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사 최종 면접을 한창 준비하고 있던 도중, 1달 전 불합격 통보를 받았던 L사의 HR 담당자로부터 메일이 왔다.
'인턴십 제안 드립니다. 아쉽게도 지난 전형 때에는 경력직을 뽑느라고 불합격을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OOO 랩의 면접관 OOO 님이 지원자의 역량을 관심 있게 보고 인턴십 제안을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혹시 관심 있으신지 회신 부탁드립니다.'
L사의 계약 조건을 심도 있게 살펴보고, 고민을 하기에 앞서 처음 든 감정은 의외로 안도감이었다. L사에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인턴십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졸업 후에 회사 경력을 쌓을 기회가 최소 하나는 주어진 것, 그 자체에 대한 안도감이었다. 나는 최근 R사로부터 불합격 연락을 받은 뒤, 꽤나 불안감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찾아보니 L사의 공식 채용 홈페이지에는 해당 직무의 인턴십 공고가 없는 상태였고, 구체적으로 면접관 이름을 언급하며 인턴십 제안을 준 것으로 보아, 단순한 홍보성 메일은 아닌 것 같았다. 직무는 내가 정규직으로 지원했다가 불합격을 받았던 바로 그 직무였다.
회사의 입장을 추측해보자면, 비대면 면접에서 얘기를 해보니 어느 정도 핏이 맞기는 한데, 회사 경력은 없으니 정규직으로 바로 채용하기는 애매하고, 인턴 기회를 한 번 줘서 일하는 걸 평가해 볼 계획인 듯했다. 내 입장에서는 지금 진행 중인 3개의 회사에서 정규직 합격을 하나라도 받으면 고민없이 거절했을 테지만, 최근 R사에 불합격한 걸 보니, 불안정한 채용 시장 속에서 졸업 직후 회사 경력을 인턴으로라도 쌓는 것이 나아 보였다.
인턴십 진행을 위해서는 간단한 인성 검사 설문 및 비대면 인터뷰가 한 번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다만, 1주일 뒤면 S사와 F사의 최종 합불 결과가 나올 것이 유력하니, 조금만 시간을 벌면 좋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마침 다음 주에 석사 논문 심사가 예정되어 있어서, 이를 이유로 들어 시간을 벌 수 있을지를 문의했다.
'좋은 인턴십 기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만 제가 다음 주 금요일에 석사 논문 심사가 예정되어 있는데, 그 이후로 인턴십 진행 절차를 밟는 것이 가능할지 문의드립니다.'
'네, 가능합니다. 그러면 2주 뒤부터 인턴십 진행 절차 시작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L사는 흔쾌히 2주일을 기다려주겠다고 했다. 타사의 결과를 기다리려는 나의 이런 속셈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인데, 어차피 인턴십 전형이니 L사 입장에서도 인턴 채용을 하면 하는 대로 좋고, 안 되면 안 되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일 것 같았다.
그래도 F사와의 최종 면접을 앞두고 최후의 보루가 하나 생긴 느낌이 들었다. 물론, L사의 계약 조건은 6개월 인턴 후 최대 6개월 연장 가능, 그리고 3개월마다 정규직 전환 여부를 회사와 협의할 수 있다는 불안한 조건이었다. L사에서 6개월 정도 인턴을 하고 정규직 전환이 된 경우를 몇 명 SNS에서 보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계약직이라는 불안감이 존재하는 조건이었다.
F사와의 최종 면접은 가장 밀도 있게 시간을 활용하여 준비했다. R사 불합격의 충격으로부터 F사 면접을 조금 더 절실하게 준비하게 된 심리적인 탓도 있지만, 실제로 면접 내용의 성격이 기존 면접들과는 달랐다. 개인 프로젝트를 요약하여 발표하는 대신 회사에서 전달해준 논문을 가지고 세미나를 진행하는 형식이다 보니, 준비 및 자료 제작을 0부터 시작해야 했다. 논문을 알려준 기간도 최종 면접 1주일 전이기 때문에, 시간상으로도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다. 금요일 면접을 앞두고 월요일에 나는 하필 약간의 감기 몸살을 앓았다. 그 때문에 화요일부터는 더 집중을 해서 논문 내용을 파악하는 데 힘썼고, 다행히도 목요일에 논문의 주요 내용을 이해한 상태에서 자료 제작과 발표 연습까지 해볼 정도로는 준비가 되었다.
F사는 도보로 집에서 20분 정도 거리였다. 회사의 우선순위를 정함에 있어 집에서의 거리가 아주 중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 S사나 R사 역시 대중교통으로 멀지는 않기 때문에 그들과 비교하면 F사의 위치가 큰 메리트가 아니었지만, H사는 대중교통만으로는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이 경우와 비교한다면 근거리라는 장점이 분명히 있는 회사였다. 오피스는 R사와 느낌이 비슷했고, 금요일 오후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한적하고 조용한 느낌이 들었다.
"오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음료 하나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전화로 목소리만 듣던 HR 담당자의 얼굴을 실제로 처음 보게 되었고, 그는 친절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나는 이미 보리차 음료수를 하나 챙겨왔는데, 마침 준비해 준 음료수 역시 비슷한 차 음료였다. 자리에서 대기하다가 창문 밖 광경이 시선을 끌어 잠깐 창문 앞에 서서 건물 밖을 내려다 보았다. F사 본사는 서울 시내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는데, 고층에 위치한 오피스에서 아래쪽을 내려다 보니 시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창밖 광경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HR 담당자가 나를 세미나 룸으로 안내해주었다.
