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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Aug 30. 2023

just do it 25

네가 있는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 T.S. Eliot


네가 있는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네가 있는 곳에 도달하고


네가 없는 곳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쁨이 없는 길을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


네가 모르는 것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지의 길을 지나가야만 한다.


네가 갖지 못한 것을 갖기 위해서는


무소유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너 자신이 아닌 것에 가 닿기 위해서는


네가 아닌 길로 가야만 한다.


네가 모르는 것이 네가 아는 유일한 것이고


네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네가 소유하지 않은 것이며


네가 있는 곳은 네가 없는 곳이다.




조용히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 없이 기다려라.


왜냐하면 희망은 잘못된 것에 대한


희망일 것이다.


사랑 없이 기다려라.


왜냐하면 사랑은


잘못된 것을 얻기 위한


사랑일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믿음과 진정한 사랑과 진정한 희망은


바로 기다림 속에 있다.


모두 괜찮아질 것이고,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다.




T.S. 엘리엇, 장시 <네 개의 사중주> 중에서

류시화  - 엮음  - 마음 챙김의 시






모두 괜찮아질 것이고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다.


요즘 서귀포는 마치 동남아시아처럼 스콜이 쏟아진다. 파아란 하늘을 보여주다 금 컴컴한 먹구름이 덮어버린다. 아침부터 비가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다. 비 오는 날은 꼭 쉬어야 하는 것처럼 몸도 마음도 축축 쳐진다.


비 오는 날에는 과거의 추억이 떠오른다. 오늘을 사는 게 아니라 옛날 생각이 떠올라 내가 알던 사람들이 이유도 없이 떠오른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을 못한다고 들었던 할머니랑 둘이 살던 그 애, 중학교 때 뒷문에 나를 세워두고 학교로 찾아온 집 나간 엄마를 만나고 온 짝, 꽃을 들고 담임을 만나러 온 친구의 새엄마가 너무 이뻐 모두 뒤돌아볼 때 혼자 앞만 보던 그 애, 맛있는 반찬은 밥밑에 깔고 다른 친구 반찬은 밥 위로 확보했던 욕심쟁이 그 애, 아빠는 대학교수고 잔디 마당까지 있던 친구집이 부러웠는데 집안 사연을 듣고 잘 산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준 그 애, 운동회 때 아무도 오지 않아 점심을 못 먹고 홀로 교실에 앉아있던 그 애.


어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집안의 가난도 부모의 불화도 선생님의 편애도 우리가 잘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슬픔과 불의와 포기를 알아서 배우고 자라는 수밖에 없었다.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뒷문에 나를 세워두고 엄마를 만났던 친구는 밥에 간을 해 반찬 없는 도시락을 싸와서 혼자 쉬는 시간에 다 먹었다. 새엄마가 젊고 이뻤던 친구집에 놀러 갔을 때 새엄마는 친구만 두고 아빠 만나러 갓난 아기를 데리고 나갔다. 그날 친구는 나중에 친엄마와 꼭 살 거라고 담담하게 얘기했다. 그 아이들은 자존심이 있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부러워하지 않으려 미리 밥을 먹어버렸고, 모두 돌아볼 때 혼자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런 자존심으로 어디선가 잘 살아내고 있겠지. 어찌할 수 없었던 속수무책의 기억은 비로 씻어 버리고 잘 살아가라고 비가 이리 올까? 이제는 그 친구들의 슬픔이 더불어 나의 슬픔도 모두 씻겨 나가 지금은 모두 괜찮아졌기를, 소소하게 행복하기를 바란다.


모두 괜찮아질 것이고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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