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펑펑 쓰며 민준은 조금씩 자기 자신만의 기호, 취향을 알아갔다. 민준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어떤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결국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을.
여기저기에서 퇴짜 맞은 못난 자기 자신이지만 그렇다고 싫지는 않았다. 실은 못난 나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열심히만 해선 안 되고 잘해야 한다고. 그런데 누구 기준으로 '잘'인가.
한 번 우등생이 되자, 계속 우등생이 되어야 했고, 우등생은 늘 노력해야 했다. 노력하는 게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력의 결과가 이런 거였으면 노력하지 않는 게 더 나을 뻔했다.
책을 읽다 보면 자꾸 타인에게 공감하게 되잖아요. 가만히 있으면 성공을 향해 무한질주 하게끔 설계된 이 세상에서 달리기를 멈추고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는 거죠. 그러니 책 읽는 사람이 늘어나면 이 세상이 조금이나마 더 좋아질 거라고 전 생각해요.
그녀가 기대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기 위해 반복해서 되뇌던 말이 아니라, 몸의 감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가 어느 공간을 좋아한다는 건 이런 의미가 되었다. 몸이 그 공간을 긍정하는가. 그 공간에서 나 자신으로 존재라고 있는가. 그 공간에서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가. 이곳, 이 서점이, 영주에게 그런 공간이다.
돈을 안 벌면 가치가 없을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돈벌이에서 물러나고서야 돈을 벌지 않아도 가치가 있는 삶이란 걸 알았다. 공부 잘해서 적당한 직장에 들어가서 꼬박꼬박 돈을 모아 적당한 집과 차를 사고 그러한 삶을 끝없이 유지해야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도대체 이 사람 구실의 끝은 어디일까? 아이들까지 적당한 짝을 찾도록 도와주고 그 아이들이 집을 구할 때 떡하니 남부럽지 않게 보태고, 그 아이가 아이를 낳으면 거금을 내놓아야 사람 구실을 한다면 끝이 있기나 할까?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 키우기도 순식간에 끝나자 오롯이 내 하루가 남았다. 뭘 할까? 허둥지둥거리다 민준의 말대로 시간의 사치를 알게 되었다. 빈둥거리다 보니 내가 좋아하고 편안한 것이 아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남이 정해준 것이 아니라 내가 편하고 평온한 숨이 쉬어지는 것들. 돌아봐도 후회스럽지 않고 내일 또 하고 싶은 것들을 머리가 아니라 내 몸의 감각이 깨우쳤다.
조용히 책 읽기, 그 책을 읽고 정리하기,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실상은 내가 원했고 이미 알고 있었으나 몰랐던 것이었음을.
가족들은 내가 공감능력이 과하다고 했다. 타고난 줄 알았던 나의 공감능력은 다독에서 온 것일 수도. 책에서 이미 보았던 인물들의 마음을 현실에서 마주한 것이었다. 책은 이렇게 겪어보지 않은 일에도 도움이 되었다. 이리하여 수천 년에 걸쳐 독서를 하라는 명언이 내려오고 있구나.
명품가방이나 명품시계는 갖고 싶지 않다. 미식가도 아니고 외국여행도 귀찮다. 그러나 공간에 대한 욕심은 있다. 다닥다닥 붙은 자리는 몹시 싫다. 도서관에서도 좌우가 다 비어있는 곳에 앉는다. 그 줄 전체에 사람이 없는 곳. 그러한 공간의 여유가 내 사치이며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붐비고 줄을 서고 시끄러운 곳은 불편하다. 여유로운 공간에서 느껴지는 그 공기가 편안하다.
잘 살고 싶다. 세상의 기준보다는 내 기준으로. '잘'이라는 것은 얼마나 변화무쌍한가? 잘 사는 기준은 내가 정한다. 물론 주변에 민폐 끼치지 않는 전제에서 오늘도 잘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