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은 바람이 왜 이렇게 세니? 아휴 추워"
엄마는 꽃샘 추위가 유난스럽다며 옷깃을 잔뜩 여몄다.
솜 저고리에 목도리까지 두르고 봄에는 찬기운이 스민다고 아이들에게 털실로 뜬 모자까지 씌웠다.
"명자야~ 가서 콩나물 좀 사와라"
"명자야~"
"엄마, 제가 다녀올게요"
아랫목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는 명자는 엄마 목소리가 들리지 않나 보다.
명희가 얼른 일어나서 심부름을 다녀오겠다고 한다.
"꼬리 짧은 걸로 달라고 해"
"네~"
엄마는 콩나물 꼬리가 길면 맛이 없다며, 꼭 꼬리 짧은 걸로 가져오라고 한다.
골목에서 바로 나가면 솥뚜껑을 엎어놓고 떡볶이를 볶는 할머니가 보인다.
명희는 언니랑 과외공부 다녀오는 길에는 늘 떡볶이를 먹는다.
10원어치 주세요 하면 솥뚜껑 한 쪽으로 떡 몇개를 옮겨준다. 이쑤시대로 콕 콕 찍어서 매콤하게 볶아진 떡을 오물오물 먹고 있으면 화수네 아이들이 맛있겠다며 입맛을 다시고 주변에서 어슬렁 거린다.
그러던지 말던지 명자, 명희는 한 입 먹어볼래?라고도 묻지 않고 약올리듯 소리까지 내며 콕 꼭 찍어 먹는다.
아버지 후배라는 과외 선생은 옥천동 언덕 위 솜틀집 하숙생이다. 바로 앞에 키가 큰 향나무가 담 밖으로 삐죽 나오고 대문이 큰 집이 허태연 장군네 집이다.
지난번 이 집에서 초상이 났을 때 집 안까지 들어가 구경하고 왔다고 엄마한테 크게 혼이 났다.
"거기가 어디라고 들어갔다 와?""그냥, 대문 열려있으니까 본 거지"
"거기가 어디라고 들어갔다 와?"
"그냥, 대문 열려있으니까 본 거지"
영천 시장은 개천에 판자를 덮어 복개한 길에 자판을 펴고 열리 시장이다. 문 밖에서 지은 농산물들이 모이는 곳이라 원당, 파주에서 농사지은 채소, 과일들이 다 이곳으로 모인다.
그래서 시골 친척들은 영천시장에 문건을 대고 꼭 할아버지댁에 들러 해장국을 먹고 간다.
"콩나물 삼십원 어치만 주세요"
봉투에 한 손 크게 담고 한 주먹을 더 담아 한아름이나 되는 콩나물을 들고 집으로 되돌아가는데, 회오리 바람처럼 바람이 휘돌아 불어왔다.
휘이익~
바닥을 쓸어 올리는 바람이 먼지까지 퍼올라 눈에 티가 들어가 따가웠다.
"아 따가"
간신히 눈을 뜨고 고개를 한 껏 구부려 앞으로 가는데 바람에 걸음이 잘 걸리지도 않는다.
저 앞에 중국인 아주머니가 종종 걸음으로 걸어가 전봇대를 끌어 안았다.
명희네 집 맞은편 옆에 옆집으로 이사온 중국인 아주머니가 이사온 기념으로 큰 찐빵을 가져왔다.
쟁반만큼 큰 하얀 찐빵 속에 뭐가 들었나 궁금해서 엄마가 칼로 반을 가르는 것을 명자, 명희, 완무가 코가 빠지듯이 들여다 보았지만, 겉처럼 속도 하얗고 아무것도 없어 실망했다.
"뭐야. 속이 없잖아"
그래도 중국 호빵은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작게 자른 빵을 한 입 쏙 넣었는데, 담백하고 고소한 게 아무맛도 안 나는 듯 하면서도 맛있었다.
"음!"
"맛있다"
엄마는 빵을 반쪽은 종이에 잘 싸서 아랫목에 놔두었다. 저녁에 아버지가 오시면 드리려고 남겨두는 것이다.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옷을 입고 아기처럼 작은 발에 검은 신발을 신은 중국인 아주머니는 바람이 잠시 잦어들자 작은 걸음으로 맞은편 전봇대로 향했다. 때맞춰 센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부는 동안 전봇대를 끌어안고 있다 다시 바람이 잦아들면 맞은편 전봇대로 향하면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명희는 중국인 아주머니가 혹시라도 작은 발 때문에 넘어질까 뒤따라오며 지켜봤다.
아주머니가 이쪽 저쪽으로 자리를 옮길 때마다 명희도 전봇대 뒤에서 바람을 피했다.
