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호야 Mar 31. 2022

23. 딸기라떼를 원 없이 먹고 싶다.

카페 딸기라떼는 너무 비싸

매력적인 입간판

 사건의 발단은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보드게임을 하던 날, 꽤 오래 앉아 있어 메뉴를 하나 더 시키다 보니 커피를 두 잔 마실 수 없어서 시키게 된 딸기라떼였다. 계절 한정 메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평소에 과일을 챙겨 먹기 어려운 자취생이라는 점도 선택에 한 몫 했다. 맛도 있었는데, 문제는 두어번 쪼로록 빨아들였더니 무하게 사라져버린 양이었다.



-까지를 쓰고 일주일이 지나버렸다. 매일 9시 넘어서 퇴근하다가 시간이 다 갔다. 이제는 딸기가 잘 보이지 않는데, 다른 걸 써야 하나 싶다가, 그래도 사진을 다시 보니 군침이 당겨 다시 사진첩을 뒤져 기록해보기로 했다.


 언니의 확진 판정 직전 혼자 당일치기로 본가에 들르면서 큰 맘 먹고 비싼 딸기를 본가에 사 갔다.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마트에서 당도가 별 5개였던 딸기였다. 부모님도 할머니도 맛있게 드시다가도 언니가 딸기를 좋아한다며 깨작깨작 드시다가, 결국 자취방에 가져가서 먹으라며 반을 다시 싸 주셨다. 열심히 집까지 챙겨왔는데, 언니 눈 앞에서 자랑하다 철푸덕, 딸기 얼굴 방향으로 바닥에 떨궜다. 예쁘고 탐스럽던 딸기가 순식간에 멍이 들었고, 그냥 안 예쁜 딸기가 되어 '먹어치워야' 했다. 속상했다.


지난 겨울 귤을 사다가 처음 들어 봤던 타이벡. 해가 골고루 들어 당도가 높아진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음 날에 운전 연습 삼아 간 마트에서 설향딸기를 사왔다가, 바로 다음 날 언니의 확진으로 오픈을 하게 되었다. 별 다섯 개짜리 딸기 못지 않게 맛이 있었고, 비싸서 살짝 주저했지만 환자를 위한다는 핑계로 딸기라떼에 도전해보게 되었다.

칼로 열심히 자르다 지쳐 나중엔 으깼다. 잘 보이지는 않는다.


 첫 번째 딸기라떼는, 안 되는 칼질로 잘라 만든 딸기라떼였다. 딸기 과육의 씹는 맛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잘라서 만들었는데, 나중에는 귀찮아서 으깨다시피 했다. 언니 한 잔, 나 한 잔 만들었는데, 비싼 딸기가 아깝다고 아꼈다가 우유에 딸기 한 방울 첨가한 느낌이 되어서 실패했다. 과육 씹는 맛을 살리려다 우유랑 따로 놀기도 해서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두 번째 딸기라떼는 다지기 기계로 다졌다. 최대한 살살 눌러서 과육을 살리는 게 포인트. 컵에 담고, 우유와 꿀을 타 달달하게 만들어봤다. 전날보다 딸기도 많이 넣어서, 나름대로 사 먹는 맛이 났다. 꿀이 잘 녹지 않아 마지막에 좀 남았던 게 아쉽긴 했지만, 먹은 중에 과육은 제일 맘에 들었다.


 세 번째 도전! 이번에는 목이 아픈 언니의 의뢰를 받아 과육을 포기하고 좀 더 잘게 갈아봤다. 하는 김에 아예 우유랑 꿀도 넣고 같이 갈았더니, 조금 새서 닦기는 귀찮았지만 꿀도 잘 섞이고 맛있었다! 언니 한 잔 주고 남은 양으로 나름의 홈카페 갬-성을 담아 딸기도 하나 꽂아보고 잔도 예쁜 걸 꺼내봤다.

저렴한 대신 왕창 먹을 수 있었다.

 이쯤부터는 인터넷으로 조금 저렴한 딸기를 사기 시작해서, 처음 만들었던 것에 비교하면 점점 과감한 양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크기가 작아서 꼭지를 따기 좀 귀찮은 것과, 큰 박스에서 빠르게 물러버리던 것을 빼면 다 괜찮았다. 그릭요거트에도 넣어 먹고 신나게 만끽했다.


 그리고 대망의 성공작. 이름하야 그릭 허니 딸기라떼!

최우식이었나, 무슨 연예인이 아침에 갈아먹는 음료 재료에 그릭요거트가 포함되어 있길래 궁금해서 마침 그릭요거트를 만든 김에 크게 한 스푼 넣어봤다. 엄마가 딸들 아프다고 꿀도 크게 한 병을 보내주셔서, 꿀도 넉넉하게 넣어주고 나니 정말 사 먹는 딸기라떼가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그릭이 들어가니 더 부드러운 느낌이 들어서 우유와 딸기가 더 잘 어우러지는 기분이었다. 파는 것처럼 예쁘게 먹으려면 청을 담가야겠지만, 아니어도 딸기를 여러 버전으로 다지는 것 만으로도 그럴 듯한 웰컴드링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음, 딸기 먹고 싶다. 야근이 끝나면 다시 마트에 가 봐야겠다. 아직 남아 있으려나?


 

매거진의 이전글 22. 오믈렛과 토달볶 사이, 토마토야채달걀볶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