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김치, Summer 김치
여기에 쓰여지는 글들은 제시해주는 음악을 틀어 놓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온전히 글 속으로 더 빠져들 수 있어요.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음악을 알고 있다면, 눈을 감고 잠시 그 음악을 마음속으로 플레이하세요. 자. 이제 음악이 준비되었나요?
#준비할 음악: Everlasting Truth by Re:Plus
음악을 플레이하세요.
(가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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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세치아. 크리스마스 꽃으로 알려진, 꽃잎은 새빨갛고 이파리는 정직한 초록색인 조화 같은 꽃이다. 꽃말은 축복. 나는 이 꽃을 루이스의 꽃이라고 부른다.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온 MJ라고 합니다."
그곳엔 나와 같이 영어가 서툴러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들과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고 여가 시간으로 영어를 가르쳐 주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나는 이 Class를 주최했던 Zita를 통해 Coversation Partner를 소개받았다. 이름은 Louise Downes. 당시 그녀의 나이 97세. 내 생애 가장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친구다.
당시 그녀는 작년에 남편과 사별하고 매일 저녁 커피에 블랜디를 타서 먹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하는 불면증을 안고 있었다. 남편은 한국전에 참전했다고 하니 말 그대로 그녀는 엄청난 세월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한국인인 나에게 그녀가 들려주는 김치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그녀가 기억하는 김치에는 Summer 김치와 Winter 김치가 있다는데, 가만히 얘길 들어보니 빨간 배추김치를 Summer김치라고 부르고 하얀 동치미를 Winter김치로 기억하는 것 같다.
그녀와는 매주 일요일, 그녀의 집에서 만났다. 그녀의 하우스는 뒤뜰에 정원이 있는 1층 집이었다. 우린 가끔 정원에 나가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까마귀가 깍깍거리거나 비행기가 요란한 소음을 내고 지나갈 때면 다시 방 안으로 들어오곤 했다. 그녀의 집안 내부는 아늑했다. 한쪽 벽엔 큰 거울이 붙어 있었고 바닥에는 따뜻한 카펫이 깔려 있었다. 내가 오면 늘 그녀는 나를 소파에 앉히거나 준비해둔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지난주에 무엇을 했니? 그리고 오늘 여기를 떠나면 무엇을 할 거니? 그녀는 내 생활에 늘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어디를 갔었다로 시작을 했다. 늘 그녀는 나를 Brave Girl이라고 말했다.
소파에 앉아 그녀가 가져다 주는 Coke를 홀짝거리며, 대화 소재가 떨어지면 그녀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인쇄물들을 읽어나간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실 legally blind다. 이것이 무엇 이느냐 하면 Zhita의 설명에 따르자면 she can see some things but can't read or do email because of her poor eyesight. 그녀의 노환으로 인해 시력저하가 온듯하다. 그래서 그녀의 집에는 신기한 도구들이 있는데 일단 그녀가 늘 지니고 다니는 시계. 자동차 키처럼 생겼는데 누르면 지금 몇 시라고 음성으로 안내를 해준다. 그리고 어떤 스캐너. 그건 책을 올려두면 스캔을 한 뒤 음성지원을 해준다. (역시 좋은 세상이야.) 그녀를 위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도와주고 싶어서 잡지나 신문 읽기를 시작하면 난 한 줄 읽고 묻는다.
"Louise! What means....??"
약속시간이 되면 그녀는 늘 집 문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렸다. 왜냐하면 그녀가 살던 집은 구글맵을 보고도 늘 헷갈려서 (방사형 구조라 방위가 헷갈린다) 헤매다가 결국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길을 잃어버렸다고 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주변의 집집마다 구조가 비슷해서 늘 그 집이 그 집 같았다. 어느 날 조금 일찍 도착해서 그녀 집에 가보니 그녀가 나를 기다리며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잠에서 깬 그녀.
"Who are you?"
"Hi Louise, It`s me!"
그럼 그녀는 내게 말한다.
"Hey honey!"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대화가 시작된다.
사진 설명 (왼쪽부터)
1. 나를 기다리며 대문 앞 잠들어 있던 루이스.
2. 인기척에 잠이 깬 그녀.
미국에 있는 동안 고비가 왔다. 내 처지를 가만히 듣고 있던 루이스는 연실 Poor Girl이라며 네가 갈곳이 없으면 이곳에 머물러도 좋아라고 얘길 해 주었다. 그녀와 20번째 만남에서, 그녀는 선뜻 내게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사진 설명 (왼쪽 상단부터)
1. MJ 폴더.
컴퓨터를 할 수 없는 그녀식의 클래식 스타일 폴더.
맨 앞줄에는 내 이름의 폴더가 있었다.
2. 루이스의 신발들이 나란히.
"너 신발 사이즈 몇이야?"
"6.5"
"그럼 내 것 신어"
3. 고양이 조명.
루이스의 집에는 책과 그림만큼 많은 것이 조명이었다. 그녀는 내게 집에 대한 룰을 1시간가량 설명했는데, 그것의 반은 조명에 관한 이야기였다.
조명을 켜는 순서를 마지막으로 설명하면서 켰던 조명을 전부 끄고 내게 하는 말.
"자 이제 네가 처음부터 켜봐"
4. 루이스의 침실.
그녀는 선뜻 내게 그녀의 단 한 개의 침대를 내주었다. 그녀는 서재에 있는 카우치에서 잔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손사래를 치며 그럴 필요 없다고 나는 거실에 있는 소파에서 자도 충분하다고 했더니,
그녀는 남편과 사별한 이후로는 침대에서 잠을 못 잔다고 한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침실은 게스트를 위한 공간이 되었다.
