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을 의원면직했고, 나는 무직 상태가 되었다. 뭐... 잠깐이나마 근무했던 국민연금공단식으로 표현하자면 사업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납부예외)로 바뀌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당장의 수입이 없게 되었으니 주변에서는 내가 당연히 부모님이 계신 본가로 들어가서 생활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기존의 오피스텔 방을 빼면서 수도권 인근에 내가 혼자 머물 곳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직접 매물을 눈으로 보고, 등기부등본도 꼼꼼하게 봤지만 뭔가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더운 날씨에 지쳐갈 때쯤, 어느 외진 도시에 있는 오피스텔 안에 들어가 창문 밖을 바라보았는데, "아, 여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세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도 했지만, 내가 이곳에서는 지친 몸과 마음의 요양을 할 수 있을 것이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모두의 걱정과는 다르게 굉장히 잘 살고 있다.
첫 화부터 지금까지 내 글을 본 독자라면 아마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많이 유별났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뒤늦게 알게 된 나의 선천적인 기질이 있었고, 이를 통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설명할 수 있다.
"나는 굉장히 높은 단계에 있는 HSP(Highly Sensitive Person)의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다.
초능력자는 아니지만, 나는 초감각과 초민감성, 심미안을 가지고 살아왔다. 신경과 감각은 항상 누구보다 민감하게 깨어있었고, 남들이 잘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느껴왔다. "지금 갑자기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라며 당황스러워할 그대를 위해 나를 조금 더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 거 같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 사람의 순간적인 입꼬리의 움직임, 얼굴 근육의 변화, 눈빛의 변화 등을 포착해서 그 사람으로부터 정보를 습득하는 동시에 내면의 감정을 파악한다. 만약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다면 그 정보는 더 방대해지고 나는 쉽게 에너지를 잃게 된다. 내가 회사생활을 견딜 수 없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나는 근무했던 모든 기관에서 중도에 퇴사를 했지만, 근무할 당시에 대인관계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업무가 어려울 때도 가끔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회사에서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받는 정보들, 계속해서 급변하는 상황들로 인해 에너지를 급격하게 잃어가며 소진이 되면 나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퇴사를 했지만 다시 똑같은 무모한 도전을 7년간 계속 몸을 던져가며 했으니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병에 걸리지 않으면 이상할 것이다.
그리고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IQ가 200도 아닌 내가 남들은 한 번 합격하기도 힘든 공기업을 9번 이상 합격한 국내 유일의 별종이 된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필기시험을 볼 때 나는 어떤 문제를 풀 때 바로 지문을 읽지 않고 보기를 먼저 본다. 그리고 보기를 훑어보면서 보기의 문장이 높은 확률로 정답이 될 것 같은 보기와 낮은 확률로 정답이 아닌 것들을 분류하고, 지문으로 가서 정답의 확률이 높은 보기에 대한 근거를 스캔한다. "이건 또 뭔 소리야?"라고 생각할 거 같아서 예시를 들겠다.
1. 해당 사업은 경제발전과 사회통합 등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2. A기업은 3년간 해당 사업에 참여하여 5,000만 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라는 2개의 보기만 있다고 해보자. 나는 보기를 보고 1번은 머릿속에서 바로 삭제한다. 아주 높은 확률로 정답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간혹 정답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1문제를 1분 안에 풀어야 하는 NCS 문제를 풀고 있기 때문에 굳이 낮은 확률에 배팅하지 않는다.
