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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살리아 Oct 10. 2017

#19. 위기의 시작

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2년 전, 그러니까 오웬이 우리 한테서 완전히 사라지기 3달 전, 거지꼴을 하고 나타나서 미래 얘기를 떠들더라고.”


어둠 속에서 여전히 로이와 에지가 함께 있었다. 거쳐진 침실 커튼에 달빛이 객실을 은은하게 밝혀주고 있다. 낮은 조도는 상대방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신의 한 수였다. 이번에는 로이의 말을 에지가 가만히 듣고 서있었다.


“아마도 우리 미래를 본 거 같아. 일부러 의도 한 건 아니었을 거야. 네가 끔찍이도 싫어한다는 걸, 오웬도 잘 알고 있으니까. 블라디보스톡. 그곳에서 너와 나, 생의 마지막을 목격했다고 했어.”


“블라디보스톡? 내 마지막이 러시아 땅이라니…… 나쁘진 않네. 근데 왜 너와 함께 지?”


“사고 사야.”


“사고? 우리가? 열차 추돌이라도 일어나나? 아! 드미트리 만나러 가는 길이었나 보네. 너 늘 시베리아 횡단 열차 타고 가잖아. 근데 난 왜 따라갔지. 드미트리는 완전 그림쟁이 영감탱이가 돼있겠다. 그지?”


“마린스키 극장이라고 했어.”


“극장에서 공연보다 죽는다고? 나름 로맨틱하네.”


“2년 뒤라고 했어. 에지…… 크리스마스이브에 마린스키 극장에서 폭탄이 터질 거래.”


로이의 말에 에지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의 표정이 달빛에 비쳤다. 벌려진 그녀의 입술선이 또렷하게 보였다.


“뭐…… 뭐라고? 2년 뒤? 폭탄?”


“이제 한 달 남았어.”


“하! 진짜 어이없네. 오웬이 그래? 우리 둘이 그러니까, 크리스마스이브에 러시아에서 죽는다고? 말도 안 돼.”


“나도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어.”


“한 달 뒤에 너랑 극장에 있는 것부터가 말이 안 돼. 그렇지 않아? 로이? 우리가 왜?”


“오웬은 우리 셋다 그곳에 있었다고 했어. 아마도 셋이……”


“거짓말하지 마. 오웬이랑은 끝났잖아. 2년 전에 이미 사라져 버렸잖아.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아무도 모르잖아. 근데 갑자기 우리 셋이 극장에 간다는 게……”


에지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오웬은 미래를 바꾸기 위해 2년 전에 우리 곁에서 사라진 거야. 그가 생각했던 패턴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 너와 헤어지는 거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


에지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애써 덤덤한 척 흔들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버티고 섰다.


“에지. 괜찮아? 미안해. 진작에 너한테 말했어야 했는데, 나도 갑자기 사라진 녀석한테 화가 많이 났었어. 1년은 원망하며 보내고, 1년은 녀석의 행적을 찾아 헤매느라……”


“폭탄이 터졌다고 해도 우린 트래블을 했을 거잖아. 오웬이 말도 없이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안 돼.”


에지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로이의 말에 반박했다.


“현장에 안티텔레프가 있었을 거야. 아마도 우리 정체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덫을 논거 같아. 오웬은 미래를 바꾸려고 여러 차례 패턴을 바꿔봤다고 했어. 그런데 늘 그 시각에 폭탄이 터졌다고 했지.”


“우리를 노린 테러라……극장이었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우릴 노렸다면 굳이 이슈를 만들 필요가 없었을 거잖아?”


“글쎄. 그건 나도 의문이야. 테러범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했을지도 모르지.”


“혹시 그럼, 그게 나자르와 연관이 있다는 거야? 오웬이 3년 전부터 그를 만난 것이 어쩌면……”


“탄자니아 정부와 러시아에서의 테러가 어떤 연관이 있는 것 같아. 지금 그걸 찾고 있어.”


