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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살리아 Nov 12. 2017

#20. 돌고래 훈련생

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이 친구, 많이 피곤했나 봐요.”


제이슨은 소파에서 잠이든 지훈에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잔뜩 웅크린 지훈의 모습을 보고 반대편 소파에 누워있던 카일이 제이슨에게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이내 다시 사라졌다 나타난 제이슨의 손에는 담요 한 장이 더 들려있었다. 웅크린 지훈 위로 담요가 추가 되었다.


“오늘도 잠이 안 와요?”

          

제이슨은 어두운 거실에서 침묵을 지키던 카일에게 물었다. 카일은 대답 대신 팔짱을 낀 채, 몸을 꼼지락거리며 등을 지고 돌아 누웠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제이슨도 빈 소파 깊숙이 등을 기대앉았다. 엉덩이를 쭉 빼고 고개를 뒤로 젖혀 소파에 파묻었다. 천천히 눈꺼풀을 덮었다. 어깨는 축 늘어뜨리고, 두 팔은 아무렇게나 떨궈졌다. 그의 무릎이 소파 앞에 놓인 탁자에 닿을 듯했다. 둘 사이에 적막함이 감돌았다. 깊게 잠이 든 지훈의 옅은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에지는 좀 전에 탄자니아로 떠났다.”


카일이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목소리를 냈다. 그의 목소리에 감았던 제이슨의 눈이 떠졌다. 어두운 거실 천장이 그곳에 있었다.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눈이 떠졌다. 어두운 방 안 천장이 그곳에 있었다.  대수롭지 않은 듯 침대의 누운 남자는 다시 눈을 감았다. 또 한 번의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반신만 일으켜 세워 아래층에서 잠이 든 친구를 살폈다. 고요하게 잠이 든 모습을 확인하고는 다시 몸을 누우려던 찰나, 뭔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자세히 소리에 집중하니, 방 문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남자는 2층 침대에서 벗어나 순간적으로 방문 앞에 섰다. 뒤를 돌아 깊은 잠에 빠진 친구를 바라보았다.


‘오늘 훈련이 빡세긴 했나 보네.’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그 끝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긴 복도를 지나자 막다른 길에 닿았다. 벽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얼굴을 돌려 벽 가까이 귀를 가져갔다. 남자의 단 잠을 방해했던 소리의 근원이 그곳에 있었다. 얼굴을 들어 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자신이 걸어왔던 긴 복도를 돌아보았다. 복도 끝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벽 너머에는 뭔가가 있다. 남자의 호기심은 다음 단계로의 발 빠른 판단을 가져왔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한 뒤, 벽 너머의 공간으로 트래블을 시도했다.


‘윽. 뭐… 뭐지?’


남자의 몸이 잠시 사라졌다가 처음에 서있던 벽 앞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튕겨져 원래에 있던 자리로 내던져졌다. 여러 차례 트래블을 시도했으나 똑같은 행동을 반복할 뿐이다. 처음 경험한 이상한 현상은 남자를 당황케 했다. 더집중하여 강한 움직임을 취할수록 벽에서 더 멀어진 복도로 밀려났다. 여덟 번째 대차게 넘어진 뒤 힘겹게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려 하는 순간, 벽 앞에 또 다른 남자가 나타났다.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쓴 채 바닥에 널 부러진 남자를 내려다보며 서있다. 서로가 얼굴을 맞대고 그 공간에서의 마주침에 놀란듯했다. 자신과는 다르게 멀쩡하게 벽 앞에 서있는 정체 모를 남자의 존재에 놀랐다. 그리고 자신의 잠을 방해했던 소리가 사라진 뒤 나타난 남자의 등장은, 그가 그 소리의 주원인이며, 왠지 모를 개운치 않은 일들이 벽 너머에서 행해졌다는 생각으로 빠르게 전환되었다.


“누구세요?”


바닥에 있던 남자의 물음에 서있던 남자는 대답 대신 넘어진 남자 쪽으로 손을 뻗었다.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려던 행동처럼 여겨졌으나, 서있던 남자의 출혈로 인해 바닥으로 떨어진 핏방울들이 넘어진 남자의 시선을 끌었다. 그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일었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경보음이 울렸다. 서있던 남자는 넘어져 있던 남자를 한 번 응시한 뒤,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서있던 자리에 흥건한 피의 흔적이 남았다. 그리고 그 위로 손톱만 한 정육각형의 큐브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유일한 목격자 인가?”


