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의 보편성

by Aarti 아띠

펜실베니아 주립 대학의 심리학자 알리샤 그랜디(Alicia Grandey)는 서비스 직군의 종사자들(고객센터 직원, 간호사, 버스 기사 등)의 감정에 대해서 연구했다. 그랜디는 감정노동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행동이 수반된다고 한다: 깊은 연기(deep acting)얕은 연기(surface acting)다.


깊은 연기는 겉과 속이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항공사 승무원이 미소를 지을 때 그 미소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소인 경우다. 고객도 깊은 연기와 얕은 연기의 차이를 감지할 수 있는지 깊은 연기는 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8f403e566d317dd2669489d55cab7422.jpg 출처 Pinterest

얕은 연기는 반대로 겉과 속이 다를 경우를 말한다. 미소를 지을 때 속은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가식적인'미소라고 할 수 있는 얕은 연기는 누가 봐도 깊은 연기보다 더 괴로울 것이다. 감정을 억제해야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랜디의 연구에 따르면 놀랍게도 깊은 연기도 자주 하면 할수록 스트레스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몸이 아프거나 번아웃 증후군이 심해질 수 있다.


이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는 팁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직업으로서의 나와 진짜 나를 분리시키는 일이다. 직업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으며 그저 역할 놀이를 하고 있다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이렇게 조금 동떨어져 바라보는 것이 좋은 심리 방어 기제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관점을 제시해보고 싶다.


우선, 그랜디의 연구는 애초의 감정 노동의 직업을 되게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런 직업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친절하게 미소 짓기', 이러한 행동은 특정 직업에서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상사 눈치 보면서 일하는 사무직 직원도 이 연기가 필요하다. 게다가 상사에게는 깊은 연기보다 얕은 연기를 할 가능성이 높아 스트레스가 더 커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내가 일반 회사도 다닌 적도 있고, 감정노동이 필요한 일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난 애초에 가식적인 감정 표현은 정말 못한다. 그럼에도, 매일 같은 사람들만 만나야 하는 일반 회사 다닐 때가 스트레스가 더 컸다. 얕은 연기를 더 많이 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고객들을 대해야 하는 일을 할 때에는 항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소가 진심으로 나올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생각보다 사람들은 내게 친절했다. 상상만큼 나를 '을'로 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 감정노동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생각한 것만큼 괴롭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감정 '노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감정 노동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안쓰럽게 보는 경향이 있다.


cb9500bdc8d3627f505fea7e4dc6414c.jpg 김고은 너무 이쁘다

사회에서 써야 하는 가면과 진짜 나의 모습을 분리시키는 것은 모두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인 것 같다. 사회생활하다 보면 난데없이 비난받기도 하고 갑자기 화를 돋우는 말을 듣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를 대비하여 항상 마음의 벽을 높고 튼튼하게 쌓았다. 하지만 이러다 보니, 사람들을 경계하며 고립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그리고 누군가 내게 상처를 줬을 때, 그 상처 받는 나는 '진짜 나'가 아니라 사회에서 역할놀이를 하는 나인 것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삶이 훨씬 나아졌고 두려움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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