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라는 사랑

250202

by 주페페

얼마전 ott에서 데몰리션이라는 영화를 봤다. 평범한 남자 주인공 데이비스 역을 제이크 질렌할이 연기한다. 데이비스는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가 냉장고를 좀 고쳐달라는 아내의 잔소리를 여느 때처럼 흘려 듣는다. 왠지 불길함이 느껴지는 지루한 일상. 갑자기 차가 돌진해 오더니 부부가 탄 차를 들이받는다. 그리고 그 사고로 아내는 죽는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눈물도 흘리지 않고 슬픔도 느끼지 못한다. 무감한 데이비스를 화나게 하는 것은 엉뚱하게도 자신의 동전을 먹어버린 병원의 간식 자판기다. 자판기 회사에 항의 편지를 쓴 것을 계기로 데이비스는 삶에 새로운 인물들을 들이게 된다. 그리고 점차 자신의 감정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낱낱이 파헤쳐 나가기 시작한다.


단조로웠고 엄청 충격적인 결말도 없어서 보는 동안 좀 지루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 수록 생각이 나는 영화였다. 영화의 제목인 demolition은 ‘철거’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사고 이후 데이비스가 찾은 자신만의 치유 방식을 뜻하기도 한다. <철거>는 단순히 허물거나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해체시키고 파괴시키는 것.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지어 올리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을 암시하는 듯하다.




영화를 보면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곡이 있어 따로 찾아 들었다. Half Moon Run이라는 밴드의 Warmest Regards라는 곡이었는데 불러보고 싶어서 몇 개월 만에 기타를 꺼냈다. 그 덕분에 기타줄도 갈았다.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왼손과 오른손을 바삐 움직였다. 대략적인 곡의 느낌을 파악하고 가사 위에 코드를 찾아 적어 넣었다. E키의 곡. 조심스레 코드를 치며 노래를 불러보았다. 내친 김에 기타 솔로 파트도 따라해 봤다. 곡의 구성을 나누어 분석하고 스케일도 연습했다. 영화 데몰리션을 보고 난 뒤 이렇게 곡을 해체하고 있다니. 뭔가 의미있는 걸. 오랜만에 연주해보고 싶은 곡이 생겨서 기뻤다.


곡을 한참 연습하다가, 어김없이 적당히 뭉개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을 맞닥뜨렸다. 따라가기 어렵거나 까다로운 부분이 있을 때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하지만 모처럼 마음에 들어온 곡을 허투루 연주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떠한 곡을 가장 온전히 이해하고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곡을 매일 귀로 듣고 가사를 외우고 때때로 흥얼거리는 것부터 직접 악기를 들고 곡을 면면히 이해해보려 하는 것까지, 그 방법은 다양하다. 곡의 숨은 요소까지 속속들이 파헤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자는 음악을 귀로만 듣는 사람보다 그 곡에 한 발 정도는 가까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닐까. 곡을 해체하여 이해하는 방식이 그 곡을 더 잘 알게 해줄지언정 더 사랑하게 해주지는 않는 경우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되려 완전히 질려버리거나 사랑하기를 포기하게 될지도. 하지만 모르는 부분을 모르는 채로 어물쩍 넘기고 싶지는 않다. 그런 태도는 좀 시시하다. 더 발전하고 싶다. 더 아름다운 연주를 하고 싶다. 좋아하는 곡의 백프로를 알고 싶다. 그런 마음이 늘 내 안에 가득하다.


마음 먹은 만큼 아름다워질 수 없음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그 행위를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그 매력은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무언가를 연주하고 아무도 듣지 않을 연주를 계속하는 것. 분명한 것은 이것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 사랑은 해체의 방식을 거쳐 완성된다. 사랑하는 것을 속속들이 알고자 하는 것. 그래서 귀로만 듣던 음들이 나를 지나 내 손끝에서 다시 재생된다는 기쁨을 온전히 느끼는 것. 영화를 보고 우연히 이해하게 된 나의 사랑에 대해… 적어 본다.


https://youtu.be/lvTuL5uXu_k?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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