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na be your hero.
여기에 쓰여지는 글들은 제시해주는 음악을 틀어 놓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온전히 글 속으로 더 빠져들 수 있어요.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음악을 알고 있다면, 눈을 감고 잠시 그 음악을 마음속으로 플레이하세요. 자. 이제 음악이 준비되었나요?
#준비할 음악: Hero by Family of the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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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me go
I don't wanna be your hero
I don't wanna be a big man
...
인도 중부의 작은 마을 오르차에 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꿈꿈. 그녀는 한적한 오르차를 찾아 잠시 쉬어가는 여행객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 어느 남자의 딸이었다. 그녀 밑으로 전혀 다르게 생긴 개구쟁이 남동생 2명과 어린 여동생 한 명이 있었다.
이 개구쟁이 남동생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면 요상한 표정을 연실 지어대거나 몸을 한시라도 가만 두지 않고 정신없이 움직이곤 했는데, 둘은 분명 동일 인물을 자신들의 아버지라고 했지만 피를 나눈 것 치고는 어디 하나 닮은 구석을 찾아 보기 힘든 미스터리 형제였다. 그녀의 어린 여동생은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녀 옆에 찰싹 달라 붙어 있거나 그녀의 행동을 모사하곤 했다. 참 귀여운 아이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우리가 묵을 방을 고를 때 얼굴을 비춘 후로는 종적을 감췄다. 그가 우리에게 그의 목소리를 들려 준건 간소한 우리의 배낭을 보고 짐이 이게 전부냐고 되물었을 때뿐이었다.
줄곧 꿈꿈이 그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우리가 묶었던 게스트하우스는 부도난 건설업체가 짓다 말은 듯한 건물이었다. 가운데 작은 정원이 있고 그 양 옆으로 방이 마주 보며 위치해 있었다. 방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정원이 이어지는 구조였는데 나는 그 작은 정원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그 작은 정원에서 우리는 개미의 움직임을 관찰하거나 꿈꿈과 어울리기도 했다. 그래도 객실수가 제법 있었던 게스트하우스였는데 그곳에서 머무는 동안 우리를 제외하고 다른 어떤 여행객과도 마주치지 못했다. 아마 우리가 그 곳에 묶는 유일한 손님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건 해외로 간 나의 첫 번째 배낭여행이었다. 내가 인도를 떠난 이유는 현실도피성이 다분했다. 학교에서 야작하며 밤새고 방학 때는 계절학기를 들으며 학점 때우느라 급급했던 대학생활은 순식간에 흘러갔고 2006년 2월 나는 비로소 백수가 되었다. 잘 나가는 애들은 졸업과 동시에 갈 때가 있었고 나는 졸지에 할 일이 없었다. 16년간 유지해온 학생이라는 신분의 박탈감이 너무 서운했다고 적당히 둘러대자. 아니, 1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 면 걷쳐진 울타리 너머 펼쳐진 진짜 세상이 무서웠다. 두려웠다.
나와 같은 생각의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내게 인도 여행을 제안했다.
"나 인도 갈 거다. 너도 갈래?"
"그럴까?"
"2주 뒤에 출발이야"
비행기표를 사는데 여행사 직원이 비자는 받았냐고 하길래 아직이라고 했더니 어이없어한다. 우리는 2주 전에 비행기 표를 사고, 일주일 전에 비자를 받고, 3일 전에 배낭을 사고, 하루 전에 부모님께 말하고 인도로 향했다.
아침 일찍 비행기였다. 전날 밤 공항 셔틀버스가 서는 곳에서 친구를 기다렸다. 약속 시간이 한참이 지나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핸드폰은 내 방에 두고 나왔다. 당시 나는 가출하는 10대 마냥 비장했다. 긴장은 되지 않았다. 무섭지도 않았다. 다만 친구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메고 있는 가방은 가벼웠다. 한 달 여행을 계획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짐의 무게는 사치라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 누군가, 여행을 떠나기 전 배낭을 메고 동네 한바퀴 돌아보라, 그리고 그 배낭의 무게가 무리가 없을 때 가방을 잘 싼 거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나는 잘 싼 배낭의 무게에 으쓱하며, 곧 올 친구의 배낭도 가볍길 바랬다. 그런데 그녀가 오지 않고 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새벾녘,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돈다.
저 멀리 택시 한 대가 섰다. 나는 직감적으로 친구를 알아 봤다. 늦은 친구에게 쌍욕을 퍼부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녀의 얼굴은 울 그락 불 그락 눈물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도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와줘서 고맙다. 우리 이번 여행, 출발부터 힘들다 그지?
