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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아 Jul 23. 2023

파혼 후 1년, 이제 오이가 싫어졌다


"어우, 써."


콩국수 고명에 올라간 오이가 써서 퉤, 뱉었다. 가족들은 아무도 쓴 맛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오이를 좋아했었는데 최근 들어 오이가 못 먹게 쓰게 느껴지는 날이 잦았다. 입맛이 변했나.


"잘 먹던 오이가 왜 쓰다고 그래? OOO 됐니?"


엄마가 언짢게 말을 던진다. OOO는 1년 전에 헤어진 내 전 남자친구이다. 결혼 준비하다가 파혼한 이후로 엄마가 먼저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건 처음이다.

 

"OOO가 오이를 못 먹었었나?"


난 이제 그가 잘 떠오르질 않는다.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 인사 온다고 할 때 엄마가 음식 장만을 하면서 못 먹는 게 있는지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그래, 그 사람은 오이를 안 먹었지. 나도 까맣게 잊은 걸 엄마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도 깊게 남은 상처가 되었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래도 먼저 이름을 꺼내신 걸 보면 조금은 괜찮아지셨다는 의미일라나.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 이름을 꺼내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냥 수많은 지나간 남자친구들 이름인 양. 사실 아닐 것도 없지, 뭐. 결혼을 결심할 정도로 사랑했을 뿐, 평생을 함께할 것이라 한 때 확신했을 뿐, 특별할 것도 없는 지나가는 인연이었을 뿐이다. 왜 지나칠 수밖에 없었느냐면 내 잘못도 아니고 그의 잘못도 아니오 그저 우리의 연이 거기까지였던 까닭이다. 우리는 우리의 연을 다 썼기 때문에 헤어진 것이다.


35년을 살아온 어느 날에야 비로소 오이가 싫어진 것처럼!


오이와의 인연도 35년이 전부였구나. 오이냉국, 오이김치, 오이피클, 아무튼 오이는 이제 안녕! 당장에는 좋아했던 맛을 잃어버려 조금 슬프지만, 세상에는 맛있는 것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어서 네가 없어도 살만 하긴 해. 나는 너 없이도 잘 먹고 잘 살아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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