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살리아 Sep 22. 2017

#11. 비가 내리는 소리

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차량의 와이퍼는 초단위로 쉴 새 없이 움직여댔다. 앞 유리에 떨어지는 빗물은 무수한 방울들을 만들고 흩어지길 반복했다.


“차 세워!”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남자는 차를 세우는 대신 백미러를 보았다.


“차 세 우라고!”


여자가 또 한 번 소리쳤다. 남자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안전벨트를 풀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차 세우라는 말 안 들려? 차 세워! 차 세우라고 했잖아!”


남자는 브레이크 대신 엑셀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그리고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빗물에 차량이 미끄러져 그대로 가로수로 돌진했다. 그보다 빠르게 남자가 몸을 돌려 여자를 품에 안았다. 왼팔로 여자의 머리를 감싼 채 오른손으로 보조석 안전벨트의 버튼을 눌렀다.


두 남녀가 탄 차는 그대로 가로수를 박고 멈췄다. 운전석과 보조석에 에어백이 터졌다. 차 안에 타고 있던 남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차량에서 십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그들이 서있었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를 감싸 안은 자세 그대로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에 여자는 아직 눈을 감고 있다. 그와는 대조되게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여자의 귀에 빗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아까 차를 멈췄으면 뒷 차가 우리 차에 부딪혔을 거야. 우린 무사할 테지만 뒤에 타고 있던 아이 엄마와 어린아이가 위험했을 거라고.”


그제야 여자는 정신을 차리고 남자를 밀쳐냈다.


“사고가 날 줄 미리 알고 있었던 거야?”


“화내지 마.”


“이 것도 보고 온 건가? 다음은 어떻게 돼지? 내가 뺨이라도 때리고 돌아서나? 아니면 눈물이 라도 흘려?”


“그만 좀 해. 에지.”


“뭘? 내가 뭘? 뭘 그만하라는 건데? 너야말로 그만해!”


에지는 이제 이성을 잃고 비아냥거렸다.


“우리 미래는 보지 않아. 너와 약속한 거잖아.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오웬은 한 손으로 자신의 관자놀이 부분을 매만졌다.


“그 말도 이제 못 믿겠어. 늘 항상 뭔가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거, 이제 지겨워. 끔찍하다고!”


빗소리를 뚫고 날카로운 에지의 음성이 총알처럼 날아와 오웬의 가슴에 박혔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폭우는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흠뻑 젖은 에지와 오웬은 우두커니 그곳에 서있었다. 한동안 둘 사이에 아무런 얘기가 오가지 않았다. 서로 눈을 맞출 뿐이다. 비가 내리는 소리는 그 둘을 오묘하게 엮어놓았다. 오웬은 차라리 비가 영원히 그치지 않길 바랬다.




“비가 안 멈출 건가 본데요.”


지훈은 따뜻한 커피를 들고 온 에지를 보며 기분 좋은 듯 얘기했다. 공연장에서 나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나기가 쏟아졌다. 에지는 지훈을 데리고 그녀의 오피스텔로 왔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고층의 고급 오피스텔을 보고 지훈은 그녀가 꽤나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라고 생각했다. 23층에서 내려다보는 밤의 한강은 운치가 있었다. 더군다나 비 까지 내려 주니 더할 나위 없이 감상에 젖어들기에 충분했다.


“음악 들을까요?”


지훈은 평소에 자주 듣던 자신의 아이튠즈 플레이 리스트에 한 곡을 선택했다. The Roots의 “You Got Me”가 흘러나왔다.


“비가 내리는 소리와 아주 잘 어울리는 사운드죠.”


지훈이 자신 있게 말했다. 에지는 창가에 기대서서 창문을 열었다. 얼굴을 창문 밖으로 내밀었다. 빗물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떨어졌다. 가만히 눈을 감고 비가 내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음악소리와 어우러져 그녀의 가슴을 적셨다.


“If you were worried ‘bout where I been or who I saw or what club I went to with my homies”

(내가 어디에 있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친구들과 어떤 클럽에 가든지)


“Baby don’t worry you know that you got me"

(걱정하지 마. 이미 넌 날 가졌잖아)


“Somebody told me that this planet was small”

(어떤 이들은 이 행성이 너무 작다고 말해)


음악을 가만히 듣고 있던 에지는 지훈에게 말했다.


“좀 더 크게 듣자.”


에지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선반에 놓여있던 블루투스 스피커를 가리켰다.


“오! 누나! 에어로스컬! 저거 진짜 갖고 싶었던 건데!”


“저 해골바가지 이제 지겨워. 너 집에 갈 때 가져가.”


“대박! 누나! 진짜요? 고마워요! 누나! 고마워요!”


지훈은 신이 나서 달려가 해골 모양의 블루투스 스피커를 품에 안았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내다보았다.


“So what you sayin I can trust you?”

(널 믿어달라는 거야?)


“Is you crazy, you my king for real”

(당연하지, 넌 내게 전부야.)


“But, sometimes relationships get ill. No doubt”

(그렇지만 가끔 우리 사이 삐걱대기도 해. 틀림없어.)


“If you were worried ‘bout where I been or who I saw or what club I went to with my homies”

(내가 어디에 있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친구들과 어떤 클럽에 가든지)


“Baby don’t worry you know that you got me"

(걱정하지 마. 이미 넌 날 가졌잖아)


음악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더욱 선명하고 웅장한 사운드로 그녀의 오피스텔에 울려 퍼졌다. 비가 내리는 소리와 잘 어울리는 사운드였다. 틀림없이 그러했다.




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트래블러: 죽음에는 차별이 없다





지금 몰입했다면, 구독하세요!



처음부터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10. 네 남자의 대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