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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10시간전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책임의식으로 맺어진 어른과 아이들의 생활공동체'이다.

-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


가족에 대한 깔끔한 정의이다. 이것은 독일 사회민주당 강령에서 따온 가족의 정의라고 한다. 이성 부부든 동성 부부든, 자식이 있든 없든, 부모를 모시든 그렇지 않든, 자녀를 낳았든 입양했든 이 정의는 모든 형태의 생활공동체에 적용할 수 있다.


사랑과 책임의식. 사랑이란 내 것을 주되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는 마음이다. 자식에게 쏟은 정성, 노동, 마음, 물질을 자식이 장성해서 다시 되갚아 주기를 기대하고 주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도 모르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에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랑이다.


최근에 남편이 아프고 시어머니, 즉 남편의 어머니도 아프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남편을 사랑과 책임의식으로 돌보고 있다. 젊었을 적 그의 변덕과 똥고집을 기억하면 굳이 애틋한 마음이 없어야 하지만 그의 원가족에 대한 과다한 책임의식을 잘 알고 있기에 아픈 그가 가엾다. 그와 내가 남에서 가족이란 테두리도 들어와 살아온 세월 동안의 좋은 기억과 좋지 않은 기억이 섞이고 흐려지면서 이제는 안쓰러운 마음만 남았다. 남편이 현재 가장 믿는 사람은 본인의 원가족이 아닌 처인 나이다. 결혼이라는 계약으로 맺어졌지만 조건 없는 사랑과 합리적인 책임의식으로 본인을 보살피는 처와 자녀들에게 그는 이제야 편안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남편은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20세 이후부터  어머니와 동생을 책임지고 박봉에도 그들의 생활비를 송금하고 결혼 후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여전히 자리 잡지 못한 동생에 대한 짐도 내려놓지 못한 채 장남이라는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았다. 그 짊을 나눌 사람을 처인 나라고 생각하여 우리 젊은 날은 시어머니와 시동생 문제로 다툰 날이 아주 많았다. 그 다툼은 현재진행형이지만 그의 비합리적 주장은 줄어들고 있다. 결혼은 부부가 주체가 되어 독립된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결혼 생활에 대해 세 사람이 함께 한다는 말을 했었다. 나의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아내가 아닌 어머니와 상의하면서 결혼 생활을 셋이서 함께 했다. 여름휴가는 물론이고 친구 부부와의 식사에도 모시고 다녔다. 밥 한 끼 하는데 같이 가면 어떻냐는 것이었다. 본인의 어머니만 생각했지 상대방은 생각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시어머니는 나이 많은 알코올 중독자 남편과 살면서 말 못 할 고생을 하셨다고 한다. 남편이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노후에 남편과 같이 살 것이라고 계속 얘기했고 만약을 대배해 10살 터울을 둔 둘째를 낳았다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만약을 대배해 35세에 둘째를 낳았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를 할까?  결혼얘기가 오갈 1995년 무렵, 그때도 시부모와 같이 사는 신혼부부는 거의 없었다. 남편은 시모와의 합가를 계속 물어보았고 첫아이를 낳으면서 그것은 현실화되었다. 부부의 문제만으로도 맞혀가기 벅찬 신혼생활에 범상치 않은 시모와의 관계까지 혼돈과 다툼의 연속이었고 그 생활이 쭉 이어지며 수 십 년의 세월이 지났다. 내 가정을 지키려면 그 범주에 시어머니를 넣어야 했다. 시어머니는 심적으로는 남편처럼 의지하는 장남과의 생활을 이어가며 본인이 일으킨 분란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조용히 요구사항을 관철시켰다. 나의 집은 굳이 내 집이라고 하기에는 내 마음대로 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시어머니는 아닌 척 조용히 며느리의 흉을 꾸준히 보았고 앞에서는 그러지 않았고 힘없는 노인으로 보였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요양보호사가 나가고 들어오면서 저절로 며느리 욕을 한 것이 들키게 되자 욕을 한 자신이 아닌 욕을 전달한 사람이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항상 이해하고자 했던 나는 남편이 아프고 난 후 이해를 그만하기로 했다. 나의 남편이자 자신의 아들이 아픈데 본인의 욕구만 생각하는 습이 나이와 더불어 심해지며 남편과 나를 위해 노모를 작은아들과 함께 살도록 이사를 시켰다. 물론 마음이 편하지 않았으나 아직 혼자인 작은 아들과의 삶이 본인에게 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초라하게 늙어가는 어른들을 보며 품격 있게 나이 드는 것을 늘 생각한다. 유시민의 책에서 홍사중 선생이 일흔여덟에 썼다는 수필집의 밉게 늙는 사람들의 특징을 인용한다.  


1. 평소 잘난 체, 있는 체, 아는 체를 하면서 거드름 부리기를 잘 한다.

2. 없는 체 한다.

3. 우는 소리, 넋두리를 잘 한다.

4. 마음이 옹졸하여 너그럽지 못하고 쉽게 화를 낸다.

5.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한다.

6.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위 내용 중에서 가장 많이 보아 온 시어머니의 모습은 없는 체 하는 것과 우는 소리 넋두리이다. 일단 돈이 없다고 우는 소리를 한다. 그러나 새마을금고에 예금자보호 한도를 넘는 예금을 가지고  있지만 가족들이 모른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라에서 받는 노령연금은 별도로 적금을 든다. 따라서 돈이 없다. 평생 써도 다 못쓴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이 없다. 어릴 적 소아마비로 놀림받았던 기억을 구십 세가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기억하며 넋두리를 하지만 더 약한 경로당 할머니 욕을 하며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모습도 자주 본다. 


시어머니 기준의 가족은 무엇일까? 독일 사회민주당 강령 기준, 즉 사랑과 책임의식에서 며느리인 나는 물론 가족이 아니다. 장남도 아니다. 장남에 대한 사랑과 책임의식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늙으면서 자식 욕이 하루의 일과라면 어쩔 수 없이 따로 사는 것이 맞다. 욕을 듣는 그 자식도 질병과 노화가 진행중이라 품격 있게 늙어 후세대인 내 자식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면 감당하지 못할 스트레스는 줄이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가족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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