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잠깐. 여기가 아니야. 그 타투 청년이 우리에게 잘못된 정보를 알려줬어.’
카일은 드미트리가 거짓 정보를 넘겼다는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의 타투샵에서 그림이 그려 넣어지지 않은 열 개의 안대가 소파 옆 탁자위에 올려져 있던 순간이 떠오른거다.
‘안대가 열 개뿐이었어. 로이가 분명 다시 돌아올 거야.’
카일은 타투샵에 로이가 다시 돌아올 거라 확신했다. 매서운 바람을 피해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제이슨을 향해 소리쳤다.
“다시 돌아가자!”
“왜 그래. 드미트리?”
“뭐가?”
“뭔가 계속 불안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잖아!”
“지금?”
“그래 지금! 아니 아까 내가 왔을 때부터 쭈욱……”
“신경 쓰지 마. 남은 안대 나 이리 넘겨줘.”
드미트리는 로이가 늘 원하던 욕조 속 해골의 그림을 안대에 그려 넣었다. 해골의 갈비뼈 수를 하나씩 줄여가며 똑같은 그림을 채운다. 이제 막 갈비뼈가 한 개 인 해골을 마지막 안대에 그려 넣을 참이었다. 현관문에 달려있던 방울 모양 장신구의 명쾌한 소리가 두 남자 사이의 정적을 깼다.
“누가 오기로 했어?”
그 소리에 로이가 물었다. 드미트리는 더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이 그들에게 들려왔다. 둘 사이의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드미트리는 로이에게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로이가 몸을 움직였다.
“빨리 도망가! 로이!”
로이는 재빨리 트래블을 시도했지만 좀처럼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소용없어. 로이.”
두 남자를 불안함에 몰아넣은 불청객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일의 낮은 음성이 공간을 지배했다.
“네가 이곳으로 다시 올 줄 알고 미리 이곳에 와있었지."
'현관문 소리는 페이크였어.'
로이의 생각을 미리 예측한 듯 카일은 서둘러 말을 이어갔다.
"아! 그리고 방금 안티텔레프는 활성화시켰고."
안티텔레프는 트래블러들이 트래블을 할 수 없게 막을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정육각형 큐브모양이다. 일반적으로는 엄지손톱만한 크기이지만 공인된 사용자의 지문을 스캔하면 손바닥만한 크기로 자동 확장된다. 구글맵과 연동되며 GPS로 현재위치를 읽어들인다. 사용자의 위치에 기반하여 일시적으로 제한된 범위안에서 트래블이 불가능하다.
본부에서 불법 트래블을 단속하기 위해 만들었다. 무분별한 트래블을 본부에서는 관리 감독하고 있다. 모든 트래블러들은 고유 코드네임으로 등록되어 있고, 그들의 트래블은 실시간으로 리포트되어 로그로 기록된다. 지구 상에 트래블러와 비 트래블러와의 균형 잡힌 공존 정책의 일환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규정한 그들 세계의 법규다. 법규를 위반한 트래블러들은 코드레벨에 따라 엄격한 징벌을 받게 된다.
“젠장.”
로이는 드미트리 쪽으로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그의 앞으로 바짝 붙어 섰다.
“널 불안하게 만든 원인이 밝혀졌네!”
로이는 왼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려 드미트리에게 속삭였다.
“미안해. 적당히 둘러 댔다고 생각했는데, 저 들이 이렇게 빨리 다시 되돌아올 줄은 몰랐어.”
“뒷문 있냐?”
“불행히도 없어.”
“그럼 옆문은?”
“있을리가......”
“보드카는?”
“그거라면 넘쳐나지! 그게 도움이 될까?”
“지금으로는 최선책이지.”
로이와 드미트리간에 은밀한 대화가 이어지자 제이슨이 경계하며 카일에게 조용히 물었다.
“저들이 뭔가 수상해 보이는데요?”
“둘이서 뭐라는 거냐?”
“글쎄요. 도망갈 생각일까요?”
카일은 이번에는 드미트리에게 소리쳤다.
“어이. 타투 양반. 덕분에 야경 구경 잘했어!”
카일의 말에 로이가 대꾸했다.
“카일? 난 또 누군가 했네. 이 시간에 현관에서 소리가 나길래, 타투하러 온 러시아 여자를 상상했는데……”
“윈하던 바가 아니라 실망했나?”
“오랜만에 보는데 보드카라도 한 잔 하자.”
드미트리가 가져온 보드카가 어느새 로이의 손에 들려있었다. 그는 술병을 흔들어 보였다. 카일은 그를 향해 가까이 걸어갔다. 손에든 안티텔레프를 원탁 한가운데 올려둔다. 뒤 따르던 제이슨은 지니고있던 모래시계를 뒤집어 그 위에 올려놓았다. 로이의 트래블은 안티텔레프로 인해 뒤집힌 모래시계가 아래로 완전히 내려가는 3분 동안 묶어 둘 수 있을 터다.
“원초적 모래시계 등장이군.”
로이의 말에 카일 뒤에 서있던 제이슨이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네 남자는 원탁의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가운데 모래시계를 네 남자가 동시에 주시하고 있다. 올인한 도박판에 마지막 카드를 돌리듯 모두가 비장했다.
드미트리는 보드카를 한 모금 먼저 들이키고 그의 왼편에 앉은 카일에게 건넸다. 카일은 건너편의 로이를 바라보며 한 모금 마시고 역시나 그의 왼편에 앉은 제이슨에게 병을 돌렸다. 보드카를 건 내 받은 제이슨은 그곳에 있는 모두를 한 번씩 쳐다보며 고개를 젖혔다. 그리고는 그도 역시 자신의 왼편에 앉은 로이에게 병을 들이댔다. 로이가 보드카에 입술을 가져갈 때쯤 카일이 입을 열었다.
“그날 일은 유감이야.”
로이는 잠시 입술을 술 병에서 때는가 싶더니 이내 남은 술의 반을 들이켰다.
“카일은 그날 이후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어요.”
제이슨이 말했다. 로이는 술 병을 그의 오른편에 앉은 제이슨에게 건넸다. 제이슨이 받아 들고는 멈추지 않고 마셨다. 카일이 그걸 보고는 술 병을 가로챘다. 그가 남은 술을 마시려다 말고 드미트리에게 건넸다.
“어후. 나는 보드카랑은 안 맞는 거 같아.”
원탁에 놓인 모래시계의 3분의 1이 아래로 쌓여가고 있었다. 로이는 드미트리 앞에 놓인 보드카를 다시 한 모금 들이 켰다. 그리고는 앞에 앉은 카일을 향해 물었다.
“에지는 어떻게 지내지?”
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트래블러: 죽음에는 차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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