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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rti 아띠 Apr 15. 2018

귀도의 ‘사회적 뇌’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수용소에 끌려간 아버지 귀도(로베르토 베니니)는 다섯 살 아들 조수아를 독일군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행동한다. 그는 아들에게 이 모든 상황은 ‘게임’이기 때문에 이 게임 규칙을 잘 수행하며 (독일인들로부터) 숨고 있어야 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고 신나게 설명한다. 이 게임의 우승자에게는 조수아가 좋아하는 탱크를 선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수용소에 갇혀 불안해하는 조수아를 완벽하게 속이고 안심시킨다.


 

    이 영화에서 귀도는 독일군에게 허무하게 총 맞아 사망하는 순간까지 아들을 향해 윙크를 날리며 게임임을 알린다. 여기서 우리는 아버지의 희생적인 사랑이 느껴진다. 귀도는 이 세상에 사라졌음에도 조수아는 몰랐을 것이고, 어딘가 아버지가 계셔 어떻게든 연결되어있다는 믿음에 슬픔을 전혀 못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귀도는 아들을 영영 잃지 않으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 결과다. 그는 생전 수용소 생활에서 겪었던 극심한 노동과 배고픔은 아들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들을 끝까지 지키고자 자신을 죽음까지 내몰리게 한 그의 행동은 아들과의 이별의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과의 이별은 일종의 ‘사회적’ 고통이다. 사회신경과학자 매튜 리버먼은 <사회적 뇌>라는 책을 통해 인간이 느끼는 사회적 고통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즉 사회적 유대관계에 대한 위협이나 손상을 경험할 때 신체적 고통과 맞먹거나 심지어는 더 큰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리버먼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귀도의 아들과 영원히 헤어질 수 있다는 불안한 마음을 다양한 과학적인 증거로 뒷받침해준다. 리버먼은 신경과학자 폴 맥린이 ‘이별의 느낌은 포유동물을 매우 고통스럽게 만드는 질병이다’라는 주장을 인용했다. 또한 리버먼은 78쪽에서 “사회적 분리는 약물의 금단 현상과 비슷한 고통을 야기하는 반면, 사회적 재결합은 진통제와 비슷한 작용을 한다. 나아가 새끼와 보호자가 보이는 상호 헌신의 행동은 중독 과정과 유사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라 했다.

    다섯 살 아들 조수아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해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보상을 느꼈을 것이다. 매튜 리버먼은 인간은 사회적 보상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마치 어미와 자식 간의 관계처럼, 하나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좋아하거나 존중하거나 돌봐준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돌보거나 잘 대해줄 때 생긴다. 특히 인간은 신체적 보살핌보다 언어적 보살핌을 받을 때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한다. 즉, 조수아는 아버지 귀도로부터 죽음의 수용소 생활을 ‘게임’이라는 언어적 설명으로 안정을 찾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집단 내에서 타인과 유대감을 형성해야한다. 만일 우리가 무관심 혹은 괴롭힘 등의 타인에게 인정 받지 못하는 경험을 하면 고통을 느낀다. 이러한 사회적 고통은 실제로 우리 뇌가 감정적 괴로움과 육체적 고통을 동일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진화 과정에서 집단을 형성하면서 얻은 혜택에 대한 댓가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진화를 위해 불가피하게 집단을 형성해야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고독 혹은 고립의 고통이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저자 리버먼은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라는 명제를 과학적 근거과 여러 사례로 증명하는데, 이 바탕은 우리 뇌가 갖고 있는 ‘기본 신경망’에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무엇인가 하고 있지 않을 때, 즉 휴식을 취할 때 ‘기본신경망’이 작동한다. 이 신경망이 켜지게 되면 우리의 주의가 사회적 세계로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리버먼은 “뇌는 이 시간 동안 우리가 타인 또는 타인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오랫동안 간직해 온 지식에 새로운 경험들을 통합시키는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 편이 따뜻해졌다. 리버먼은 타인을 향한 사랑 및 공감, 집단 내의 공정함 등의 추상적 가치가 구체적인 과학적 방법으로 실재한다고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우리는 본래 이기적인 동물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는 ‘호구’처럼 안보이려고 이기적인 ‘척’을 한다는 것이다. 사회는 우리가 사익 추구를 우선순위로 하는 ‘이기적인 동물’이어야 우리가 합리적이고 현명하다는 인식을 남들에게 심어준다. 하지만 우리는 본래 서로 공감하고 사랑하는 존재이며 리버먼은 이러한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을 우리 모두가 다 인지하고 있더라면 훨씬 더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우리가 사회적 고통이 신체적인 고통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21살 무렵 고통으로 절규를 외쳤을 때 나에게 ‘그런 걸로 힘들어하다니,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나의 심리적 고통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던 어른들의 교만함이 없었을 것이다.

    리버먼은 인간의 사회성을 방대하게 이야기한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아버지와 아들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버지 귀도는 열악하고 험악한 상황에서도 서슴지 않고 아들을 살리고자 한다. 이는 좁게 보면 단순한 부성애에 속하며, 넓게 보면 타인을 향한 이타적인 사랑에 포함된다. 결말은 비극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적어도 어린 조수아는 아버지를 잃은 사회적 고통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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