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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아 May 20. 2023

'그런 사람들'에서 '그런 사람'을 맡고 있습니다


"남편 친구 중에 파혼한 사람도 있고 이혼한 사람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랑 어울려 다니지 말라고 했어요."


회사에서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요새는 이혼하는 사람이 많아서 번호표 뽑고 기다려야 한다얘기를 듣고 있다가 별안간 불똥을 맞았다. 내가 파혼한 걸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상처를 주려고 일부러 아픈 말을 고른 것은 아니었겠지만, 생각 없이 던진 말에 마음이 움푹 파였다. 이혼과 파혼의 원인이 당사자의 문제로 치부하는 현실, 이것이 결혼에 실패한 서른다섯이 마주해야 하는 민낯이다. 내가 의도한 불행이 아니었건만, 혹시나 불행이 옮아올까 봐 꺼리는 시선 속에서 나는 까닭도 없이 실패자, 문제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 세상에서 나만큼 나의 행복을 바랐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많이 참고, 많이 울었고, 많이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하지 않았던 사건이 인생에 끼어들었다. 당신은 행복을 얻기 위해 나만큼 애써 보았느냐고, 지켜내는 것만큼이나 내 손으로 깨뜨리는 마음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고 따져 묻고 싶다. 하지만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얘기하는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얘기할 수도 없으니 그저 애써 못 들은 척, 밥만 열심히 먹었다. 의 불행은 시간이 지나참아내야 할 것들을 이토록 끊임없이 내 앞에 가져다 놓는다.


'공부'가 성적표였던 시절에, 나는 '내 친구'라고 하면 엄마들이 좋아할 만한 모범생이었다. "걔랑 놀지 말고 '쟤'랑 놀아."에서 당당히 '쟤'를 맡아온 인생이었다. 하지만 서른다섯 살이 된 내가 받은 성적표는 '결혼'인 듯하다. 주변에서 "저러니까 이혼했지." "저러니까 결혼 못했지." 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겪어보기 전에는 그냥 흘려들었을 말들인데 파혼 후에는 그 말들이 상처에 와서 정확히 꽂힌다. 결혼 상태 여부가 나의 모든 걸 대변하는 건 아님에도, 사회에서는 '남들 다 하는 결혼을 못한 그런 사람'으로 분류되어 버리는 것을 느낀다. 브런치 상단에는 이혼 관련된 글들이 넘쳐나고 비혼주의자가 많아져서 비혼식이니 비혼 복지제도가 생긴다는 기사가 하루 걸러 올라와도, 내게는 시험 한 번 망친 걸로 루저(loser)가 되는 냉혹한 성적표가 쥐어져 있는 기분이다. 직업적으로 얼마나 성취를 이루었는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것을 잘하는지에 상관없이 '결혼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라고 입방아에 올라야 하는 것이다.


어울리면 안 되고 피해야 하는 '그런 사람들'에서
'그런 사람'을 담당하고 있는 인생이라니.

                                                                     

슬픔을 나눠 지지도 않을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고 싶지 않음에도 매번 이렇게 새롭게 상처를 받는 건 또한 내 안의 패배감 때문이겠지. 아무리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지만, 내가 주위를 검게 하는 먹 한 방울이 된 것은 상당히 억울하다. 자기는 영원히 행복하기만 할 거라 생각하나 보지? 어디 한 번 두고 보라지. 소인배 같은 마음이 들고야 마는 치졸한 나의 민낯이 부끄럽다. 한편으로는 자기가 가진 행복물들까 봐 걱정하는 마음속에는  만한 크기의 안이 있거니 싶다. 금방 물 들 것 같은 정도의 연약한 견고함을 행복이라고 지키고 있는 사람들도 딱한 존재들일뿐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주류에서 비주류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먼저 겪고 있는 것이라고 토닥여본다. 오늘도 남들처럼 살기보다 나답게 사는 길을 걸어보는 중이다. 



https://brunch.co.kr/brunchbook/diseng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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