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4일,
그들에겐 어떤 일이 있었나

케알못의 K리그 겉핥기 - 1

by 스알못

12일(토)에 열린 전북과 서울의 2016년 K리그 개막전은 시작 전부터 축구팬들에게 큰 관심을 모았다. 작년 K리그 우승팀(전북)과 FA컵 우승팀(서울)의 맞대결일 뿐만 아니라, 겨울 이적 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선수들을 영입하며 올해 K리그에서 2강(强) 구도를 이룰 가능성이 큰 두 팀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전북과 서울은 2010년대 K리그 왕좌를 양분한 팀이다. 2009년부터 2012년 4년 동안은 전북과 서울이 우승컵을 번갈아가면서 들었고, 2013년부터 세 시즌은 전북이 리그 3연패로 독주를 펼쳤으나 그 기세를 막을 팀으로 항상 서울이 거론됐다. 우승 후보의 두 팀이 맞붙다보니 서로의 순위에 의식을 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두 팀과 그 팬들 사이에서 라이벌 의식이 생겼다. 현재까지도 그들이 맞붙을 때마다 많은 스토리가 팬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른 라이벌 경기와는 달리 뚜렷하게 이들의 맞대결을 지칭할 말이 없다는 것. 예를 들어 서울과 수원의 ‘슈퍼매치’, 포항과 전남의 ‘제철더비’, 포항과 울산의 ‘동해안 더비’ 등 재밌는 이름의 더비(derby)들이 있지만 전북과 서울 사이에는 딱히 없다. 물론 아예 없지는 않다. 하지만 요새 팬들과 기자들 사이에서도 잘 부르지 않는다. 조금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이름의 장본인이 이미지가 매우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2, 3년 전까지만 해도 활발하게 지칭됐던 이들의 맞대결 명칭은 바로 ‘티아라 더비’다.

정확히 6년 전 오늘, 전북과 서울의 맞대결에서 처음 생겨난 이 단어는 단순히 ‘해프닝’ 속에서 태어난 이름이지만, 두 팀의 라이벌 의식에 처음으로 불을 붙인 날이기도 하다. 2010년 3월 14일, 그들에게는 대체 어떤 일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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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팬들을 위해(?) 공연을 펼치는 초록색 의상의 티아라 [사진 = ⓒ일간스포츠]


#1. 홈팀 서울의 초대 가수, 티아라


티아라 하면 떠오르는 건 ‘왕관’ 아니면 ‘가수’. 아, 우승 후보인 둘이 맞붙으니 ‘왕관’의 뜻을 갖고 있겠구나 하겠지만 애석하게도 티아라 더비의 티아라는 후자다.

2010년 3월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 홈팀 서울은 홈 개막전을 맞이하면서 초대 가수를 초청했다. 초대 가수는 당시 ‘너 때문에 미쳐’ 노래로 인기를 끌고 있던 6인조 걸그룹 티아라였다.

전반전이 끝나고 하프타임과 함께 초청 가수의 공연이 시작됐다. 가수 티아라가 환한 얼굴로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웬걸. 홈 팬인 서울 팬들보다 원정 팬인 전북 팬들이 더 환호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의 유니폼 ‘검은색-빨간색’ 줄무늬로, 팀 컬러 또한 ‘검빨’이다. 이에 반해 원정 팀 전북의 유니폼과 팀 컬러는 ‘초록색’. 그런데 티아라가 초록색의 의상을 입고 경기장을 찾은 것. 홈 팬들을 위해 초청한 가수가 홈 컬러가 아닌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왔고, 그것도 원정 팀의 컬러의 옷을 입고 왔으니 말 다했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티아라는 그대로 응원 인사와 공연을 진행했고, 서울 팬들은 그들의 공연을 그저 망연자실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날 경기는 서울이 0-1로 패배했다. 그 뒤로 한동안 티아라는 전북에게는 ‘승리의 여신’, 서울에게는 ‘티아라의 저주’로 불렸다. 심지어 1년 뒤 전북은 이를 이용해 티아라를 직접 홈 경기에 초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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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포터즈 바로 앞에서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세레머니를 하는 심우연 [사진 = ⓒ마이데일리]


#2. 서울의 심우연은 죽었다.


다시 그 날로 돌아가서, 2010년 3월 14일은 서울에게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날일 것이다. ‘티아라의 저주’로 0-1로 패배한 것이 다가 아니다. 그 ‘1’, 그 한 골이 단순한 한 골이 아닌, 서울의 가슴을 정조준한 쐐기골이었기 때문이다.

