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몸이 건강해졌다. 만성소화불량도 거짓말같이 싹 나았고 피부도 매끈해졌다. 기분탓인지 모르겠지만 주변 사물이 선명해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정신적으로 풍족해지기 시작했다. 동물들을 공감하기 시작했다. 그들 각자 성격이 다 다르고 그들의 사이에서 우정이 보였으며 그들 집단 내에서 협력이 보였다. 우리 사람과 다를바가 없던 것이다.
비건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말 감사하다.
비건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비건을 시작하게 된 감사한 계기들>
1. 분식집에서 "순대 내장 많이 주세요. 특히 허파와 간이요"라는 말에 "무슨 짐승도 아니고"라며 혼잣말 하던 사장님. 충격적인 그의 말이 내 머릿속을 한동안 맴돌았다.
2. 수개월동안 지속되었던 만성소화불량. 먹질 못해 한때는 키가 166인데도 몸무게가 40대초반까지 내려가고야 말았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는데 그 와중에 난 이 생각을 했었다: "다 뜻이 있겠지." 정말 그 생각이 맞았다.
3.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 프랑스 알랭 파사르 편> 저명한 프랑스 요리사의 이야기다. 그는 원래 닭고기, 오리고기 등을 고급스럽게 요리했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닭과 오리의 피를 보고 차마 요리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한다. 한마디로 고기가 동물로 보이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 프랑스 알랭 파사르 편>
4. 영화 <리틀포레스트>에 몇몇 비건 요리가 인상깊었는데, 마침 영화감독께서 베지테리언이라고 하셨다.
5. 작년 7월에 코엑스에서 열렸던 비건 페스티벌. 수많은 비건인들과 수많은 비건 제품들을 보면서 그들의 철학에 나도 감동 받았다. 비건은 나의 '건강'(많은 사람들이 채식이 다이어트 하기 위해서라고 오해한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 동물, 그리고 지구를 위한 적극적인 운동이라는 것이다.
오늘 친구랑 사당역에 있는 '남미플랜트랩' 이라는 비건 식당갔다. 비건 치즈에 비건 로제소스. 나의 입맛을 위해 누군가 희생이 불필요한 식단,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식단을 추구하게 된 계기들이 정말 감사하다. 정말로.
맛있는 샐러드, 피자, 파스타, 그리고 제인구달의 <희망의 밥상>
맛집에 대한 집착도 없어졌을뿐더러 모든 물욕이 사라졌다. 삶 자체가 미니멀리즘을 지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