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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살리아 Oct 02. 2017

#16. 마녀사냥

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지훈은 소파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어두운 거실 한 켠에서 빔 프로젝터의 불빛이 흘러나왔다.


“순백의 흑인은 어딘지 모르게 낯선 거 같아.”


에지의 말에 제이슨이 자리에 일어섰다.


“알비노들은 인종에 상관없이 나타나는 선천성 유전 질환이야. 멜라닌 합성 결핍으로 신체부위에 색소 부족 현상이 표출돼. 동공, 피부, 털, 머리카락 등이 일반인과는 달라.”


제이슨은 자신의 오른쪽 팔을 들어 왼손바닥으로 피부를 쓸어 보였다.


“너도 좀 멜라닌이 부족한 거 같은데?”


에지의 말에 카일이 나섰다.


“알비노들은 우리와는 다르게 햇빛에 상당히 취약하지. 긴 옷, 모자, 선글라스, 자외선 차단제가 그들에게는 산소와도 같아. 제대로 보호하지 않으면 실명이 되거나 피부암이 발생돼서 생명의 위험을 받을 수도 있어.”


카일의 말에 에지의 표정이 굳어졌다. 제이슨이 말을 계속 이어갔다.


“알비노는 통상 이만 명당 한 명꼴로 나타나. 그런데 가장 햇빛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인 나라에서 그 비율이 상당히 높게 나타나고 있어. 그 비율이 천 사백 명당 한 명 꼴이야.”


“아프리카겠구나.”


“응. 정확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이 지구 상 다른 지역에 비해 그 비율이 높지.”


제이슨이 넘긴 다음 슬라이드에는 순백의 흑인들의 모습이 이어졌다. 에지가 물었다.


“어느 나라 사람인 거지?”


“탄자니아야. 그곳엔 사천 명 이상의 알비노들이 살고 있어. 그들은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약자들이야.”


제이슨의 말에 카일이 덫 붙였다.


“정부 추정치일 뿐이야. 실제로는 십만 명이 넘지.”


카일이 다음 슬라이드로 넘기라고 손짓했다. 제이슨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슬라이드를 넘겼다. 화면에는 여전히 순백의 흑인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이들이었다. 그들은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었다.


“탄자니아에서는 알비노의 신체 일부를 가지고 있으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어. 아주 오래전부터 행해져 온 그릇된 주술의 잔재들이야. 그들의 뼈를 부적처럼 지니기도 하고, 광부들은 금광을 캘 수 있다는 헛된 믿음에 알비노의 신체 일부를 묻고, 어부들은 그들의 머리카락으로 그물을 짜기도 . 실제 탄자니아에서는 알비노의 팔과 다리가 사천에서 많게는 칠만 오천 달러에 거래가 되고 있어. 빈민층들이 한 달에 버는 임금의 수백 배가 넘는 액수야.”


“끔찍하네. 대체 누가 그런 짓을……”


에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이슨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실제 탄자니아 길거리에서는 알비노를 향한 칼부림이 나기도 해. 그들의 신체 일부를 갖고 있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헛된 믿음 때문이야. 심지어 가족마저도 그들에게 칼날을 겨누는 일도 있어. UN 보고서에 따르면 서른여덟 살의 탄자니아 한 여성이 자고 있는 동안 남편에게 팔이 잘렸다고 해. 한 아이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팔을 들고 침실을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봤다고. 알비노의 신체를 먹거나 그들과 성관계를 하면 질병이 낫는다는 속설도 있어. 그래서 신체 절단이나 성폭행들이 심심찮게 일어나. 또, 어떤 이들은 알비노들이 유령이나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알비노를 낳은 여성과 아이를 내다 버리기도 하고, 그들의 무덤이 파헤쳐지고 시신이 사라진 사건도 있어. 이 모든 것이 너무 충격적이고 믿기 어렵겠지만 실제 일어난 일이지. 정말 인간이 저지르는 그 어떤 범죄보다 끔찍한 일이야.”


“마녀사냥이 따로 없네. 그들의 배후가 있어?”


