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우리가 '진짜 가족'이 된 시간

: 결핍이 가르쳐준 풍요

by 그저 나


인덕션 위 냄비에서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피어오른다. 주방을 가득 채운 이 온기 속에

앉아 있노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남편이 없었다면,

나는 그 모진 과정들을 혼자 견뎌낼 수 있었을까.’


물론 어떻게든 혼자서 해결은 했겠지만,

그 무거운 짐을 오롯이 혼자 짊어져야 했다면

내 마음은 이미 가루가 되어 흩어졌을지도 모른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믿어주고, 함께 화내주며,

내 손을 꽉 잡아준 단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 이제야 실감한다.


우리는 짧은 연애 끝에 결혼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주변에서는 우리를 보며 성급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남들이 몇 년에 걸쳐 겪을 고난을

단 몇 개월 만에 응축해서 겪어냈다.

인생의 가장 비린내 나는 진흙탕 속을 함께 구르며

우리는 서로의 민낯을 보았고,

그 안에서 누구보다 단단한 의지를 확인했다.


시련은 우리에게서 돈을 앗아갔지만,

대신 '인생의 동반자'라는 확신을 선물했다.


부모님께 느끼는 감사함과는 또 다른 차원의

든든함이 있다.

나를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보호자가 아니라,

거친 파도를 함께 헤쳐 나가는 대등한 '파트너'

생겼다는 사실이.


우리가 이런 일도 이겨냈는데, 앞으로 살면서

어떤 일이 와도 잘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안다. 지금의 이 설렘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살다 보면 서로가 너무 익숙해져서 편안함이

지루함이 되고,

사소한 일로 날 선 말을 주고받으며

갈라서고 싶을 만큼

미워지는 순간도 분명 올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시간을 떠올리려 한다.

10년의 자취 생활 끝에 만난 이 우풍 없는 거실과,

내 편이 되어준 그의 단단한 등을.


우리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서로를 어떻게 지켜냈는지 기억한다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갈등 앞에서도

다시 서로의 손을 잡고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비워진 통장보다 더 크게 채워진 것은,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우리의 온도'였다.

보란 듯이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완성해 나갈 가장 아름다운 복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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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예고]


"천국인 줄 알았던 신혼집에도 '생활의 온도 차'는

있었다"


우풍 없는 아파트, 사랑하는 남편.

모든 게 완벽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10년의 자취 습관과 30년의 생활 방식이

충돌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치약 짜는 법부터 빨래 개는 법까지,

사기꾼보다 더 무서운 '사소한 전쟁'의 서막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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