5. 그림들.
그녀의 집에는 엄청나게 많은 그림책과 엄청나게 많은 그림들이 벽에 걸려있다. 가운데 아래 검은색 작은 액자의 그림은 루이스가 직접 그린 그림.
그녀가 Abstract이라는 단어를 내게 설명해 줄 때 저 그림을 처음 보았다.
6. 요란했던 전화기.
침대 옆에는 돌려서 전화를 거는 클래식한 전화기가 놓여있었다. 귀가 잘 안 들리는 루이스는 벨소리도 엄청 컸다.
나는 선을 뽑아 버렸다. 미안해 루이스
루이스의 98번째 생일파티가 있었다. 빈손으로 파티에 참석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생일선물로 무엇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내가 제일 자신 있는 걸로 줘야겠다 싶었다. 급하게 미술도구를 구입했다. 그날 내가 준 선물은 그 날 이후 루이스의 집 거실, 그녀와 그녀의 남편과 찍은 사진 옆에 나란히 놓이게 되었다. 그림을 볼 때마다 루이스는 너무 좋아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사진설명 (왼쪽부터)
1. 부리나케 그녀의 생일 전날 그림도구를 준비했다.
2. 루이스.
"Happy Birthday Louise! Don't worry, you are still beautiful"
3. 내가 그녀의 생일 선물에 적은 멘트의 모티브.
그녀의 여동생이 그녀의 작년 생일 선물로 돌멩이에 글을 새겨 주었다고 했다.
"At least, you are not as old as this rock"
센스 있는 그녀의 여동생.
과거에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그녀는 내게도 기꺼이 스승이 되어 주었다. 시력이 좋지 않은 그녀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책을 읽어주는 것뿐이었지만 우린 서로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귀가 잘 들리지 않고, 눈이 잘 보이지 않았던 그녀. 귀가 잘 들리고, 눈이 잘 보였지만 말이 서툴렀던 나. 우린 부족했던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었고, 친구가 되어주었다. 젊은 시절 도슨트 였던 그녀의 손을 잡고 동네 미술관을 가던 날, 눈이 잘 보이지 않던 그녀에게 제목을 읽어주면 그녀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게 그 그림을 설명해 주었다. 한국에서 도망친 MJ는 건강하고 아름다웠던 루이스를 만났고, 남편을 그리워 한 루이스는 한국에서 온 용감한 MJ를 만났다. 그렇게 우린 서로 소소한 행복을 나눴다.
어느 날, 루이스네 집에 미리 온 손님이 있었다. 기자와 포토그래퍼. 그들은 루이스가 살고 있는 동네에 관한 기사를 쓰는데 가장 연장자인 루이스를 인터뷰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1970년대부터 그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도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리고는 사진을 엄청나게 찍었다. (포터그래퍼는 내게 카메라를 의식하지 말고 네가 할리우드 배우 인척 하면 돼라고 속삭였다.) 당시에 나는 기자에게 너의 기사가 정말 실리는 거냐라고 물으니, 신문사에는 자기 말고 수백 명의 기자들이 매일같이 기사를 쓴다는 얘길 했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그럼 기사가 실릴 확률이 낮겠구나.
LA TIMES에 우리의 이야기가 실렸다.
2013년 10월 30일, 나는 Zita로부터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루이스가 그날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 그녀가 보낸 메일에는 최근에 후두암을 앓고 있던 루이스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알려왔다. 일주일 전에 봤을 때만 해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활기찬 모습을 보여줬단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수개월이 지난 뒤에야 루이스에게 손편지를 적어서 보냈다. 작은 선물을 해주고 싶어서 고민 끝에 한국 전통부채와 함께 그녀가 잘 볼 수 있도록 A4용지에 매직으로 메시지를 담았다.
Zita에 말에 따르면 루이스는 당시 내가 보낸 선물을 최고의 보물로 여기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다음날 루이스의 장례식에서 나의 이야기를 낭독했다. 나와 루이스와 함께했었던 이야기, 그리고 참석하지 못한 나를 대신해서 내가 보낸 이메일 내용을 장례식에 참석한 이들에게 알려주었단다. 많은 이들의 우리의 이야기를 감동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했다는 말과 함께...
언젠가는 그녀와의 이별을 생각했다. 그러나 한 번쯤은 그녀와 다시 만날 거라는 확신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녀의 두 손을 부여잡고 따뜻한 포옹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 하늘나라에서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을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미소로 어디선가 나를 바라봐 줄 것이라 믿는다.
지난 나의 미국 생활에 너무 소중한 추억이었던 그녀.
루이스 다운즈를 추억하며...
포인세치아. 크리스마스의 꽃이라고도 하는.
루이스가 좋아했던 꽃이다.
이 꽃을 볼 때마다 그녀가 생각난다.
Everlasting Truth. 이 음악은 지난 미국 생활에서 저와 늘 함께했던 음악입니다. 어느 날 루이스는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던 저에게 무슨 음악을 듣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우린 자연스럽게 이어폰을 나눠 들었습니다. 어때 루이스? 지금 생각해보니 보청기의 도움을 받아야만 외부의 소리를 겨우 캐치할 수 있던 그녀가 정말 제가 들려주던 이 음악이 잘 들렸을까요. 그녀가 마음으로 느꼈을 이 음악. 음악을 들으며 글을 적는 저와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보게 될 분들과의 소통과 공감의 연결고리가 되길 희망합니다. 자. 이제 플레이를 멈추세요. 저의 사운드 오브 브런치 2화는 여기까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