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얼마 전 속초에 다녀왔다. 6월은 희성과 나의 결혼기념일이 있는 달이다. 우리는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6월마다 특별한 일을 계획한다. 올해의 이벤트로 여행을 골랐던 것은 우리에게 휴식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음악 잡지 기자 일을 하면서 프리랜서 작가이자 번역가로 일하는 희성은 낮과 밤, 그리고 평일과 주말의 구분 없이 일을 한다. 컴퓨터와 휴대폰이 곁에 있는 한 그가 온전한 휴식을 취하는 날은 일 년에 단 며칠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자기개발 휴직을 한 뒤로 제대로 쉬지 못했다. 직무 관련 공부와 자격증 취득을 하고 개인적으로 배우고 싶었던 다양한 것들을 배우느라 쉴 틈이 없었다. 친구들이 제발 좀 쉬라고 나를 타이를 정도였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여행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을 컨셉으로 했다. 우리는 옷과 수영복, 그리고 필수 소지품 외에 일과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다. 단, 여행지에서 읽을 책만은 허용하기로 했다.
02.
고속버스에서 내려 속초에 발을 내딛는 순간, 가장 먼저 만난 것은 몸을 움츠러들게 할 만큼 매서운 해안지역의 바람이었다. 아직 유월 초, 서울의 한낮은 이미 한여름에 접어든 것처럼 모든 것을 뜨겁게 녹여버릴 듯한 기세였지만 속초는 달랐다. 후텁지근한 열기를 상상하며 당장이라도 동해바다에 풍-덩 뛰어들기로 작정한 우리의 다짐이 무색하게도, 기온은 서늘했다. 우리는 괌이나 발리 같은 휴양지를 방문한 사람처럼 한여름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한 서로를 비웃으며 몇 번이나 옷깃을 여몄다.
속초가 서울보다 훨씬 시원한 것이 해안지방이기 때문인지, 강원도의 산맥을 넘어 위치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서울에 비해 다소 북쪽에 위치해서인지 궁금했다. 이유야 무엇이든 우리가 익숙한 곳으로부터 멀리 떠나왔음을 확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여름의 성수기가 닥치기 전의 속초는 놀랄 만큼 사람이 없었다.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뿐 아니라 지역주민도 마주치기 어려웠다. 105.76k㎡ 면적의 땅에 8만여 명의 사람이 살고 있는 속초는 605.2k㎡의 땅에 937만 명이 밀집한 서울에 비하면 인구밀도가 2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한적한 도시이다. 모든 것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서울을 떠나 찾은 그곳은 우리가 원하던 휴식을 취하기에 완벽했다. ‘리트리트(retreat)’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후퇴, 철수, 도피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여행은 여러모로 후퇴와 도피에 가까웠다. 서울로부터, 일로부터, 우리를 괴롭히는 온갖 부침으로부터 도망쳐온 것이다. 킹크랩찜을 먹기 위해 찾아간 전통시장에서도, 멋진 외관과 다양한 큐레이팅이 돋보였던 로컬 서점에서도 사람으로 북적이지 않는 한산함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03.
다음날 우리는 숙소 근처의 작은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바다 수영을 좋아하는 희성은 어떻게든 바다에 뛰어들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충분히 데워지지 않은 바닷가의 공기가 우리를 불안하게 했지만 한낮의 태양열을 믿어 보기로 했다. 정오가 넘어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이글거리기 시작한 햇볕이 제법 따가웠다. 해변에도 역시 인적은 드물었다. 우리는 적당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고 돗자리와 양산을 펼쳤다. 해수욕하기엔 차가운 바닷물 때문이었는지 수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희성은 약간의 준비운동 후 웃통을 벗어던지고 바닷물로 풍덩 뛰어들었다.
나는 돗자리에 누워 다니엘 튜더의 <낯선 이방인의 산책>을 읽기 시작했다. 들리는 것은 오로지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뿐이었다. 따뜻한 햇빛 아래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의 마음도 알맞게 익어갔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글자 너머로 친구를 얻은 듯이 행복했다. 아무것에도 치이거나 쫓기지 않고 순간의 감각에만 몰두하는 시간은 마치 라디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주파수가 꼭 맞는 채널을 찾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04.
저녁을 배불리 먹고서 청초호를 걸었다. 배도 떠 있는 데다가 저 멀리까지 넓게 펼쳐진 모습이 언뜻 바다와 비슷해 보였지만, 수변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나 공기는 바다와는 완전히 달랐다. 호숫가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나무 쉼터에 설치된 망원경을 발견했다. 우리는 각자 하나씩을 차지하고서 망원경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렌즈를 통해 바라본 호수의 모습은 놀라웠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잠잠해 보이던 호수의 표면에 잔물결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 순간 격렬히 움직이는 바다와는 다르지만, 호수에도 분명한 움직임이 있었다. 좌우로 진동하는 고요한 움직임. 그리고 그 수면을 딛고 폴짝 튀어 오르는 물고기들이 보였다. 가만히 고여 있는 줄로만 알았던 호수의 생동을 깨닫게 되자 대단한 비밀을 알게 된 것처럼 신비로웠다. 이 호수가 더욱 궁금해진 나는 지도앱에서 청초호를 검색해 보았다. 놀랍게도 이곳은 보통의 호수처럼 사방이 막혀 있지 않고 바다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 물은 잠시 이렇게 머물렀다가, 다시 흘러 바다로 가는 걸까.
‘조용히 흐르는 호수.’
멈춰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부단히 움직이고 있는 호수를 바라보며 그 모습이 ‘나의 쉼’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 늘 바삐 움직이고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휴식과 돌아봄의 시간을 뒤처짐과 동일시하며 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진정한 휴식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과 주변에 귀 기울이며 조용한 변화를 도모하는 시간에 가깝다. 차분하게 존재하지만, 명백한 움직임을 담고 있는 호수의 표면처럼.
남들이 한참 일하며 승진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시기에 내가 휴직을 선택한 것은, 속초에서 보낸 시간과 어딘가 닮아 있었다. 늘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워야 했던 삶으로부터의 도피. 외부의 자극을 덜어내고 현재에만 집중할 수 있던 경험은 다름 아닌 나, 그리고 나의 속도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휴직도, 속초에서의 시간도 내게 꼭 필요했던 전략적 후퇴에 가까웠다. 숨을 고르고 자신을 깊숙이 바라보는 시간, 고요한 호수와 같은 시간. 그 시간은 결국 나를 다시 바다로 흐르게 할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호수를 떠나오면서 나는 종종 이번 여름의 속초를 추억하게 될 것이라 예감했다.
05.
속초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곧 낯익은 빽빽함이 피부에 와닿았다. 북적이는 사람과 도로 위의 차, 가득한 소음과 열기. 더불어 복직도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곧 다시 익숙한 치열함 속으로 뛰어들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서 속도에 휩쓸려 억지로 달려가고 있을 때마다 속초의 호수와 해변의 시간을 떠올리리라 다짐했다. 기꺼이 쉬어가는 것. 다른 이들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필요할 땐 과감히 작전상 후퇴를 외치는 것. 고요히 흐르는 호수처럼 존재하는 법을 절대 잊지 않기로 한다.
글, 사진 - 주페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