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기타를 갖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외국 록가수에게 푹 빠져 어쿠스틱 기타를 사달라고 부모님을 졸랐다. 그때 나는 한동안, 기타만 칠 수 있다면 그 가수처럼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 후로 20년간 꾸준히 기타를 쳤지만 나는 그간 공들인 시간에 비해 기타를 잘 치지 못한다. 내 꿈은 기타리스트가 아니라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싱어송라이터였고, 처음에는 기타를 엄청나게 잘 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공연도 하면서 이 세상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버렸다. 노래를 잘하거나, 기타를 잘 치거나 혹은 둘 다 잘 해버리거나.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가진 애매한 재능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음악을 그만두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음악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종종 기타를 좀 깊이 연습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분야든, 타고난 재능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할 수 있는 실력을 뛰어넘으려면 엄청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내게는 그럴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어차피 노력해도 뛰어난 수준에 이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자 의욕도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몇 년 동안 기타를 케이스에서 꺼내 보지도 않은 채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던 중, 내가 다시 꾸준히 기타 연습하게 된 것은 정말로 우연에 의해서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한 때 너무도 소중했던 것을 잊고 살고 있다는 부채감에 늘 시달리고 있었다. 일단 마음을 먹고 가볍게 연습을 시작하자, 그간 미뤄왔던 것이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었다. 1월에는 거의 매일 몇 시간씩 기타 연습을 했다. 한번 자리에 앉아 연습에 몰두하다 보면 한나절이 훌쩍 지나갔다. 오랜만에 말 그대로 무언가에 ‘빠져든다’는 감각을 느꼈다. 매일 같이 이렇게 하루 종일 기타만 치는 것이 직업이래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몸 편하게 누워있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마음을 고쳐먹고 자리에 앉았다. 막상 시작하면 재미있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클래식 기타 교본과 재즈 기타 교본을 번갈아 가며 연습하고, 내가 만든 노래들을 연주하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손의 감각을 되돌려 보았다.
그렇게 매일 연습한 지 이 주 정도 지났을 때쯤 기타 지판을 누르는 왼손 손가락 끝에 다시 굳은살이 단단히 박였다. 지판을 누르는 손가락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혼자 조금 더 연습해 보고, 좋은 선생님에게 수업을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과거의 열망을 깊은 바닷속에서 꺼내 올리면서 생각했다. 일단 재미있으니까 열심히 연습해 보자고. 하지만 잊고 있던 손의 감각들을 기억해 내며 익숙한 질문에 가닿았다. ‘순수한 열정, 그다음에는 무엇이 있지?’
우리 엄마는 엄청난 열정으로 기타를 오 년 정도 배우고 있지만 아직 어떤 곡도 (미안하지만) 완곡하지 못하고 있다. 또 동네 풍물패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기타보다는 장구에 소질이 있는지 그룹 내에서 유망주에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기타를 치는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나처럼 기타를 치는 것이 소원이라며 부러워하고, 무엇보다도 기타 치는 것이 제일 재미있다고 말하며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종종 점심을 함께하는 A 팀장님은 매주 두 번씩 점심시간을 이용해 피아노를 배우러 다닌다. 지금 다니는 학원 말고도 개인 레슨도 받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엄청나게 진지하게 임하고 계신다는 걸 느꼈다. 이렇게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즐거움만으로도 사람들은 행복해하고, 행위 자체에서 의미를 찾기도 한다. 나도 처음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 시작했을 때 분명히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다.
사실 음악이 즐거운 것을 넘어서 ‘잘하는 것’이 되길 바랐던 나에게는 내가 원하는 만큼 잘할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 감정은 행위의 즐거움까지 사라져 버리게 했다. 세상에는 재능이 많은 사람이 있고, 그 재능으로 인해 많은 사랑을 받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뭔가를 시작해 볼 만큼 충분한 재능을 가졌더라도, 그것이 남들과는 전혀 다른 유의미한 수준에 도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가진 재능이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보이지 않는 유리 벽에 닿는 듯한 감각을 느낀다. ‘나는 절대 저 너머로 넘어갈 수 없을 거야’라는. 처음 마음, 노래하는 것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던 시간은 그러한 그늘에 가려 잊히고 닳아 없어진다. 우리의 노래는 그렇게 각자의 이유로 잠시 혹은 영원히 멈추기도 한다.
하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다시 음악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내 안에 아직 음악이 남아 있다는 뜻이 아닐까. 어쨌거나, 이 마음이 어디로 갈지는 조금 더 들여다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잘하지 못하는데도 남들 앞에서 ‘이것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젊은 나이일 때보다 지금이 더. 사회인으로서의 자아가 있고, 내가 직업적으로 이룬 것들이 있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무 멜로디도 흥얼거리지 못하는 삶은 정말이지 너무 퍽퍽하기만 하다. 기타를 연습하고, 음악을 듣고, 오롯이 그 일에만 몰두해 보는 일은 다시 입가에 익숙한 멜로디들을 흥얼거리게 했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꿈에서도 기타를 쳤다. 나는 내 텔레캐스터 기타를 치고 있었는데, 꿈속의 시야에서는 다른 것 말고 기타의 넥을 쥐고 있는 내 왼손만이 보였다. 꿈속에서 나는 내가 요즘 연습하고 있는 재즈곡의 솔로 라인을 연주하고 있었다. 아직 연습이 부족한 탓에 종종 툭하고 끊어져 버리는 내 연주와는 달리, 꿈의 멜로디는 끊임이 없었다. 아름다웠다. 그 곡의 테마가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뒤에도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꿈의 연주를 이어 나가듯, 그날도 쉬지 않고 연습했다. 가닿는 곳은 없어도, 한동안 노래는 계속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글, 그림 - 주페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