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21
"페페씨는 일이 재미있나 봐요."
얼마 전 상사에게서 이 말을 듣게 되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열심히 하는 모습에 대한 칭찬과 격려가 섞인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아니요. 재미 없어요." 라고 답했다.
상사는 왜 내가 일을 재미있어 한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일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 것 같았다. 나는 그날의 대화가 끝난 후 지독히도 재미없는 이 일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내 모습에 대해 고민했다. 그 성찰에는 깊은 현타가 뒤따랐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일을 하며 늘 만성적인 두통과 등과 어깨 통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근래에는 유독 컨디션이 떨어진 상태였다. 이유를 더듬어 생각해 보다가 새삼스레 내가 정말 사무실에서 엄청난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어긋나서는 안된다는 생각, 그리고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문제가 생길 거라는 불안은 나의 신체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적절하게 주어진 양의 일을 명확히 끝냈을 땐 분명 효능감을 느낀다. 하지만 일이 너무 많아 버겁게 느껴질 때, 도저히 개인으로서의 나와 직장인으로서의 내가 균형을 잡을 수 없다고 느껴질 때 가슴이 답답해진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과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 주는 불안감 속에서 나는 어떻게든 모든 것을 궤도에 다시 올려 놓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왜, 무엇을 위해서.
친구들이 늘 나에게 말하듯 100점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왜 이리 어려운 걸까. 완벽에 대한 강박이 나를 지치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숨을 고르고 다시 생각해 보려 노력하고는 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애초에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나를 이렇게 좀먹게 할 가치가 있는 일인가 하는 질문도 떼놓을 수 없다. 만약 내가 하는 일이 모든 것을 쏟아 '내것'을 만들어 내는 창작의 영역에 있었다면, 내가 일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톱니바퀴 돌듯 제자리에서 돌아가고 있는 일의 소모품이 되기 위해 내 모든 힘을 쏟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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