델리에서 아그라를 거쳐 이곳 오르차로 오기까지 우린 지독한 더위와 싸워야 했다. 델리 길거리에서 오기로 원샷 한 정체 불명의 민트주스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내 위 속에서는 간간이 친구가 입 속으로 들이 밀던 바나나가 전부였다.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내가 정말로 죽을까 봐 걱정이 됐었다며 후일담을 늘어 놓는다.
우리가 머물던 시기에 델리 기차역에서 폭탄 테러가 있었다. 초반에 연락이 안되었던 우리의 부모님들은 당신의 딸들 걱정에 밤잠을 설치셨다. 그렇게 우리 여행의 시작은 미련했고, 고달팠으며, 치열했다.
그리고 우린 점점 지쳐갔다.
꿈꿈의 게스트 하우스는 그렇게 지친 우리의 오아시스였다. 우린 인도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해가진 밤거리를 거닐었다. 우린 인도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식사 다운 식사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현지인들 미소가 눈에 들어 왔다. 어느덧 자연스럽게 인도에 물들어 갔다.
꿈꿈은 영어를 잘 구사했다. 그래서 그녀와의 의사소통은 무척이나 수월했다. 우린 그녀에게 한국어를 알려주었고 그녀는 우리에게 간간한(이를 테면 수를 세는) 인도어를 알려주었다. 방법은 이런 식이다. 영어로 문장을 물어보면 그 말을 한국어로 알려준 뒤 종이에 영어로 발음을 적어주었다. 스스럼없이 다가와 먼저 말을 걸어 온 꿈꿈은 우리와 금세 친해졌다.
꿈꿈은 떠나기 전날 우리에게 예쁜 뱅글을 하나씩 선물해줬다. (그 당시 그 뱅글을 여행이 끝날 때까지 착용하고 다녔지만 한국에 오니 녹이 슬어버렸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녀에게 보답을 꼭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편지를 보내기로 그녀와 약속을 했는데 그런 우리에게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이 곳을 지나쳤던 많은 여행자들이 너희와 같은 말을 했지만,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서 연락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
이 말을 하며 지었던 그녀의 쓸쓸한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반드시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여행이 끝나고 역시 나도 그녀를 스쳐 지나간 과거의 수 많은 여행자들과 다름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지난 인도 여행은 내게 많은 것을 남겼다. 배낭여행의 필수코스라고들 한다. 나는 막연한 인도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뭔가 그 곳에는 특별한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떠났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시간이 흘러 종종 그때를 친구와 추억한다. 많은 일들이 우리에게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소중했던 20대 시절의 젊음을 친구와 나눴다. 며칠 전 친구에게 그날의 일을 조심히 물었다. 아니 그냥 지나간 일이니 대놓고 물었다. 10년간 묵혀있던 여행의 시작점에서 그녀가 늦었던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그녀는 그녀의 집, 담을 넘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사업실패, 부모님의 이혼, 20대 찬란했던 청춘 정거장에 정말 테러가 일어난 거다. 그녀의 방황과 불투명한 미래, 현재 선택한 이 길에 대한 불확실함이 그녀를 인도로 이끌었다. 그렇지만 그 길에 아버지의 반대가 있었고 떠나는 날까지 싸우다 아버지가 잠든 새벾 조심히 탈출을 한 거다. 나의 질문에 친구는 뭘 또 그걸 다시 상기시키게 하냐며, 그러면서도 자세히도 풀어 놓는다.
정말 그날, 그녀의 아버지는 잠이 드셨던 걸까. 우린 서로 그것에 대한 답을 잘 알고 있다.
30대가 되고 보니, 20대의 치열함이 그립다. 책임은 나이가 들며 더 생기는 건데, 당시 20대의 어린 우린 그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아둔한 생각에 휩싸여 있었다. 우린 누군가의 영웅이 될 필요가 없다. 남들이 생각하는 근사한 사람이 될 필요도 없다. 우린 그냥 그때의 우리를 살아가는 거다.
여행의 추억이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하나 둘 희미해지고, 덩달아 꿈꿈과의 인연도 자연스럽게 잊혀 갔다. 꿈꿈도 그녀의 세명의 동생들과 직업정신이 전혀 투철하지 않은 그녀의 아버지를 위한 영웅의 삶을 살고 있을 거란 생각에 슬퍼진다. 오늘따라 그녀의 쓸쓸한 표정이 생각난다.
다시 오르차를 가게 되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그녀는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미안해… 꿈꿈…
이 글을 작성하는 동안 저는 Hero를 30번 이상 플레이했습니다. 당신은 여기까지 글을 읽는 동안 이 음악을 몇 번 플레이하셨나요? 음악을 들으며 글을 적는 저와 음악을 들으며 이글을 보게 될 분들과의 소통과 공감의 연결고리가 되길 희망합니다. 자. 이제 플레이를 멈추세요. 저의 사운드 오브 브런치 1화는 여기까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