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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Sep 14. 2023

Living in Jeju

온탕, 열탕, 욕탕 제주살이

2015년 평화로운 나의 40대에 남편의 회사 선배가 서귀포 땅을 사라고 연락이 왔다. 아주 분하고 잊어버리고 싶지만 잊혀지지 않는 그간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막장드라마 순서대로 진행이 되었다. 돈 앞에서 사람들이 변하는 과정에 양심을 호소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세상은 내편과 네 편으로 내편은 옳고 네 편은 그른 것이라는 단순한 결론을 5년간의 소송에서 깨달았다. 왜 조용히 신에게 의지해야 하는지 무탈한 하루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 겪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친구보다  모르는 남이 훨씬 더 깊은 위로를 주었을 때 친구관계도 정리가 되었다. 그전에 나는 권선징악이 다소 우세한 온실에 살아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지독히 순진하게 해석하였다.


작은 땅에 집을 짓고 집값을 치르며 이상한 점이 많았으나 남편이 40년 가까이 알았던 그 선배를 믿었기에 그 사람이 소개한 땅주인이자 시행사를 겸한 사람까지 믿었다. 땅값을 입금하는데 예금주가 달랐다. 여기서 이상함을 감지하고 확인하니 신용불량자라고 했다. 보증을 잘못 서서 그렇다고 했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 믿으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제주에 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이 대입을 앞둔 시기라 관심은 온통 대입으로 쏠려 있어 남편이 알아서 잘하리라 믿었다. 계약서도 A4용지에 손으로 쓴 것이 전부였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이상함을 다들 감지하셨으리라.


그다음은 모두 바쁘고 고달픈 인생에 더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기이므로 생략. 남편 혈압이 190이 넘어 수면내시경도 불가능하자 나는 부산과 제주를 오가며 생활했다. 그 사이 아이들은 대학에 가고 졸업을 하면서 나는 제주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제주에서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맑은 날 제주의 하늘과 바다색은 아름다움을 넘어선 경지이지만 비바람과 눈이 몰아칠 때면 싸늘하게 돌아선 이혼한 부부처럼 급변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제주도민은 특히 읍, 면 지역에서는 육지것이라 불리는 외지인을 잘 받아주지 않는다. 제주의 역사를 모르고 맑은 날 관광으로만 보았던 제주살이를 꿈꾸고 온 철없는 외지인들에게 원주민은 철저히 선을 그었다. 한 공간에서 이방인이 되는 경험, 여기가 진정 21세기 같은 대한민국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법도 상식도 대한민국과 제주가 좀 다른 것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2015년부터 살아내는 중인 환상의 섬 제주에 대해 제2의 고향이라고 느낀 적은 없다. 나의 제주살이는 하자에 대한 보수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보일러가 꺼지고 전기가 나가고 물이 새어 들어와서 맨땅에 헤딩하듯 하나씩 고치며 살고 있다. 이제 50대가 되어 버린 나는 나의 정신과 육체를 보살펴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 보낼 것은 보내고 아쉬운 것은 아쉬운 대로 인정하며 제주에서의 내 삶에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고자 한다. 환상을 품고 제주로 이주해 온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 나는 그들에게 내가 알고 겪은 다양한 지식을 마구 줘버리고 싶다. 받아갈 사람은 받아가고 검증이 필요한 사람은 그리하고 내가 진작에 알았으면 좋았을 소박한 지식을 마구 방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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