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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Apr 21. 2024

치매일기 2

수용으로

나에게, 내 가족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니 받아들이는 것이 몹시 힘이 든다. 삶이 두렵고 무겁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와 제어가 되지 않는다. 잔인한 4월이다. 4월 8일 검사를 시작으로 첩첩산중, 설상가상의 일들이 몰아치고 있다. 내 삶을 내가 결정할 수 없다. 의사의 표정과 말 한마디에 가족이 고통스럽다. 희망적인 한마디가 너무나 간절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는 받아들이는 수밖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오늘 오빠와 올케에게 온 전화를 받고 구슬피 울었다. 올케도 울고 결국 오빠도 울렸다. 갑작스런 소식에 서로 힘내고 받아들이자고 했지만 삶의 동반자이자 우리 아이들의 보호자였던 똑똑했던 나의 남편은 이제 아이가 될 것이다. 결혼해 살면서 숱하게 싸우며 28년간 정이 깊어져 이제는 서로를 애처롭고 소중하고 고맙게 여기는 동지가 되었는데 나의 동지는 기억을 잃어간다.


둥글둥글하지 않던 남편의 성격이 온순하게 바뀌자 나이가 들어 사람이 변한 줄 알았다. 둥글어진 남편과 장난도 대화도 많이 했다. 그도 나도 웃으며 이 정도면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뿌듯했는데 물거품처럼 우리의 삶이 사그라지는 느낌이다.


머리는 다음에 할 일을, 마음은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은 절망으로 따로 논다. pet ct촬영 후 정확한 진단과 약 처방까지 한달 반이 남았다. 분노와 우울을 넘으면 수용의 단계가 언젠가는 오겠지. 견뎌내야 하고 견디리라 나를 다독이고 힘을 내려 하지만 참으로 삶이 두렵고 막막하다.


하느님 자비의 손길과 성모님의 은총이 부디 남편과 각자 홀로 조용히 슬픔을 삼키는 우리 아이들과 내게 내리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이 밤 고통받는 모두가 푹 잘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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