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천히바람 Aug 27. 2023

just do it 23

나무들 - 필립 라킨

나무들


나무들이 잎을 꺼내고 있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이.

새로 난 싹들이 긴장을 풀고 퍼져 나간다,

그 푸르름에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있다.


나무들은 다시 태어나는데

우리는 늙기 때문일까? 아니다, 나무들도 죽는다.

해마다 새로워 보이는 비결은

나무의 나이테에 적혀 있다.


여전히 매년 오월이면 있는 힘껏

무성해진 숲은 끊임없이 살랑거린다.

작년은 죽었다고 나무들은 말하는 듯하다,

새롭게 시작하라고, 새롭게, 새롭게.



The Trees


The trees are coming into leaf

Like something almost being said;

The recent buds relax and spread,

Their greenness is a kind of grief.


Is it that they are born again

And we grow old? No, they die too,

Their yearly trick of looking new

Is written down in rings of grain.

 

Yet still the unresting castles thresh

In fullgrown thickness every May.

Last year is dead, they seem to say,

Begin afresh, afresh, afresh.

 


필립 라킨 (Philip Larkin1922~1985) -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시단이 낳은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삶의 실체를 추구하는 시들을 썼습니다. 타임스 지가 ‘20세기 후반 영국의 가장 뛰어난 시인’ 1위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옥스퍼드대학 영문과 수석 졸업 후 평생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시를 썼습니다. 수줍음 많은 시골 출신으로 대중 앞에 드러나는 것을 주저해 영국 계관시인으로 임명되었으나 사양했습니다. 단 네 권의 시집을 통해 죽음과 무, 허상과 실상, 생성과 소멸에 관해 썼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5년이 지났다. 아버지는 57세에 돌아가셨다. 1998년 그때 나는 오십일곱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잘 몰랐다. 그저 감각이 없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했고 눈물이 펑펑 쏟아지지도 않았다. 장례절차는 갑자기 등장한 집안의 남자 어른들이 진행했고 그 상황에서 딸인 내가 결정할 일은 없었다.


세월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가 가엾다. 요양원에 계셨고 언제 나을지 기약도 없었으니 얼마나 막막했을까? 돈이 중요한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없었으니 대접은 오죽했을까? 아버지는 항상 깨끗하셨다. 머리를 단정히 하고 옷도 아무렇게나 입지 않으셨다. 주변도 늘 정리되어 있었다. 시끄러운 것을 몹시 싫어하셔서 요양원에서도 혼자 방을 쓰고 싶어 하셨다. 옆 방의 환우가 돌아가시는 밤은 그 소리가 고통스러워 며칠을 힘들어하셨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시를 쓰셨다. 친척들은 아버지의 재능을 몹시 아까워했으나 시가 돈이 되는 세상은 아니었다.


제주에 내려와 갑자기 아버지 시를 모아 책으로 엮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선물로 바치고 싶었는데 오빠집에 있어야 할 아버지 글들이 사라졌다. 아버지는 내게 물질적인 것은 남기지 않았으나 내 말을 가장 귀 기울여 끝까지 들어주셨고 죽음에 관한 두려움도 어린 나에게 얘기해 주셨다. 적당한 경제적 자립이 되면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말라고도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글 쓰는 재능이 딸에게도 유전되었으리라 무조건 믿고 오늘도 나이테를 새기듯 책을 통해 성장할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도록 돌아가신 내 아버지가 가르치셨다. 나는 만돌이 딸이니까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이 소중하니까 오늘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너무 조용하지 않은 고요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