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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Aug 28. 2023

just do it 24

게슈탈트 기도문 - 프리츠 펄스


게슈탈트 기도문


나는 나의 일을 하고

너는 너의 일을 한다.


나는 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너는 나의 기대에 따르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너는 너

나는 나


만약 우연히 우리가 서로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

만약 서로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


Gestalt Prayer

I do my thing and you do yours.
I am not in this world to live up to your expectations,
And you are not in this world to live up to mine.
You are you, and I am I,
And if by chance we find each other, then it is beautiful.
If not, it can't be helped.

                      - Frederick Perls-


프리츠 펄스(Fritz Perls 1893~1970) 독일 출신의 유대인 심리학자로 게슈탈트 심리치료 창시자. 전쟁에서 뇌손상을 입은 군인들을 치료하면서 정신분석에 이끌렸다. 2차 대전 후 미국으로 이주해 게슈탈트 심리학, 정신분석학, 현상학, 실존주의, 실용주의를 가미한 저서 [게슈탈트 치료]를 출간했다. 참선에도 관심을 갖고 일본의 선원에 머물며 짧은 각성의 개념을 치료에 접목시켰다. 게슈탈트 요법은 지금 여기를 강조하며 병이 아닌 환자가 지닌 잠재력을 본다.




Gestalt psychology's motto is ''The whole is greater than the sum of its parts''.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 인간은 전체로 인식하는 존재이다.


나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이 세상에 온 것처럼 처음에는 부모님, 그 다음은 남편, 회사, 아이들의 기대치를 넘고자 최선을 다해 애를 썼다. 그리고 부족하다고 자책했다. 잠을 더 줄이고 더 집중하고 더 참아야 된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어느 날 일상이던 두통을 뛰어넘어  온몸이 아팠다. 갑자기 음식을 삼킬 수가 없었다.


머리는 아직도 나만 노력하면 조금 더 분발하면 더 잘될 수 있다고 있다고 하는데 물조차 몸이 거부했다. 나를 살리고자 몸이 신호를 준 것이다. 두통도 소화불량도 아닌 삼킴의 거부. 자율신경장애라고 했다.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할 때조차 몸이 긴장 상태라고 했다. 몸이 24시간 긴장과 방어자세이니 온몸에 문제가 생겼다. 잠이 오지 않았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고 음식을 먹지 못하면서도 의사 선생님 진단을 믿을 수 없었다. 모두 열심히 사는데 왜 대충 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 오는 길 이해가 되었다. '남들도 대충 살아요'라는 말이.


너무 애를 썼구나. 아침에 출근해 밤에 퇴근하면서 애도 잘 키우고 집도 깨끗하고 애들 반찬도 제대로 하고 주말엔 부모에게 효도하려고 너무나 애를 썼다. 불가능한 일을 다 잘하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 되니 내가 부족한 것만 같아 나만 몰아세웠다. 물론 주범이 있다. 항상 월급을 드려도 불만 가득한 얼굴의 시어머니와 세상 일은 혼자 다 하는 듯 고뇌에 빠져 있던 남편과 엄마만 기다리던 내 새끼들.


누구도 나에게 수고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애 본다고, 남편은 돈 번다고 힘들다고 했다. 그럼 나는? 애도 보고 돈도 벌고 집안일도 하는 나는? 계속되는 통증으로 휴직했다. 휴직하고 한 달을 잠만 잤다. 그렇게 잠이 올 수가 없었다. 한 달이 지나니 아픈 곳이 서서히 사라졌다. 시어머니는 갑자기 초등학생 손자들이 엄마에게만 달라붙으니 본인 자리가 위태로운지 갑자기 뒷방 늙은이 취급한다고 불안해서 삐지셨다. 아! 문제는 내가 아니었구나.


내가 잘하면 모두가 알겠거니 하며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했던 나도 분명 문제였으나 부질없는 기대 충족을 을이 마침내 포기했을 때 갑이라 착각했던 이들의 태도를 보고 깨달았다. 어떻게든 트집을 잡고 계속 요구한다는 것을. 나는 시어머니에게 더 이상 을이 아니었다. 내 아이는 내가 키울 것이며 양육도 내 방식대로 하였다. 상당한 부작용이 있었으며 마음 약했던 순간도 많았으나 나는 드디어 독립했다.


만일 젊은 날 직장과 육아와 서툰 집안일에 온몸이 아팠을 때 어른이 진심으로 걱정하고 말 한마디 따뜻하게 했다면 어른들의 노후를 의무가 아닌 애처로움으로 보살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번의 기회를 모두 날려버린 어른들을 지금도 부양하고 있지만 생로병사의 안타까움은 없다. 나는 그들의 비이성적인 기대에 부응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미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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