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앞머리 부분이 하얗다.
흰머리가 있다가 아니라 살색 두상이 보인다는 의미다.
21살 때 극심한 스트레스로 머리가 빠졌고, 그 당시에 없어진 머리카락은 다시 나지 않았다.
사실 처음에는 내심 좋았다.
안그래도 머리숱 많고 반곱슬이었던 내 머리가 싫었기 때문이다.
미용실에서 매직펌을 안하더라도 찰랑거리는 생머리를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 21살 탈모 이후, 난 모든게 바꼈다. 마음 깊은 곳의 나의 성격부터 나의 머리 꼭대기의 머리숱까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 들자 나의 성격은 밝고 한층 성숙해졌다.
하지만 나의 머리숱만큼은 애석하게도 제자리걸음이다. 얇고 힘이 없으며 가끔 뚝뚝 끊어진다. 고개를 숙여 머리 꼭대기는 여전히 비어있다. 21살 때 친했던 친구들, 단골 카페, 좋아하던 노래 등 모든 것이 지금은 없어져 때로는 그 시절이 존재했긴 했나 라고 스스로 묻기도 한다.
하지만 아침에 내 머리를 빗다보면 그 질문이 쏙 들어간다. 고민많던 그 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마치 그 빈 흔적이 나에게 이렇게 외치는 것 같다: '잊지마 은현아, 넌 정말 열심히 살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