"여기 앉아서 노트북으로 화면을 넘기시며 발표 진행해주면 되세요."
잠시 후 D팀의 리더가 들어와 환한 미소로 내게 인사를 하고, 뒤이어 D팀의 엔지니어 6~7명이 세미나 룸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반가워요. 비대면 면접 때도 인사드렸던 D팀 리더입니다. 준비되면 바로 발표 시작해주시죠."
비대면 면접 때 받은 질문 중 명료하게 답을 못했던 질문을 기억해두었다가, 대면 발표의 첫 슬라이드로 준비하였다.
"최종 면접 기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선, 지난 비대면 면접 때 받은 질문 중 하나에 대해 조금 더 보완하여 답변 준비하였습니다. 본격적인 논문 세미나에 앞서 이 부분 먼저 답변 드려도 괜찮을까요?"
지원자로서 지난 면접을 스스로 충분히 복기했으며, 최종 면접 역시 열심히 준비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다행히 D팀 리더가 마침 궁금한 부분이었다며 발표 진행을 이끌어주었다.
"좋아요. 궁금했던 내용이었는데, 그 부분을 먼저 들어보죠."
이어진 논문 세미나 역시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나는 논문 내용 요약과 더불어, 이 논문의 강점과 한계점은 무엇인지, 향후 연구 또는 추가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한 지점은 무엇인지 등을 차례로 발표했다. 특히 마지막 슬라이드에서는 이 논문이 F사의 제품 개발 방향성에 있어서 어떤 점을 시사하고 있는지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전개해 발표했는데, 이 역시 F사의 D팀에 합류하는 데에 있어 내가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준비였다.
R사의 대면 면접과 분위기, 그리고 느낀 점은 비슷했다. D팀이 연구 및 개발하는 분야에서 보고 있는 논문이기에, 리더 분 외에 면접관으로 참석한 모든 엔지니어들이 두루 생산적이고 아주 깊이 있는 논의 및 질문을 주었고, 나는 준비한 내용을 바탕으로 적절히 논리적으로 답변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마찬가지로 실무적 능력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지원자 님은 이론적으로는 이 분야에 대해 아주 잘 이해를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저는 구현 역량에 대해 질문을 드리려고 해요. 혹시 ~~를 구현한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단계별로 이야기해 볼 수 있나요?"
대부분 내가 구현해보지 못한 내용이었고, 논리적으로 답변을 할 수 있는 영역도 있었지만, 구현 경험이 없다고 답할 수밖에 없는 질문들도 있었다. 다만 R사와의 면접 경험을 바탕으로, 구현 경험이 없더라도 최대한 비슷한 것을 구현해본 경험, 또는 알고 있는 이론을 바탕으로 추론해본 내용을 논리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약 1시간 30분 정도의 논문 세미나가 끝났다.
"아주 좋은 디스커션이었습니다. 고생 많았어요."
면접관으로 참석한 엔지니어 한 명이 수고했다는 말을 남겨주었다. D팀 리더 분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1대1 인터뷰를 추가적으로 진행하자고 하셨다.
1대1 인터뷰는 기술 역량 검증보다는 D팀에 합류하면 내가 하게 될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고, 내가 궁금한 점들을 역으로 물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D팀 리더 분은 회사의 비전과 함께 D팀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에 대해서 깊이 있게 이야기해주었다. 벤처 기업 특유의 열정과 포부가 느껴졌고, 그는 2026년 D팀의 계획과 목표 역시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D팀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내용들 역시 잘 답해주었다. 그렇게 약 30분 간의 1대1 인터뷰까지 종료되었다.
면접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은 R사와의 대면 면접과 비슷했다. R사의 최종 전형이 HR 담당자와의 면담인 것으로 보아, R사의 경우 내가 응시했던 대면 면접이 지원자의 기술적 역량을 가장 깊이 있게 검증하는 전형이었을 것이고, F사의 최종 면접에 대응되는 전형이었을 것이다. F사의 경우도, 면접 시 이루어진 논의가 생산적이고 깊이 있었으며, 현직 엔지니어들의 인상 역시 좋았다. 다만, R사로부터 불합격 통보를 받은 지 며칠 안 되었다 보니, F사와의 면접을 후회없이 마쳤음에도 결과에 대한 기대감이 아주 들지는 않았고, 회사에서 일하는 모습도 선뜻 그려지지는 않았다.
이제 H사의 최종 면접만이 남아 있고, 그 전에 F사와 S사의 최종 결과가 나올 것이 시기상 유력했다. 두 회사와 모두 후회없이 최종 면접을 마쳤음에도, 당장 구체적으로 준비할 것이 없다 보니 이번 주말을 몹시 불안하게 보낼 것만 같았다. S사 최종 면접 때 발표 자료를 PPT가 아닌 줄글로 준비해 간 것이 혹여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을지 불안감이 주기적으로 스쳐갔고, 대면 면접 때 논의가 매끄럽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음에도 결국 불합격 통보를 받은 R사의 최종 연락 메일 역시 머릿속을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11월 말, 대부분의 채용 절차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불안감과 초조함 속에서 최종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만이 내게 남아 있었다.
S사: 총 3차 전형 중 최종 면접 응시 완료 (결과 대기 중..)
H사: 총 3차 전형 중 2차 인적성 및 비대면 면접 합격
L사: 인턴십 제안 (회신 대기 중..)
F사: 총 3차 전형 중 최종 면접 응시 완료 (결과 대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