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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Mar 23. 2024

여리고 영롱한 시간들

낯설고 막막해서


늦은 아침

거실에서 아이와 마주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지다가

문득 그 순간이 낯설고 막막해서

광활한 우주 공간에 아기와 나만 남겨진 것 같은,

실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지금 내 앞에 살아 움직이는 이 작고 여리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진정 내 안에서 나온 생명체인가.


“지민이는 엄마 딸이야?”


아이에게 확인받고 싶었던 걸까?

이 아이가 ’ 내 아기‘라는 걸.

내가 엄마라는 걸.


“아니.”


이제 16개월짜리 아기가 매우 정확한 발음으로 큰애처럼 대답했다.

당연히 맑고 고운 눈망울로

내 눈을 바라보며

“응!”이라고 대답할 줄 알았던 나는

약간 당황했다.

생각나는 대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엄마 친구야?”


그러자,

내 영혼을 꿰뚫듯

지그시

내 눈을 응시하던 지민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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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쭈쭈

나의 천사.

지혜로운 스승이자

가장 소중한 친구.


토끼, 깡충, 코끼리, 사자, 곰, 돼지, 꿀꿀, 구구
열어, 야옹, 주세요, 이뻐, 안녕가(안녕하세요)
사앙(사랑), 아니야, 없네, 이어나(일어나)


말이 늘었다.

그리고 뺀질 대기 시작했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

쉽게 넘어가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때론 화가 많이 난다.


산책을 다녀와서

낮잠 자는 지민의 발을 꼭 쥐고

기도했다.

사죄의 기도였다.


참자, 인내하자

라고 생각하지 말고,

따뜻하고 유쾌해지자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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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은 식상하다.

용도와 사용방법이 정해져 있으므로

최초의 호기심만 자극할 뿐

금방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의외로 현란한 색상의 플라스틱 장난감보다,

뒤지면 뒤질수록 매번 새로운

온갖 생필품들을 가지고 노는 걸

더 좋아한다.


붙박이장의 서랍은 지민의 주요 타깃이다.

엄마가 잠시 경계를 푼 순간,

호시탐탐 노렸던 붙박이장을 기습해서 찾아낸 신상 아이템은

이제 쓸모없는 물건이 돼버린 탐폰.


우리는 꽤 오랜 시간

탐폰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창조해 냈다.


선입견이랄 게 없는 아이는

엄마의 창의력을 쑥쑥 키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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