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일리도 적응하느라 힘들지?
첫 일주일을 아이를 보내놓고 집에 있어도 내내 걱정뿐이다.
친구들은 잘 사귀고 있나..
선생님 말은 잘 듣고 수업은 잘 따라가지나..
영어유치원도 나오고 사립초등학교에 공립중학교를 나왔어도 영어는 놓치않고 계속 열심히 했었던터라..
크게 걱정은 안되었지만 IB디플로마 과정이 워낙 어려운 과정이라..
다행히 1학년때는 pre과정이라 여러가지를 해보는 거 같았다.
지식이론이라고 정치, 철학 , 종교등 통합교과적인 사고훈련으로 2년간 100시간을 이수해야하고
소논문이라고 4000자 이하로 거의 대학논문처럼 써서 내야한다.
CAS라고 창의력, 신체활동,봉사활동을 18개월 이상 이수해야한다.
너무나도 이상적인 교육과정이 아닐 수가 없다. 이 과정들만 잘 졸업해도 대학가서는 훨씬 더 도움이 되고
인생 전반적인 것을 생각하더라도 바람직한 교육과정인듯하다.
그나마 우리 헤일리는 중국어를 해왔던터라 중국어 한과목은 수월했다. 하지만...
영어가 학문적인 영어와 실생활 영어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에세이 과제는 계속 끊임없이 나오고 수업시간에는 토론 평가도 많았다. 모두다 미리 다 준비를 해야하는 것이다.
8시부터 수업을 시작해서 거의 저녁 먹기전까지 수업을 하고 저녁 먹고는 또 공부를 해야하고 잠드는 것은 12시 넘어서 자니 하루에 6시간 정도 자는게 평균인듯하였다.
기숙사도 3인이 같이 써서 성향이 맞지않다면 불빛이나 소리등으로 예민해지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 것같았다.
일단 영어가 헤일리가 너무 부족했다.
다른 아이들은 영어자체가 편하니 과제를 하나해도 자료를 찾고 바로 노트북에 써가면 과제가 완성이 되었다.
하지만 헤일리는 한국어로 일단 과제를 쓰고 다시 영어로 바꾸는 작업을 해야만했다.
이 과정으로 인해 다른 아이들보다 2배이상 시간이 걸렸다. 그러니 모든게 힘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1주일 지내고 온 아이를 금요일 12시즈음 데리러 가니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맘이 찢어질듯 아프다.
영어를 더 시켰어야했어.. 어학연수라도 공립중학교1학년때라도 1년정도 다녀오게했어야했어.
아니면 이 학교에 가는거 자체가 너무 엄마의 욕심이었나?
집에 오는 내내 아무말도 하지 않고 눈 감고 자는 아이를 보니 맘이 너무 아프다.
이 금요일의 심장 떨림은 거의 1학년 내내 그러했다.
금요일이면 아이를 데리러 가는 30분여 운전하는 동안 항상 심장이 터질듯 쿵쾅거렸다.
그만두고싶다하면 어쩌지?
더이상은 못하겠다고 하면 어쩌지?
그러면 어디로 전학을 해야하나?
힘든건 알지만 좀 더 버텨줬으면 하는 엄마맘과 아이의 힘듦을 모른척하고싶은 엄마맘이 동시에 들었던 시간들이었다.
결국 1달여 다니고 일요일 기숙사로 복귀하는 어느날
펑펑 울면서 자기는 더이상 못다니겠다고 한다.
조금만 더 다녀보자. 그래보고 안되면 다른곳을 가자. 라고 겨우 달래서 아이를 기숙사에 들여보내고 오는데
뒷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엄마의 욕심인가. 왜 이리 힘든 길을 선택했나.
우리에게 졸업하는 날이 오기는 올까?
아이와 떨어져 있고 엄마는 몸은 편해졌지만,
맘은 아이를 키우는 그 어느때보다 무겁고 불편했다.
급기야 밤에 잠이 안오는 지경에 이르게되었다.
한달여 지나고 아이도 적응을 좀 했는지..
그만두겠다는 말은 하지 않게되었다.
나름 아이의 판단이었던거같다. 지금 다른 학교를 간다한들 어딜 갈 것이며
같은 학교 국내반 아이들을 봐도 그 안에서의 경쟁과 내신성적 등급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옆에서 보니 느끼는 바가 있었던 것같다.
영어실력 차이는 어쩔수 없이 그렇다치고..
아이들이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애들도 많고 한국 중학교 나온애들도 있고..
다들 공부를 나름 잘하던 애들이라서 그런지 중학교때의 친구관계와는 많이 다른 느낌인가보다.
다들 서로 견제도 있는듯하고 할 것이 많다보니 도와주기보다는 자기 할걸 하느라 배려를 많이 못해주는게 사실인듯했다.
