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릿한 비 냄새를 덮는 꼬릿한 청국장 냄새가 지독하게 입맛을 당겼다. 제육볶음에 도토리전도 곁들이니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청국장에 비빈 밥을 크게 떠서 제육볶음을 올려 와앙-하며 먹는 나를 힐끔 보더니 L이 우물거리며 대충 물었다.
"야, 너 살쪘지?"
"응. 티 많이 나?"
실제로 작년 가을에는 허리가 헐렁거리던 바지가 지금은 꽉 낄 정도로 살이 쪘다. 그때 파혼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결혼준비 한다고 다이어트 중이었을 텐데.몸매 관리한다며 이렇게 맛있는 청국장과 도토리 전과 제육볶음을 참고 풀떼기만 먹고 있었겠지. L은 내 결혼식 축가를 불러주기로 했었다. '내 결혼식'이라니.지금은 꿈결같이 느껴지는 말이다.
"야, 너 자칫하면 지금 노래연습해야 될 수도 있었어."
킥킥. L도 웃고 나도 웃었다. 파혼 후 11개월. 이제는 농담 삼아 꺼낼 말이 되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를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마터면 내 남편이 되었을 뻔했지만 지금은 남이 된 그 사람. 내가 아니어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많다던 그는 지금도 그렇게 자신만만한 모습 그대로일까.
떠나보내는 마음이 쉽지 않았으니 부디 떠나는 마음도 어려웠길.
비 오는 날, 청국장 먹다가 괜스레 아련해지는 것이 뜬금없어 우습기도 하다. 웬 청승이람. 한동안 그렇게나 아파하던 순간들은 한낱 지나간 사랑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살이 아니라 행복이 찐 거야."
"응, 지금이 훨씬 나아."
무심하게 던지는 L의 말에 "그래애?" 하며 킥킥 웃었다. L이 턱으로 길 건너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가리켰다.
"후식은 아이스크림. 어때?"
"극락인데?"
나의 빠른 대답에 L도 킥킥 웃었다.단꿈 같던 결혼은 결국 하지 않게 되었고 마치 나의 세상이 끝난 것 같았는데, 파혼 후에도 여전히 나의 일상은 꽤 재미있다.
청국장은 푹 삶은 콩을 더운 방에서 꾹 띄워 만든 된장의 한 종류이다. 냄새는 좀 나더라도 입맛 당기는 청국장이 되기 위해서는 발효를 시켜야하 듯, 기억도 추억이 되려면 수고와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꾹꾹 눌러 담은 '불행'은 잠시 지나가는 상태에 불과해지는 때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