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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May 27. 2020

메모리

비빔국수였을까 엄마였을까

35년 전 지금은 마흔아홉인 내가 아마 중학교 1학년 무렵 일 것이다. 엄마들이 일하러 다녀서 기다려줄 사람도 간식도 없던 우리는 같은 버스를 타고 각자의 집들에서 내려야 했다. 비가 올 듯 하늘 때문인지 아니면  어느 곳에선가 손님이 다 내려버려 우리만 남은 조용한 버스 공간 때문이었을까? 이제야 돌아보니 아무도 없는 집에 가기가 싫었던 중1 소녀들은 모두 종점까지 갔다. 종점까지 간 들 두 팔 벌려 환영받을  누군가의 집으로 놀러 갈 수도 없어 다시 각자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헤어졌다. 다시 집으로 가는 길은 힘도 없고 비도 오고 배도 고팠다. 고독은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경험들이 쌓여 알아가는 것이었다. 나름의 고독에 빠져 비탈길을 올라갔다. 집이 가까워지자 맛있는 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도,  맛있는 것도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터벅터벅 걸었다. 사는 힘든 것이구나 느끼면서.


신이 어린 내가  너무 일찍 고독을 알아가는 게 가여웠음에 틀림없다. 기적이었다. 집에 오니 엄마가 반겨주는 게 아닌가. 회사 기계가 고장 나서 일찍 퇴근한 것이다. 조금 전의 고독과 삶의 무게가 엄마를 보자 저 멀리 달아났다. 비까지 내려서 공기 냄새도 엄마 냄새도 너무 좋았다. 엄마는 늘 바빠서 쉬는 날에는 밀린 집안일을 하면서 짜증이 많았다. 하지만  그날 온몸으로 뿜어져 나오는 딸의 반가움을 느꼈음이 틀림없는 엄마가 친절하게 비빔국수를 해 먹자고 했다. 서글픔과 어설픈 고독이 엄마라는 채움으로 너무나 따뜻하게 변했다. 세월이 지나 그날의  친구도 버스번호도 잊었지만 그날의 느낌과 비빔국수는  신기하게 기억이 난다.


비가 오면 서늘하다고 방을 데워 방은 따뜻했고 국수를 삶을 물은 연탄불에서 끓고 있었다. 큰 양은 냄비에 물이 끓자 엄마가 국수를 넣었고 큰 대야에 펄펄 끓었던 국수를 여러 번 헹구었다. 여러 번 헹궈야 국수는 제 맛이라고. 그 다음은 큰 양푼에 물기를 뺀 국수와 고추장, 식초, 설탕을 넣어 버무리고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넣고 다시 손으로 버무렸다. 고소한 냄새에 정신이 나갔고 빨간 그 자태에 아름다움을 느꼈다. 비빔국수는 분명 예술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맛은 다시는 맛보지 못할 환상의 맛이었다.


나이가 들어 이제는 엄마도, 엄마의 그 국수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날의 국수에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 나와  삼십 대 엄마와 연탄불의 온기가 모두 담겨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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