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사람들

짜장면

by 은의 정원

“언제 가니?”


“음…. 방학하고 다음날 갈 걸”


“언제 오는데?”


“글쎄. 아부지가 데리러 올 때”


“휴.. 그럼 또 한참 있다 오겠네”


“삼촌도 시골 다녀와”


“우리 시골은 그렇게 오래 못 있어”


“짜장면 먹고 싶다”

“나도”


“가자. 먹으러”


“큰 삼촌있잖아”


“치, 지껀가? 아부지 가게지”


마당에서 가게로 들어가는 나무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갔다.

반대쪽 문 앞 계산대에 앉아있던 큰 삼촌이 이 쪽을 획하고 돌아본다.

언제봐도 기분 나쁜 얼굴이다.

학교 다닐 때 영화배우 한다고 쫓아다니는 걸 할머니가 말려서 그만뒀다는데 아무리 봐도 영화배우 할 얼굴이 아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못마땅해하는 얼굴로 노려보지만, 정균 말대로 아버지 가게지, 제 가게가 아니니 오지말라고 하지도 못한다.

해장국 먹으러 형무소 앞에 간다는 말이 돌 정도로 할아버지네 가게는 장사가 잘 됐다.

큰 길가 쪽으로 난 벽을 유리창으로 바꾸고 수타로 면을 뽑는 장씨 아저씨가 왔다. 하얀 옷을 입고 밀가루 반죽을 탁탁 쳐서 면을 뽑아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아이들은 침을 꼴딱 꼴딱 삼켰다.

수타로 뽑은 면으로 우동도 만들고, 짜장면도 만들어서 내놓았다.

학교 다녀와서 짜장면 한 그릇 먹고 놀러가는 것이 새로운 즐거움이 되었는데, 가게방을 지키는 큰삼촌은 그런 조카들을 탐탁치 않아 했다. 그러던지 말던지 할머니는 학교 다녀오면 꼭 우동이랑 짜장면 먹으러 가게로 오라고 했고, 면을 뽑는 장씨 아저씨가 아이들이 오면 반갑게 맞아주었다.


“으유, 인상 더럽네”

“크크 빨리 가자 삼촌. 다 듣겠어”

“아저씨, 저희 짜장면 주세요~”


“으유~ 우리 강아지들 왔구나. 이리 앉아. 이리.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들었구?”

“응!”

“네!”


“얼른 먹어. 많이 먹고 또 나가서 공부 열심히 해. 알았지?”


아이들이 올 시간을 알고 안채에서 나온 할머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짜장면을 받아와서 탁자에 놓아주었다.


“근데, 너희들만 왔어? 영환이는?”


“그 새ㄲ, 몰라요”

“왜? 같이 안왔어?”


“학교가 다른데 어떻게 알아요?”

“그치, 그래도 비슷하게 마칠텐데. 다음엔 영환이도 같이 데려와서 먹고 놀아”


할머니가 안채로 들어가는 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짜장면을 후르륵 입으로 집어 넣었다.

“할머니는 영환이만 챙기더라”

“치, 못돼 쳐먹은 새끼”

“그러니까. 우리 한테 얼마나 못되게 하는데. 치”


“엄마는 그런거 몰라. 그냥 영환이 영환이”


“난 걔랑 다니는 거 싫어. 저번에도 친구들하고 놀고 있는데 와서 돌 던지고 소꿉놀이도 다 헤쳐놓고 가버렸어”


“혼줄을 내주지”


“따라갔는데, 할머니 뒤에 숨어서 나를 막 약올리고 있는 거야”


“싸가지 없는 놈. 맨날 그런다니까”

“맞아. 할머니는 영환이 편만 들고”


“너 더 먹을래?”

“응”

“나도”

“아저씨 저희 짜장면 더 주세요”


인왕산에 경환이를 묻고 영순 이모는 영환이를 데려왔다.

경환이 동생이라는데 얼굴이 코쟁이처럼 하얗고 머리가 노란 갈색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코쟁이 아들이냐고 수근거렸지만 엄마와 이모들은 지난번에 집 앞에 왔던 국군이 아버지라고 했다.


“아버지가 코쟁이가 아닌데, 왜 아들은 코쟁이처럼 생겼어?”

“그걸 누가 아니?”


