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꼭 좀비 같지 않아?”
“네?”
“저기 저 사람들 말이야. 한 곳으로 맹목적으로 걷고 있자 나. 꼭 그 끝에 오아시스라도 있는 것처럼.”
“그거야 출입구가 저 쪽 밖에 없으니까 당연히 다들 저기로 몰려드는......”
밤하늘을 수놓았던 아름다운 인공의 불빛은 이미 꺼진 지 오래였다. 여운이 깊게 남는 공연일수록 현장에 머무는 이가 많다. 혹시나 2시간 전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어디서 인지 누군가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의 후렴구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오오 오오 오. 오오오오오 오.”
그 옆 사람이 그를 따라 부르고, 또 그 옆 사람이, 그 옆 사람의 옆 사람이, 다시 그 옆 사람의 앞사람이 따라 부르다 보니 어느덧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를 냈다. 아직 출입구 근처도 가지 못한 이들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진짜 저 곡은 세기의 명곡인 것 같아요. 콜드플레이가 이걸 보고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까요? 전 세계 어딜 가든 환영받고, 자신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이들이 이렇게 넘쳐나는데. 아. 아닌가? 그냥 오히려 지겨울까......”
“지훈아. 너 콜드플레이 공연이 얼마짜린 줄 알아?”
“잠시만요. 스탠딩 G구역은 십오만 사천 원, P석 십사만 삼천 원, R석 십삼만 이천 원, S석 십일만천, A석 구만 구천, B석 칠만 칠천, C석 사만 사천 원. 검색하니까 이렇게 나오네요. 우린 R석이었으니까 십삼만 이천 원이네요. 어제 처음 본 이름 모를 미모의 누나 덕분에 콜드플레이 공연도 보고, 이거 들리는 얘기로는 암표로 백만 원이 넘게 거래가 되기도 했다던데……아,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는지 나한테 갑자기 이런 행운이 찾아오다니!”
지훈의 들뜬 어조와는 상반되게 여자는 표정의 변화 없이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여자는 말을 이어갔다. 허공에 대고 넋두리를 하는 마냥 천천히 낮은 음성으로, 그렇지만 가까이에 있는 이로부터 집중이 되는 힘 있는 목소리였다.
“오늘 본 공연의 티켓 판매 매출액만 천만 달러야. 그들은 전 세계를 돌며 월드 투어를 해. 이번 투어는 작년 여름부터 시작해서 올 가을까지, 33개국 80개 도시를 돌아. 한 도시 당 적게는 백만 달러, 많게는 3천만 달러까지 벌어들이는데, 총 공연 수입금을 따지자면 자그마치 5억만 달러는 될 거야. 가늠이 돼?”
“헉. 오.. 오 억만이요?”
“만약 전 세계서 유일하게 나만 그들의 공연을 보려면 최소 5억만 달러를 지불해야 된다는 얘기야. 그러지 못한다면 저들처럼 좀비가 되어야겠지. 몇 년을 기다렸다가 힘들게 티켓팅을 하고, 멀리서 좋아하는 뮤지션을 바라보면서, 오늘이 마지막인 듯 한껏 흥분해 있다가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허무하게 끝나 버리겠지.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야.”
여자는 군중 속에 시선을 떼지 않으며, 읊조렸다.
“근데, 지훈아. 오늘 보니까 나도 저들처럼 좀비가 되고 싶다.”
“에지! 다음에 꼭 공연장에서 함께 듣자. 7년 전 가을인가. 아마 베를린이었을 거야. 그때 처음 로이랑 같이 우연히 공연을 보게 되었거든.”
“진짜? 어땠어?”
“죽여줬지. 그때 처음 보고, 그 이후 공연부터 쭉 찾아다녔어. 아마 로이랑 친해진 것도 콜드플레이 공연이 한몫했을 거야. 매년 공연을 빌미로 녀석이랑 함께 여행 다녔으니까.”
“뭐야. 둘이 그렇게 케미가 잘 맞았었나?”
“뭐지. 이 비꼬는 말투는. 혹시 이거……”
“아니거든.”
“어? 내년 8월에 또 월드투어 시작하네!”
“정말?”
“응. 아르헨티나부터 시작해서, 헉. 이번엔 80개 도시나 되네. 작년 ‘고스트 스토리 투어’는 여덟 개 도시밖에 안 돌아서 아쉬웠는데……”
“진짜? 대박! 하나도 놓치지 않을 거야!”
“그래. 좋아. 우리 함께하자!”
“그럼 로이는?”
“당연히 너랑 여행하면 로이는 버려야지.”
“푸하. 아냐. 로이도 같이 가자고 하자!”
“내년엔 이 도시, 저 도시 여행하느라 피곤할지도 모르겠다. 지금부터 체력 보충을……”
오웬은 신이 난 목소리로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뭐야. 왜 말을 돌려.”
“응? 뭐가? 누가? 내가?”
그는 눈썹을 치켜뜬 채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는 양팔을 들어 두 손을 펼쳐 보였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에지는 그의 귀여운 표정에 오늘도 넘어가 준다는 얼굴을 하고 서있다. 서로는 마주 보며 멋쩍은 듯 한바탕 웃음소리를 배출했다. 에지는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그와 눈을 맞추며, 순간의 행복을 만끽했다. 그녀는 먼저 웃음을 멈추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그에게 물었다.
“근데 진짜. 이게 대체 얼마짜리 공연인 거야!!”
“글쎄. 족히 5억만 달러는 되지 않을까?”
‘이번에도 둘 다 안 왔네.’
“누나. 괜찮아요? 좀 피곤해 보이는데?”
생각에 잠긴 에지를 바라보던 지훈은 걱정스러운 듯 그녀에게 물었다. 애써 표정을 감추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에지는 난간에 기대고 있던 몸을 세웠다.
“그만 가자.”
“찾아야 되는 사람 있는 거 아니었어요?”
“안 올 건가 바.”
에지는 오늘만큼은 그곳의 군중들처럼 좀비가 되었으면 했다. 진심으로 그러길 바랬다. 좀비들의 팔목에서 빛을 발하던 자이로 밴드는 다시 쓸모없는 불투명한 팔찌로 돌아가 있었다. 퇴장하면서 반납해 달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좀비들의 떼창도 어느덧 잦아들었다. 출구로 몰려든 인파도 하나 둘 흩어져 갔다. 에지와 지훈도 뒤늦게 발걸음을 옮긴다. 거리로 나온 그들 사이에 한 동안 대화가 없었다. 지훈은 몇 번이나 입을 열 타이밍을 보았지만 그녀의 어두운 표정에 이내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그럴 때라는 걸 그 스스로 깨우친 듯하다.
침묵 속 거리로 나선 그들 뒤로, 높이 자란 가로수의 나뭇가지 틈에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자이로 밴드 하나가 걸려 있었다.
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트래블러: 죽음에는 차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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