"다녀왔습니다~"
"어, 꼬리가 길잖아. 다시 바꿔와. 짧은 콩나물로 달라고 하라니까"
"아이 참."
"어서 바꿔와"
명희는 입이 대빨 나왔다. 콩나물 꼬리가 거기서 거기지 길고 짧은게 뭐 있다고 엄마는 맨날 두 번 심부름을 시킨다. 언니는 맨날 심부름도 하지 않고 들은체 만체하는데, 심통이 나서 입을 씰룩거리다가도,
골목 입구 화수네 할아버지가
"우리 조랑말 어디 가니?"
하고 정답게 웃으시면, 신이 나서 심부름을 갔다.
꽃 샘추위가 지나고 조금씩 기온이 따뜻해지는 4월이 되었다.
학교 마치고 집에 오려는데 서대문 사거리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명자, 명희는 영천 시장으로 들어가 복학집을 지나 집으로 달렸다.
대문에 들어서 마루에 가방을 집어 던지고 다시 뛰쳐 나가려는데,
"어디 가니?"
엄마가 급하게 뛰쳐나가는 아이들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저기 사거리에 난리가 났어요"
"난리 났다구? 근데 너희들 왜 나가?"
"갔다 올게"
명자, 명희는 말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서대문 사거리로 달려 나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거리에 몰려 있었다. 말을 탄 경찰들이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극도극장 앞과 서커스장 앞에도 잔뜩 몰려 있었다. 어른들 틈을 비집고 앞으로 가서 무슨 일이 벌어지나 살폈다. 서커스장에서 경교장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이기붕 부통령 집 앞에 온갖 살림살이가 내던져져 있었다. 사방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그 주변을 빙 둘러싸고 모여 있었지만 기마경찰들에 의해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간 몇 몇 사람들이 살림살이를 거리로 내던지고 있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가구와 도자기들이 내던져져 깨진 채 나동굴고 있었다.
부서진 살림살이 틈에서 바나나, 수박, 딸기가 나동글고 있었다.
"어머 4월에 왠 딸기야?"
"저 노란게 바나나인가?"
"수박도 있네. 참. 이기붕이는 봄에 수박도 먹고 살았나 보네"
어른들의 다리 사이로 고개를 삐쭉 내민 명희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쳐 딸기를 집어 들었다.
꽃샘 추위가 지나간지 엊그제인데 새빨간 딸기가 탐스러운 싱그러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명희는 딸기를 집어 들어 한 입에 쏘옥 넣고 오물오물 씹어서 그 상큼함과 달콤함을 느끼려고 했다.
"야! 너 뭐하는 거야?"
명자가 큰 소리를 치며 명희의 손을 내리쳤다. 그 바람에 딸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명희는 깊은 꿈에서 깨어난 듯이 정신을 차렸다.
"땅에 떨어진 것을 왜 줏어먹어?"
"어? 나도 모르..."
광화문에서 연희동에서 몰려나온 대학생들이 이기붕의 집을 에워싸고 경찰들과 몸싸움이 조금씩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과격해지는 시위현장에서 아이들은 어른들 틈에서 빠져나와 집을 달려갔다.
"엄마, 엄마. 이기붕네 집에 딸기가"
"엄마, 얘기 그걸 줏어 먹었어"
"뭐?"
"아니, 아니야 안 먹었어"
"그걸 왜 줏어 먹어?"
"딸기랑, 수박이랑 바나나도 있고, 별의별게 다 있는데, 사람들이 길에 막 집어 던지고 있어요"
"아이고 참..."
며칠후 라디오에서 이기붕네 가족이 모두 죽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아버지가 경찰이고 덕수국민학교에 다닌다며 잔뜩 재는 정숙이가 지네 아버지가 이기붕이랑 친해서 흉상도 있다고 자랑했었는데 친하게 지낸 사람들은 어떻게하나하고 명자는 혼자 심각해졌다.
어른들은 며칠 동안 라디오 뉴스 시간에는 그대로 멈춘듯이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듣다 뉴스가 끝나면 서로 큰소리를 내면서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그저 길 위에 널부러져있던 갖가지 과일이 쌀쌀한 사월에 어떻게 열렸을까 궁금했다.
"언니 언니 수옥이 언니 있잖아.그 언니가 집에 들어박혀서 맨날 이제 못산다고 울고만 있대"
"왜? 무슨일인데?"
"그 언니가 교회에서 이기붕네 둘째 아들을 좋아했었대"
"정말? 어떻하니?"
"안됐다"
"그래, 정말 안됐어"
"우리 올 해도 딸기 먹으러 원당 갈까?"
"올 해도 가겠지. 안 가겠니? 초여름이 돼야 딸기가 나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