로이는 침대로 다시 걸어갔다. 침대 시트의 끄트머리를 움켜 잡았다.


“뭐 하는 거야? 로이?”


“우리 집으로 가자. 이번엔 내가 보여줄 게 있어.”


로이가 시트를 움켜쥔 손 반대 손으로 에지를 향해 손짓했다. 그의 행동에 에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갔다.


“난 안대는 안 씌워줘?”


에지가 로이의 손을 잡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고개를 바짝 들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에지의 행동에 미소를 띠던 로이가 검지 손가락으로 그녀의 콧등을 툭툭 친 뒤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넌 에이급이니, 안대가 필요 없지.”


로이는 침대 시트를 걷어 높이 올렸다. 널따란 시트가 객실 천장 위로 솟구치며 펼쳐졌다. 시트가 다시 침대 위로 내려앉는 순간, 객실 안이 온통 흰색으로 변해있었다.




‘이렇게 여자를 꼬셔서 자기 방으로 데려간다는 거구나.’


에지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은색 종 모양의 스탠드 조명을 제외하고는 온통 순백의 공간이었다. 로이는 오른쪽 방문 앞에 섰다.


“방 문이 두 개네?”


에지가 로이에게 물었다.


“왼쪽은 페이크! 오른쪽이 진짜 우리 집! 혹시 여자들이 자는 사이에 안대를 풀 수도 있으니까. 일종의 안전장치지.”


로이가 오른쪽 방문을 열었다. 순백의 계단실이 원형으로 나있는 그곳을 성큼성큼 내려갔다.


“여기로 내려와 에지!”


그의 부름에 에지도 따라서 방문을 나섰다. 왠지 기분이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세렝게티 초원 한가운데에 있다가 온통 흰색인 그곳에 서있으니, 분명 확실히 이상했다.




공간 가운데 놓여진 커다란 직사각형의 테이블 위에는 사진들과 종이 서류들이 불규칙적으로 흩어져있다. 에지는 제이슨이 보여주었던 자료들과 동일한 대부분을 그곳에서 발견했다.


“오웬이 그렇게 사라지고, 너마저도 연락이 되지 않아서, 나도 너무 혼란스러웠던 거 같아. 이렇게 네가 그를 추적하고 있었을 줄은…… 오해해서 미안해. 로이.”


“사과는 오웬을 만나면 해. 아니지. 그 녀석이 우리한테 사과해야지! 누가 자기보고 살려달랬나? 혼자 영웅 짓은 다하고 있어.”


“오웬은……”


“뭘 좀 마실래?”


에지의 말에 로이가 화제를 돌렸다. 에지도 더 이상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진 않았다.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논의할 순간이다. 사건의 본질에 집중할 시간. 근본적인 사건의 원인을 풀어내야 했다.


에지가 고개를 들어 끄덕였다. 로이 너머 창가에 놓인 로벨리아 화분이 그순간 에지의 눈에 들어왔다. 에지의 시선이 화분에 한동안 머물었다. 그것을 본 로이가 말했다.


“아. 저거. 예쁘지? 오늘 선물로 받은 거야.”


에지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고 어깨를 쓸어내렸다. 그것을 본 로이가 말했다.


“여긴 탄자니아가 아니니, 그렇게 젖은 머리에 가운하나만 걸치고 있으면 감기 걸리겠다. 잠깐 기다려. 금방 다녀올께.”


로이는 잠시 망설이다 에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


“난 오웬 처럼 네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지진 않을테니, 그렇게 불안한 표정은 보이지 말아줘.”


로이가 마실 것을 가지러 사라진 자리에 화분이 더 선명하게 에지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에지는 파란색 꽃잎을 바라보았다. 만개한 꽃잎들이 그녀를 똑바로 주시하는 듯했다. 순간 섬뜩함이 들었다.


‘아…… 저 꽃을 분명 어디서 봤는데…… 뭐지? 왜 이렇게 뭔가 불안한 거지.




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트래블러: 죽음에는 차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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