0-0으로 팽팽하게 이어졌던 승부는 후반 44분에 판가름이 났다. 크로스를 받은 심우연이 슬라이딩으로 서울의 골망을 가르면서 결승골을 터뜨린 것이다. 심우연은 2009년까지 서울에서 뛰었던 공격수로, 당시 데얀, 박주영, 정조국 등에 밀려 경기에 많이 출전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듬해 전북으로 이적하자마자, 친정팀과의 첫 맞대결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것이다.

보통 다른 곳으로 이적한 선수가 친정팀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었을 경우 과한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다. 나름 친정팀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우연은 골을 넣고 과하게 환호하지도 않았고 침묵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굉장히 강렬한 세리머니를 날렸다. 서울 서포터즈석 바로 앞에서 심우연은 자신의 머리를 향해 총을 쏘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심우연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 세리머니가 “‘서울의 심우연은 죽었다’라는 의미를 담고있다”라고 말했다. 2009년까지 3년 동안 서울에서 많은 기회를 잡지 못한 것에 대해 심우연이 강하게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초청 가수의 뜬금없는 의상으로 저주 아닌 저주가 내려져 경기에 패배한 것도 모자라, 한 때 응원했던 선수가 친정팀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결승골과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을 지켜 본 서울 팬들은 가슴이 찢어질 수밖에 없었다.


#3. 그 후


티아라는 경기 다음 날 바로 언론을 통해 사과했다. 당시 의상 논란에 대해서는 ‘경기 전에 있었던 가요 프로그램 리허설 때 입었던 의상인데,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서울 팬들은 ‘예의가 아니다’라는 식의 말로 강하게 비판했고, 이미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이 해프닝을 지켜보고 있던 축구 팬들과 기자들은 한동안 전북과 서울의 맞대결을 ‘티아라 더비’ 혹은 티아라의 인기곡 ‘러비더비’에서 이름을 따와 ‘러비 더비’라 불렀다. 하지만 몇 년 후 티아라의 인기가 많이 떨어지면서 축구 팬들은 ‘티아라 더비’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게 됐다. 거기에 티아라가 한동안 떠들썩했던 사건으로 구설수에 올랐고, 이에 안 좋은 이미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싶은 팬들은 그 이름을 입에 올리기 꺼려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새로운 스토리가 더 쓰이고 있는 만큼, 팬들이나 기자들이 어떤 새로운 이름을 지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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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당시 심우연의 표정이 다소 어둡다. 입단 영상에서 심우연은 "좋은 경기력으로 팬들에게 신뢰를 얻겠다"고 했는데 과연 심우연은 팬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이미지=ⓒFC서울(좌) ⓒ일간스포츠(우)]


한편, 심우연은 전북에서 수비수로 전향해 또 다른 전성기를 맞았다. 큰 키로 제공권을 장악하며 한동안 ‘공중엔 심우연’이라는 별명도 얻으며 수비수로서 이름을 날렸다.

그런데 2016년, 심우연이 성남을 거쳐 친정팀인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이에 대해 팬들은 ‘배신자가 무슨 낯짝으로 돌아왔느냐’라 말하며 심우연과 ‘배신자’를 받아준 구단을 맹비난했다. 지난 산프레체 히로시마와의 ACL 홈 경기에서는 심우연 선수를 비난하는 대형 플랫카드를 걸기도 했다.

심우연은 이러한 팬들의 반응을 의식한 듯, 입단 사진 촬영에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임했다. 심우연은 바로 이어진 구단 자체 영상 촬영에서 “운동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신뢰를 드리도록 하겠다”라고 입단 각오를 밝혔다.


2016년 시즌에 앞서 전북과 서울 두 팀은 정말 이를 갈고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전북은 ACL 정상 탈환, 서울 역시 ACL 정상 등극과 함께 리그 정상 탈환에 사활을 걸고 본격적인 실전에 돌입했다. 2016년은 이 두 팀은 엎치락뒤치락 순위 경쟁을 하며 더 많은 스토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과연 2016년에는 누가 웃을 것이며, 또 어떤 해프닝으로 팬들을 즐겁게 해줄지 궁금하다.


[타이틀이미지 = ⓒ뉴시스(좌) , ⓒ일간스포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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