1번 보기를 보면 "등"과 "다양한 수요"라는 표현이 있다. 이 두 가지 표현의 공통점은 굉장히 유연하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또한, 어떠한 사업이든지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목표를 담은 문장의 보기이기 때문에 지문을 쭈욱 다 읽으며 지문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해당 사업은 경제발전과 사회통합을 위해서만 추진되었다.'라는 보기였다면 나는 오히려 이 보기를 의심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원래대로 1번 보기를 제외하고 2번 보기에 대한 근거를 지문에서 스캔할 것이다. 나는 '5,000만 원'을 지문을 빠르게 스캔하며 찾는다. 3년은 왜 안 봐?라고 묻는다면, 3년이라고 직접적으로 지문에 나올 수도 있겠지만, 지문에서 '2년 이상 우리 사업에 참여하면 5,000만 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바꿔서 나올 수도 있기에 3년에 바로 포커싱 하지 않는다. 그리고 5,000만 원을 선택한 이유는 대부분 한글로 이루어진 지문에서 숫자는 골라내기 쉽고, '3년'보다 '5,000만 원'이 직관적으로 눈에 잘 보인다. 게다가 5,000만 원은 원인에 대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눈으로 스캔을 했는데 5,000이라는 숫자가 전혀 없다면 틀린 보기에 근접해진다. 만약 5,000만 원이라는 표현을 지문에서 발견했다면 그 표현 근처를 자세히 보고 보기와 일치하는 내용인지 확인한다.
이런 식으로 나는 보기에서 확률로써 발췌한 지문만 읽을 뿐이지 절대로 한 지문을 다 읽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100점을 맞는 시험이 아닌 NCS 필기시험에서 지속적으로 고득점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면접전형에서의 합격은 더 설명하기 어렵긴 하지만 최대한 표현을 해보겠다. 나는 면접장에 들어가서 평가위원분들의 표정이나 몸짓으로 그분들로부터 정보를 습득한다. 평가위원분들은 간혹 답변할 때 활짝 웃어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얼굴을 찡그리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진지한 무표정 상태를 유지하신다. 나는 그 무표정 상태에서 행동과 표정의 미세한 변화를 캐치한다. 예를 들어 옆에 A라는 지원자가 답변하고 있는데, 조금 길게 답변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 답변을 듣고 어떤 분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기도 하시고, 어떤 분은 손에 쥔 펜을 계속 만지작 거리기도 하신다. 결과적으로 이 A 지원자가 불합격하게 되었음을 알게 된 나는 감각과 경험으로 노하우를 체득한다. 그래서 '공기업 면접에서는 말이 많으면 좋지 않다.'라는 결과를 학습한다. 이렇게 학습한 결과들은 공기업 채용의 특성상 다른 기관에서도 유사한 관점으로 평가하기에 마찬가지로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말을 유창하게 하는 편도 절대 아니고, 말의 속도도 빠르고 긴장하면 자주 더듬는 편이라 일부러 내 약점을 노출한다. 이 약점은 평가위원분들이나 어느 누구나 느낄 수 있기에 내가 감추려 할수록 더욱더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될 뿐이다. 그래서 면접 막바지쯤에 내가 주로 하는 멘트가 있는데, 이를 통해 평가위원분들에게 내가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강조되게끔 한다. 지원자들은 누구나 자신의 강점만 강조하지만, 사실 면접전형까지 올라온 것 자체만으로도 업무수행능력은 충분히 인정이 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굳이 강점을 강조하기보다는 내 약점을 흘리듯 드러냄으로써 약점이 겸손함과 솔직함으로 변모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 외에도 더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최종면접에서 합격한 횟수가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횟수보다 훨씬 많다.
취업은 이렇게 설명했는데 이해가 되게 설명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한 가지 남들과는 많이 다른 것이 있는데, 내가 17살 때부터 기타를 쳐오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음악을 들을 때 하나의 음악으로 듣거나, 보컬에 집중해서 듣거나, 화음에 집중하거나 이렇다고들 한다. 나는 주로 밴드음악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나의 신경과 감각을 순간적으로 분산시킴으로써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나는 소리의 층을 구분해서 듣는다. 예를 들어 보컬, 일렉기타, 베이스기타, 드럼, 건반으로 이루어진 노래 한 곡이라고 해보자. 모두 같은 순간에 소리를 냄으로써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지만, 내 감각으로 느껴지는 소리는 5가지의 악기가 내 머리에서 나뉘어서 동시에 구분이 되어 들린다. 그래서 노래가 끝날 때까지 5가지의 악기는 각각 분산되어 내 감각과 신경에서 흐르고, 나는 악기들의 고유의 소리를 한 번에 즐길 수 있기에 평소 너무 민감해서 지쳐있던 감각과 신경에 휴식을 제공할 수 있다.
