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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페페 Sep 22. 2024

고요에 대한 갈망

 어느 도서관에서 하는 인문학 강의를 듣게 됐다. 인문학 잡지 편집자님의 강의를 듣고 수강생들끼리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방식이다. "쉼"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쉼을 찾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재미있었다. 


 어떤 이는 걷고, 어떤 이는 뜨개를 하고, 어떤 이는(=나) 식물을 키운다고 말했다. 나의 말에 어떤 분이, 식물을 키우는 것은 휴식이 아니라 노동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대화를 듣고 있던 편집자님은 식물을 키우는 것에 대해 '기르기 방식의 쉼이네요!' 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줄곧 그것을 '비워내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르기이자 동시에 비워냄이라고 답했다. 


 식물을 키우는 것이 노동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행위의 고요함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머릿 속이 누적된 갈등과 소음으로 가득 차있는 상태에서, 온전한 내면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을..


 토론 시간에 말하지는 못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는 것도 최고의 휴식이다. 넷플릭스에서 새로운 시리즈를 발굴해서 주말 내내 정주행을 한다든지. 그냥 누워 있는다든지. 충분히 비워내지 않으면 머릿속으로 바글거리는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엄두를 낼 수 없다.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지난 주에는, 이런저런 회사일들로 머릿속이 가득 차버려서 감당할 수 없게 힘들었었다.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 애쓰며 내가 갈망하는 것은 오로지 고요일 뿐이라고,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평안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요즘들어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려는 것들이 있다. 

1. 하염없이 스크롤을 내리며 릴스 보는 일 

2. 인스타그램에서 보여주는 쓰레드 추천글에 혹해 쓰레드 앱을 까는 일

   (미리 보기로 보여지는 앞부분이 너무 궁금해서 참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면 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이런 것

1. 가능할 때에는 점심시간에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것 (피아노 연습, 책 읽기) 

2. 출근 길에 책 읽기 (단 몇 페이지라도)


 와글와글거리는 생활 속에서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는, 인터넷 세상 속에서만이라도 원치 않은 자극을 차단하는 편이 좋겠다고 마음 먹었다. 사람들은 대체 어떤 에너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걸까. 주말의 나는 어디론가 놀러가보는 엄두는 내지도 못하고 오롯이 집안에서의 회복을 선택한다. 


 회복 방식의 연장선상에서 말하자면, 정형외과의 물리치료 베드에 누워있는 것을 좋아한다. 전기 치료니 레이저 치료니 하는 것들의 효과는 알 수 없지만 치료 베드에 가만히 누워 느끼는 고요함을 좋아 한다. 눈을 감고 치료 부위의 감각과 등에서 꿀렁거리는 안마 기능의 시원함에 집중하다 보면 이내 온 몸의 긴장이 풀린다. 자연스레 핸드폰을 보지 않게 되는 것은 덤. 정형외과 베드에서 내가 갈망하는 고요함을 찾았다는 것이 좀 괴상한 취향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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