“잔혹한 마녀사냥을 꾸미는 건 대부분 주술사 들이야. 그들은 부와 권력을 얻으려는 정치가들과 결탁돼 있어. 주술사들은 정치가들에게 선거에서 당선되려면 알비노의 신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부추기지. 정치가들은 높은 가격을 주고 알비노의 신체와 시신을 거래해.”


“탄자니아 정부는 뭐 하고 있는 거야?”


“지금까지 알비노에 대한 상해 또는 살인혐의로 재판장에 선 건 고작 열 명뿐이야. 거기에 알비노의 신체를 사려던 구매자는 단 한 명도 밝혀지지 않았지. 이게 현실이야.”


잠시 그들 사이에 침묵이 일었다. 카일이 다음 슬라이드를 넘기며 조용히 자리에 일어섰다. 제이슨이 그에게 포인터를 넘겼다. 카일이 넘긴 슬라이드 화면에 보이는 것은 경호를 받으며 차량에서 나오는 수트 입은 한 남자의 사진이었다. 카일이 입을 열었다.


“나자르 야부. 탄자니아 차데마당 최고위원이야. 알비노 여성 성폭행, 살해 및 신체 유기로 재판에 섰지만 올해 초 무죄로 판결이 났어.”


재빨리 다음 슬라이드를 넘겼다. 한 여성의 사진이 나왔다. 역시나 그녀도 순백의 흑인이었다.


“피해자 줄리아나 아다치에. 당시 나이 열여덟 살. 보는 바와 같이 그녀도 알비노야. 나자르는 3년 전 그녀를 납치해 자신의 별장에서 성폭행한 후 신체를 훼손했어. 방치된 줄리아나는 과다출혈로 끝내 사망하지. 당시 선거일을 두 달 앞두고 저지른 잔혹한 범죄지만 결국 무혐의로 풀려나. 나자르의 별장 뒷 마당에서 시체가 발견됐지만 그의 수행비서가 단독으로 저지른 범죄로 수사가 종결되었어. 수행비서가 모두 자백했거든. 물론 거짓자백이야. 그녀의 아버지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재판을 열었지만 끝내 나자르는 무죄 판결을 받았어.”


카일의 말을 이어 제이슨이 입을 열었다.


“코드네임 줄리. 줄리아나 그녀도 우리와 같은 트래블러였어.”




로이가 집무실에 도착했을 때 파데우스는 자리에 없었다. 파데우스의 집무실은 깨끗했다. 창문은 없었다. 책상 하나와 넓은 책 벽을 가득 매웠다. 방 문 근처에 있던 장식장에는 그가 다른 알비노들과 찍은 사진들이 진열돼있었다.


로이는 몸을 돌려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책상 위에는 각종 서류들이 잘 정돈되어 있다. 한 켠에 손바닥 만한 뒤집힌 액자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액자 안에는 십대로 보이는 알비노 여성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옅고 투명한 푸른빛 눈동자를 바라 보았다. 그 순간 방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소리에 로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단장님께서는 지금 정원에 계세요. 집무실로 손님이 올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이렇게 서 있을 줄은 몰랐네요. 놀랍군요. 그가 당신을 안내하라고 했습니다. 저를 따라오시겠어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에지가 손을 들어 보였다.


“잠깐. 제이슨. 슬라이드를 한 장 앞으로 돌려볼래?”


제이슨이 카일을 쳐다보았고, 이내 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 슬라이드로 돌아간 화면에는 경호원의 호위를 받는 나자르의 모습이 다시 보였다. 에지는 자리에 일어서서 화면 가까이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가 코 앞까지 다가가 걸음을 멈추었다. 이내 화면을 정면으로 응시한 그녀는 두 손을 자신의 입에 가져갔다. 그녀의 작은 얼굴이 손바닥에 거의 가려졌다. 그러나 놀란 두 눈만은 깜박임 없이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설마……”


나자르가 내렸던 차 뒷좌석에 창문을 반쯤 내리고 주변을 둘러보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의 얼굴은 코밑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에지는 그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오웬이었다.




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트래블러: 죽음에는 차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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