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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rti 아띠 Feb 01. 2021

흙색 카페와 소이라떼

공덕 그로토(grotto) 카페

카페 방문할 때면 언제나 확인하는 것이 있다. 바로 우유를 두유 혹은 귀리 우유로 변경 가능한지 여부다. 스타벅스는 예전부터 두유 변경이 가능했었고, 이제는 커피빈, 블루보틀, 어니언과 같이 큰 카페도 우유를 대체할 수 있는 선택권이 생겼다. 뭔가 점점 비건들의 입지가 넓어지는 것 같아 괜히 뿌듯해진다 (난 완전한 비건은 아니라서 그런지 숟가락 얹는 느낌ㅋㅋ)


오늘 방문한 카페는 공덕역 근처에 있는 그로토(grotto) 카페였다. 지하에 있어서 처음에는 별로 끌리지 않았다. 난 채광 좋은 카페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닿는 유리창, 그 너머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커피를 마시노라면 마음이 확 트이면서 저 멀리 스트레스가 내던져 증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은 여기가 끌렸다. 모르겠다. 여기가 두유 변경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런가?

아무튼 난 가파른 계단을 지나 지하로 갔다. 난 책 읽으려고 카페 왔는데, 과연 책을 읽을 수 있을까? 30분 정도만 있다가 나갈 생각을 하고 난 따뜻한 라테를 주문했다. 아 물론 소이(soy)로 변경. 그나마 기분이 좋아졌다. 취향 혹은 신념의 다양성을 배려한 메뉴판이었다.

 


인공동굴이라는 뜻을 가진 그로토(grotto) 답게 사방이 흙색이었다. 동굴은 잿빛과 아이보리색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시야가 좁은 발언이다. 이곳은 그런 고드름 같은 종유석이 가득한 석회암 동굴이 아니다. 여기는 뙤약볕이 이 따가운 중동 아니면 아프리카의 한 시원한 동굴 같았다. 심지어 한쪽 벽에 있는 거울의 형상은 마치 아프리카 대륙 같았다.


카페 벽의 흙색을 보니 옛날 우리 조상들은 그린 벽화와 도자기가 떠올랐다. 예술은 흙에서 유래했다는 말이 있다.  마침 난 예술에 관련된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처음으로 펼쳤다. 카메론이 창조성이 가로막혔거나 상처 받은 예술가들(화가, 시인, 도예가, 작가, 배우, 영화감독, 등)을 위해 창조성을 일깨우기 위해 진행했던 워크숍을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각자의 내면 아이에 숨겨져 있던 예술성을 돌보아 마음껏 자유롭게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난 거의 100페이지를 단숨에 읽었다. 검정 글자 하나하나는 저자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나를 지그시 쳐다보면서 속삭이고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글을 쓰기 위해 술 마시는 것을 그만뒀던 그녀의 이야기였다. 나도 알코올이 들어가 긴장이 풀린, 정신줄 조금 놓인 상태가 되어야, 아니면 감정의 극을 치달아야 글이 술술 나왔었다. 술 안마셔 정신이 명료하고 평온했을 때는 왜 이렇게 글이 막힐까? 나를 오랫동안 힘들게 한 생각이었다. 그녀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비슷한 처지에 있던 그녀의 글을 읽으니 공감과 위로가 되었다. 그녀의 가이드라인만 잘 따르면 앞으로 '삽질' 안하고 나의 예술성을 펼칠 수 있을것만 같았다. "나를 이끌어준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을 뿐이다. 왜 모두가 나의 전철을 밝아야 하는가. 왜 우왕좌왕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다음에야 뭔가를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이 대목에서 목이 메고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정말 나도 화가 났다.

30분만 있다가 독서하기 좋은 카페로 옮기려던 생각은 진작에 없어졌다. 인간의 가장 본연의 색, 예술의 색, 태초의 색인 흙색을 둘러싸여 예술에 대한 책을 읽자니 몰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음료까지 맛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감각을 일깨워주는 공간에서 나를 알아주는 사람, '지기(知己)'와 같은 책을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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