아무생각없이 학교생활만 즐거우면 되던 중학교 우정과 목표가 뚜렷해진 고등학교 우정과는 차이가 많은지
한동안 친구 사귀는것을 힘들어했었다.
물론 나중에는 친한 친구도 생기고 마음 둘 친구도 만들었지만
1학년 1학기 거의 내내 나한테 밤마다 전화를 했었다.
하루종일 있었던 힘들었던 부분, 좋았던 부분 있었던 일들을 나한테 다 이야기를 하고 나서야 좀 맘이 풀리는듯했다.
괜찮다. 다 지나가고 크게 의미를 안둬도 된다.
너는 적응하는 기간이고 충분히 잘하고있다.
아이의 마음을 다독이고 어루만져주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통화를 했는지 모른다.
영어는 학원에 다녀서 학문으로 학습하여 중학교 내신을 위한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이렇게 외국대학을 간다면 얼마나 더 말문이 막힐 거인가?
벌써 대학걱정이 밀려오지만
당장 고등학교 1학년1학기라도 잘 보내고 여름방학이 와서 부족한 부분을 아이와 상의하고 공부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밤마다 다짐을 한다.
학원도 알아보고 과외도 알아보는데 IB디플로마 과정 학원도 많이 없고 선생님도 있어도 차암 단가가 비싸다.
과제도 한국교육과정만큼 잘 만들어진게 없으니
그냥 스스로 수업시간에 한걸 정리하고 내껄로 만드는 일을 하는수밖에 없는 것이다.
헤일리는 정리의 여왕이라 탭에 정리하고 노트북으로 파일화를 하는 과정을 누구보다도 잘했다.
그래서 IB위원회 (학교자치위원회)에 학습부에 들어가서 과제를 날짜별로 정리해서 반 아이들에게 공유하는 일을 도맡아 하게된다.
1학년 초반에는 해야할 것이 참 많다. 기본적으로 꼭해야하는 동아리가 있어서 헤일리는 국제동아리에 가입했는데 경쟁률이 무려 40대1이 넘었다. 자소서에 면접까지 봐야하는 어려운 과정인데 헤일리가 합격하게되었다. 그때 작은 성공의 맛을 살짝 본거 같다.
나도 하면 되는구나.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부족하다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아이는 국제동아리에서 여러 국제상황에 대해 알리고 캠페인하는 일을 하게되었다.
1학년 내내 그 동아리와 또 다른 봉사동아리를 하나더 활동했는데 한국에 사는 고려인 학생들에게 영어를 줌으로 가르치는 봉사를 했다. 1학년 내내 꽤 열심히 했었고 보람도 많이 느껴했었다. 물론 공부하는게 많아서 좀 힘들어하긴했지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쉬운 일이었기에 수월하게 잘 진행했었다.
이렇게 학기초는 바쁘고 힘들고 떨리고 우는 나날로 보냈고
세계적인 펜데믹인 코로나로 인해 더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기숙사기때문에 금요일에 퇴소시 보건소등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걸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키트를 또한 일요일 입소시에 제출하여야했으며 열이 있꺼나 하면 입소가 금지되었다.
마스크 생활은 기본이었고 학교에 코로나가 퍼지기라도 하면 어쩔까 노심초사 힘든 생활을 버텨갔다.
공부만 해도 힘든데, 지금 생각하면 어찌 그걸 다 견뎠나싶은데
그땐 그게 최선이었고 다른 도리가 없었기에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었던 거같다.
단체 생활이라 아이도 결국은 반에서 코로나를 옮아와서 우리 온 가족이 코로나에 걸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코로나 걸리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이가 학교를 1년간 잘 다닐수있을까 마음 졸이는게 더 아팠다.
그렇게 1학기를 힘겹게 보내고 그래도 조금은 적응된 기간을 걸쳐 여름방학이 왔다.
집에서 1달여를 같이보내며 아이를 달래고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같이 대화를 하며 조금씩 희망을 느끼게 해주었다.
여름방학동안 부족했던 수학과외를 하고
영어 화상수업도 해서 말하기 연습을 하고
2학기때 해야할 과제나 여러가지 계획들을 세우느라 학교에 다니는것만큼 빠듯한 여름을 보냈다.
놀러도 한번 못간거 같다.
그래도 2학기땐 더이상 학교를 못다니겠다는 말은 안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컸었던거같다.
아이는 그렇게 여름방학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갔고
생각보다는 2학기는 적응을 해나가고있었다.
아이의 하루는 어땠을까?
아침부터 자기전까지 계속되는 수업과 과제로 넉다운이 될듯싶다.
자신감도 없어서 심장이 쿵쾅거리고
매번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에서 출발신호가 울리길 기다리는 선수의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출발선에 서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는 것을 엄마는 알기에
모질게 아이를 그곳에 세웠다.
엄마는 모질게 했지만 나중에 사회가 아이를 모질게 대하는 것보다는 더 낫다는 확신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