영순 이모는 영환이와 화단이 보이는 건넌방에서 살았다. 남향으로 난 방에는 햇살이 환하게 들어왔다. 그 방에서 단장하던 이모를 구경하고 있으면 작은 입술에 연지를 발라주곤 했다.

이모는 어디를 가는지 여전히 외출이 잦았다.

영환이는 할머니 치마폭에 싸여 자랐다. 할머니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녔다. 버스를 타고 멀리 가는 날에도 영환이는 할머니한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할머니가 앞문으로 타면 뒷문으로 몰래 타서 목적지에서 같이 내렸다. 그런 영환이는 할머니는 징그럽게 따라다닌다면서도 영특하다고 했다.

영환이는 뭐든지 제멋대로였다. 아이들이 노는데 훼방을 놓아도 말썽을 부려서 아이들한테 싫은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타난 할머니가 도리어 아이들을 나무랐다.

제가 잘못한 것은 모르고 궁지에 몰리는 것만 약올라하는 영환이가 정균과 명자, 명희는 싫었다.


“너네 집 영환이는 왜 그런다니?”

하고 아이들이 따지고 들면, 편을 들어주기는커녕

“우리도 몰라. 걔는 우리 식구 아니야”

라고 말하기도 했다.


독불장군 같은 영환이는 사촌들 사이에서도 훼방꾼이었다.

명절이나 잔치 때 작은 방에 아이들 상을 차려 놓으면, 빙 둘러 앉아 아이들끼리 먹고 놀았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고, 맛있는 음식도 많아서 기분 좋게 먹고 있는데, 접시에 불고기나 잡채가 절반 정도 남으면 꼭 영환이가 접시를 들어 제 밥그릇에 쏟아 부었다.


“이런, 개새끼. 싸가지 없는 새끼. 너만 쳐 먹어?”

하고 정균은 밥상머리에서 큰 소리를 쳤다.

한 두 번 있는 일이 아니니 아이들은 언제나 영환이와 한 밥상에 앉으면 언제 또 저런 일이 일어날까 서둘러 밥을 떴다.

하지만 영환이는 삼촌에게 욕을 먹어도 제 행동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큰소리가 나면 득달같이 할머니가 달려와서 삼촌을 혼내고 제 밥 그릇에 그득 담긴 불고기는 모두 제 몫이기 때문이다.


“불고기 많이 있는데, 왜 그러니? 왜 밥상머리에서 싸우고 있어?”

“엄마, 저 싸가지 없는 놈이! 왜 나쁜 짓 하는데 안 혼내요?”

“불쌍한 놈 어딜 혼내니? 사이 좋게들 있어”


“아, 밥 맛 떨어졌어, 너나 다 쳐 먹어라. 우리 나가서 놀자”


정균도 영환이가 왜 그렇게 훼방꾼 노릇을 하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골목 아이들이 영한이에게

“코쟁이래요~ 코쟁이래요~”하고 놀리는 소리를 듣지 않은 것도 아니다.

동네 사람들이 영환이를 보고 영순 누나에게

“양공주냐”고 하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아버지가 영순과 영환이를 부끄러워해서 정을 주지 않는 것도 알고 있다.

모두가 창피해하고 숨기고 싶어하는 영순과 영환이가 애처로워 미운 짓을 하고 잘못을 해도 혼내지 못하고 감싸 안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다고 다 저렇게 못되게 하지는 않아”

“맞아. 진짜 못됐어”


“아무튼 싸가지 없는 놈 내가 한 번 버릇을 고쳐 놓을 거야”


“삼촌, 우리 오늘은 우동 먹을까?”

“그래. 가자”

“난 짜장면이 더 맛있는데.”

“그럼 넌 짜장면 먹어.”

“가자”

“어제 비 많이 와 가지고 학교 수영장에 물이 많이 고였잖아. 오늘 보니까 개구리가 알을 낳았더라. 그래서 수영장에 들어갔다가 옷이 다 젖었어. 엄마한테 혼나겠지?”


“너 지난번에 신발 적셔서 엄청 혼났잖아”


“재밌는 걸. 난 비 올 때가 제~ 일 좋아”


“나는 햇볕 쨍쨍한 날”


“난~~바람 부는 날”


꺄르르


“우리 누가 먼저 가나 시합하자”

“그래!”

“요이~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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