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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 Jul 23. 2023

한 달 만에 처음 뵙겠습니다.


“괜찮을까?”


 한참을 고민하며 호숫가를 걸었다.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한 달을 떠들었다. 다이렉트 메신저부터 카카오톡, 메시지까지. 적어 보낼 수만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마구 보냈다. “네가 좋아하는 노래는 너무 구리니까 내가 듣는 노래를 들어봐.”, “주말에 친구들과 그림 그리는 카페에 갔다고?”, “잠이 안 와, 재미난 이야기 해줘.” 점심쯤이나 시작하던 메신저가 새벽까지 이어질 때까지, 장난끼 가득한 말이 물음표로 바뀌는 데까지 한 달이 걸렸다.


 얼굴은 알고 있다.

 눈썹 문신을 하고 왔다며 진한 눈썹을 내비치던 순간, 화면 속 땡글한 눈이 먼저 보였다. 나는 스무 살이 되어서야 겨우 생긴 속쌍꺼풀을 가지고 있는데, '진하고 뚜렷한 쌍꺼풀은 인상을 뚜렷하게 만들어 주는구나' 생각했다. 진한 눈썹에 큰 눈, 동그랗고 큰 코에 아주 살짝 올라간 입꼬리. 굵직한 선으로 그려도 이렇게 선한 인상을 만들어 낼 수 있구나. 진하고 선한 얼굴을 미리 본 탓에 늘 핸드폰 화면 속 글자에 숨겨진 표정이 궁금했다.


웃고 있을까? 인상을 쓰기도 할까?


 “너는 다시 태어나면 뭐로 태어나고 싶어?” 수많은 물음표 속에 얻어걸린 질문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무던하게 살고 싶다. 무던하게 살려면 경제적으로 평범해야 한다. 무언가 실패해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만큼 돈이 필요하고, 돈 걱정을 안 하면 뭐든 선뜻 도전하며 무던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얼굴 한 번 안 본 애한테 이런 얘기까지 구구절절 뱉고 싶지 않았다. 적당히 매끈하게 포장된 말을 찾다가 대답을 미루고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너는 다시 태어나면 뭐로 태어날래?


“나는 다시 태어나면 우리 부모님 딸로 태어나고 싶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환생이다. 다시 태어난다는 건 이번 생과 접점이 없어질 기회이다. 이번 생에서 구질구질했던 것들을 다 끊어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기이자 기회이다. 그런데 굳이 이번 생의 인연을 잇는다고? 굳이?

이번 생엔 아들로 태어나 살갑게 굴지 못했으니 다음 생엔 딸로 태어나 지금 부모님께 더욱 살갑게 굴고 싶다고 한다. 20대 후반에 가까워진 나이, 성격이 얼굴에 드러나는 나이, 곧고 굵은 선으로 완성된 인상은 선한 인성으로 그려졌나 보다.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대답이라, 문득 아무 잘못 없는 내 마음이 부끄러워져서 대충 지금이라도 살갑게 굴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 선하디선한 애를 실제로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애정하는 작가의 강연을 보느라 쿵쿵 뛰던 심장은 강연이 끝나도 멈출 줄 몰랐다. 심장은 원래 뛰는 거지만 보통 눈치챌 수 없을 만큼 당연하게, 조용히 뛰지 않는가. 이 강연이 끝나면 기다리고 있을 그 아이가 나를 보고 무슨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 심장이 뛴다. 강연장을 빠져나오면서, 지하철을 타면서, 계단을 오르면서 계속해서 내 심장 소리를 느꼈다. 잘 뛰고 있구나.

 합정역 계단을 오르며 생각했다. 무엇인가를 할 때 미리 최악의 순간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이 한 번의 만남으로 얻게 될 상처와 위험까지 모조리 상상한다. 그리고 마음의 방패를 치기 시작한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마음에 벽돌을 쌓았다. 결국 중간까지 올랐을 때 오늘 이후로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고개를 들었다.


굵은 쌍꺼풀에 땡글한 눈 그리고 예쁘게 목도리를 맨 아이가 내게 눈을 맞추며 한두 계단씩 내려오고 있었다. 내가 간신히 쌓은 벽돌을 무너뜨리고 다가오고 있었다. 나란히 합정역을 빠져나와 고개를 돌려서 얘 어깨를 쳐다봤다. 그리고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 앞장서서 걸었다. 길도 모르면서 걷는 내 옆으로 졸졸 쫓아오는 순둥이가 벌써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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