편이 생일상을 차리고,
연애할 때 딱 한 번 받아봤던 손 편지를 건넸다.
흑
나도 이 생에
남편의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려보는구나.
근데 여보,
오늘 나는
내가 싫어.
17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