“23기 훈련생이에요. 코드네임 제이슨. 25세. 오늘 새벽, 잠결에 소음을 들었다네요.”


“훈련생들 숙소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지?”


“120m 정도 될 거예요.”


그 말에 카일이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저도 처음엔 놀랐죠. 특별한 청력을 가졌어요. 15만 헤르츠까지 소리를 감지할 수 있답니다. 보통의 인간 청력, 평균 2만 3천 헤르츠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수치죠. 저희들 사이에선 이미 돌고래로 소문이 났어요. 각성 나이는 17세. 다른 훈련생들에 비하면 매우 늦은 편이죠. 근데 들리는 얘기로는 훈련생들 사이에서도 이미 특출 나다고 하더군요. 이번 주만 지나면 훈련도 모두 끝나고, 우수한 성적에 정식 요원으로 발탁됐을 텐데…… 아까운 친구에요.”


여자는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카일이 그녀에게 고갯짓을 하며, 중지와 엄지 손가락을 부딪혀 튕겼다. 여자는 그의 행동에 재빨리 밀봉된 지퍼백을 넘겼다. 지퍼백 안에는 피 묻은 정육각형 큐브가 들어있다. 여자가 말을 이어갔다.


“제이슨과 같이 발견됐어요.”


“훈련생들한테는 안티텔레프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나?”


그 말에 여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카일이 밀폐된 방안에 들어서자 제이슨이 불안한 듯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에 카일은 손목을 위아래로 흔들어 보였다. 두 남자가 마주 보고 자리에 착석했다.


“23기 훈련생. 코드네임 제이슨. 훈련이 곧 끝나가는데, 고작 3일 앞두고 새벽에 이탈을 했다?”


“…”


“그것도 보안지역에 잠입해서, 뭔가를 훔치려 했고……”


“훔친 게 아닙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벽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서……”


“벽 앞에서 마주친 남자의 얼굴을 확실히 보았나?”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은 스피커 폰으로 방문 너머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여자에게 말했다.


“잠깐 자리 좀 비켜줄래? 5분이면 충분해.  내가 따로 보고 할게.”


“선배, 카메라는 끄시면 안 돼요.”


여자가 사라지자, 카일은 기다렸다는 듯이 녹화되는 카메라의 전원을 껐다.


“어이쿠. 실수로 카메라가 꺼졌네.”


능청스러운 그의 행동에 제이슨은 긴장을 했다.


“지금 이 공간에는 너! 그리고 나, 우리 둘 밖에 없어. 실수로 카메라도 꺼졌고 말이지. 너처럼 특별한 청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우리가 지금부터 여기서 나누는 대화는 너와 나, 우리 둘만 아는 거야.”


카일의 눈 빛이 범상치 않게 변했다. 제이슨은 더 긴장이 된 얼굴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제 본 남자가 이 자 인가?”


카일이 사진 한 장을 품에서 꺼내 제이슨에게 보여주었다. 분명 오늘 새벽, 제이슨 앞에서 피를 흘리고 서있던 남자와 동일한 인물이었다.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카일은 이내 좀 전에 여자로부터 받은 지퍼백을 꺼내 사진 옆에 두었다.


“어제 이 자가 흘리고 간 물건이야. 당연히 너는 이게 뭔지 모를테지만……”


“중요한 물건인 건 알겠어요.”


제이슨이 빠르게 대답했다. 카일이 그런 그의 눈 빛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맞아. 아주 중요한 물건이지. 이건 트래블러들을 단속하기 위해 만들어진 안티텔레프라고 해. 활성화가 되면 일시적으로 트래블을 막을 수 있어. 정식 요원이 되어도 레벨에 따라 지급되는 품목이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야.”


“그럼 어제 제가 본 그 남자도 레벨이 높은 요원인가요?”


제이슨의 물음에 카일이 잠시 뜸을 들였다.


“146”


“네?”


“오늘 새벽에 사라진 안티텔레프의 개수야. 이건 그중 하나고.”


카일이 지퍼백에 든 피 묻은 안티텔레프를 내려다보았다.




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트래블러: 죽음에는 차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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