나는 음표로 된 악보를 볼 줄 모른다. 학창 시절 내가 늘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한 과목은 음악이었다. 음악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지만 기타든, 베이스든, 피아노든 악보 없이 곡을 카피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절대음감이어서가 아니라 하나의 음을 쳐보면서 감각으로 이렇게 음이 나는구나를 학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보다는 느리지만, 시간이 조금 주어지면 극강의 스킬과 테크닉이 필요한 곡이 아닌 이상 대부분은 카피가 가능하다.
이번 화에서 내가 하는 말들이 "얘가 아프다고 하더니 맛이 갔나?", 혹은 "술 먹었나?"라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고, 이 글은 나의 회고록이다.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글을 쓰고 있기에 나는 내 모습 그대로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나는 독립을 하고 나서 그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있다. 매일 아침 5시에 눈을 뜨고 간단히 요기를 하고, 40분 동안 5.3km~5.5km를 쉬지 않고 달린다. 그리고는 근력운동을 하고 집에 와서 씻고 영양분을 고려해서 직접 요리를 해서 식사를 챙겨 먹는다. 그래서 현재 한 달 만에 군살이 없는 슬림한 근육질 몸매를 가지게 되었다. 불과 한 두 달 전에 죽어가던 몸이 순식간에 선명한 복근의 王자와 단단한 상체와 하체근육으로 변화된 것은 부모님도 내 몸을 직접 보셨지만 놀라워하신다. 그리고 무엇보다 표정의 변화이다. 나를 본 지인들은 모두 얼굴이 편안해 보이고 좋아 보인다고 한다.
경제활동도 걱정을 안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 강점을 살려 공기업 취업 컨설턴트로의 삶을 시작했다. 프리랜서이기에 내가 조직생활에서의 스트레스를 덜 받기도 하고, 이 분야는 그 어떤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사람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내가 가진 노하우를 누군가에게 전달한다는 게 신나는 일이라고 느낀다. 봉사활동도 지속적으로 했던 것처럼 나는 누군가에게 내 것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평소에 내 노하우들을 꾸준히 정리해 왔기에 놀랍게도 내 취준 관련 폴더의 용량은 17.6GB, 파일 수는 1,922개이다. 내가 봐도 내 목숨이 한 개가 맞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긴 하다.
내가 공기업 취업 컨설턴트로 성공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결국 내가 행복한 것들을 해보려고 한다.
내가 그동안 살아온 34년의 인생 동안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이 순간이 나는 가장 행복하다. 많은 것을 포기했지만 결코 아깝지 않다. 이제는 내가 행복과 여유라는 소중한 단어를 가슴속 깊이 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밤 혼자 낭만을 즐기고 있다. 무드등을 틀어놓고 오피스텔에서 보이는 야경을 보며 여유를 즐긴다. 아래 사진은 내가 직접 요리하고 플레이팅 한 와인 안주이다.
나는 매일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누우면서 "아~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행복하다.
나는 이제 드디어 행복하다.
이제 제 글은 모두 끝났습니다. 제 삶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계속 슬픈 분위기의 글이어서 보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다소 불편하실 수도 있으실 거 같았지만, 그래도 그 당시의 제 감정을 최대한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세상은 혼자 극복하기엔 많이 힘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저 스스로에게도 상처를 주며 살아왔습니다. 저는 그 누구보다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하기에 계속해서 도전하고 증명하는 삶을 살아왔던 거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행복이라는 가치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 글이 목표 없이 인생을 살아가고 계신 분이나,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삶의 동력으로 작용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이 누구냐라고 물었을 때, '각자의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인생은 모두 다르기에 그 사람의 힘듦은 그 누구도 "야, 그게 뭐가 힘드냐?"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동시에 어떤 위로도 그에게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저 우리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이게 제 글의 궁극적인 결말입니다.
지금까지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5년 10월 16일 목요일, 행복한 명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