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로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것은 아이의 진로의 방향이 결정되는 중요한 것이기때문에 입학설명회를 몇군데 다녀왔다.
첫번째는 용인에 있는 중학교를 졸업하기에 용인 지역우수자를 30% 뽑는 용인외대부고이다.
용인이라는 인접한 지역에 위치해있고 지역우수자 전형도 있기때문에 용인중학교에서 공부를 좀 한다 하는 아이들은 용인외대부고(자사고)를 많이 염두해둔다.
중학교1학년때는 아이의 진로를 국제로 뒀기때문에 용인외대부고가 목표였다.
용인외대부고는 용인 지역우수자로 일반전형을 약 84명 가량 사회통합전형을 약 21명 가량 뽑는다.
전국일반전형이 196명에 비해보면 상당히 높은 숫자임에는 틀림없다. 해볼만하다싶어서 자소서도 준비하고 활동도 대사관 홍보대사 및 환경보호대사도 하면서 내신 성적도 관리하였다.
그런데 용인외대부고는 국제반 아이들의 대학 입결을보니 대부분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게 아니겠는가?
SAT를 준비해서 말이다.
미국대학 보내는 것은 우리집 형편에 힘들다고 판단이 되었다. 아쉽지만 용인외대부고는 마음에서 내려놓았다.
두번째는 동탄국제고이다. 또한 집에서 가깝고 설명회를 가보니 열기가 뜨거웠다. 한참 드라마의 배경으로도 나온 신상 건물에 입이 딱 벌어질만큼 좋은 시설들이었다.
동탄국제고는 외국대학 입시보다는 한국대학입시 위주의 고등학교였다. 그래서 또한 내려놓았다.
세번째는 경기외고이다. 우연히 경기외고 설명회를 갔는데 국제반이 IB디플로마( 국제 바칼로레아) 프로그램으로 운영하였고 스위스에 본부를 둔 국제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 있는 NLCS나 송도에 있는 채드윅이 대표적이고 국내교육부 산하 고등학교중에는 경기외고가 유일했다. 지금은 삼성고도 하는 것으로 안다.
대학은 주로 이 프로그램이 영국교육과정이기때문에 영국이나 싱가포르 홍콩등에서 많이 인정해준다.
선배들 대학 입시 결과를 보면 물론 미국은 당연히 선호하니 미국으로도 가고 영국 옥스퍼드등 좋은 대학들도 많이 갔다. 우리 헤일리는 어려서부터 홍콩대학을 염두해뒀는데 홍콩 상황이 좋지않아 싱가포르 대학을 가야하나 맘속으로 생각하면서 설명회를 끝나고 나왔다.
하나의 고등학교밖에 선택이 안되기때문에 헤일리는 경기외국어고등학교 국제반을 선택했다.
직접 엄마인 내가 서류(성적 및 생활기록부, 자소서등)를 내고 오는데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많이 떨렸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그렇게 1차 서류전형에 통과하여 2차 면접을 보는데 외국인 교사와 하는 카메라 화상 면접이었다. 물론 학교에 가서 (코로나로 인해) 다른 방에 카메라 화면으로 또 다른 방에 있는 외국인교사와 영어로 면접을 보는 것이었다. 인도선생님도 계시고 영국선생님도 계셔서 안그래도 긴장한 상황에 발음을 못알아 들은 것도 좀 있었지만 대부분 자소서 내용에서 질문이 나왔고 "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소신껏 꽉 채워 말을 하고 나왔다고 했다. 한 걸음 한걸음이 하나같이 떨리고 힘들 과정이었지만 하나씩 넘어가는 느낌도 성취감이 꽤 든 모양이었다.
나중에는 떨리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면 면접을 봐보면 내가 붙을지 떨어질지가 느낌이 온댄다. 헤일리가 영어말하기, 중국어 말하기 대회를 많이 나가서인지 실전에 강한편이긴하다. 하기전에는 떨리지만 시작만 하면 완전 몰입으로 평소보다 더 좋은 실력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번 면접도 자기는 붙을거라고 생각한다. 결과일이 와서 인터넷으로 합격여부를 확인할때도 무덤덤하게 미소 짓던 아이의 얼굴이 기억난다. 엄마 아빠는 얼싸앉고 울었는데 말이다.
고등학교는 이렇게 합격이라는 결과는 나왔지만 국제반이라는 것이 이때부터 부담으로 다가왔다.
모든 수업을 영어로 그것도 IB디플로마 과정은 토론과 에세이 소논문 등 공립중학교에서는 해보지 않았던 수업인데
더구나 외국에서 온 리터니가 30명중 반 이상이라는게 어지간한 부담이 아니었다.
일단 입학준비를 착착 진행하였다.
교복도 포멀과 캐주얼 2가지 종류에 체육복도 색깔별로 있고 외고교복이라 그런지 일반 고등학교보다는 다른 느낌이었다. 교복입고 증명사진도 찍으니 이제 진짜 외고학생이 되는구나싶었다.
이제 입학하면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일요일 밤에 가서 금요일 오후에 집에 오니 일주일에 한번 보는구나싶으니 벌써 떨어져있을 것이 걱정이 되었다.
학교는 수원과 의왕시 인접 지역에 있고 산자락 언덕 중간에 있어서 경사가 져있었다. 트렁크를 끌고 올라가는 아이 모습을 사라질때까지 한없이 바라보면서 눈시울 붉혔던 나날들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이 학교를 가기위해서 중학교 3년 내내 주말마다 서울에 가면서 국제 활동들을 하고 내신 성적을 유지하려고 집앞 독서실에서 매일 12시 넘어서 집에 오던 아이의 애씀의 결과인 것이다.
자소서도 몇번을 다시 쓰고 결국은 카이스트에 다니는 어떤 쌤께 마지막 코칭을 받고 끝냈었다.
고등학교 입학이 어디 쉬운 발걸음이 하나 없었다.
중학교 과정도 고등학교 입시 과정도 하나 하나 아이의 노력이 꽃을 피우게 하기 위해 계속적인 노력을 한 댓가인 것이다.
헤일리는 이제 경기외국어 고등학교 국제반 1학년으로 입학했다.
코로나로 입학식도 없었고 주차장 근처에서 담임선생님과 아이와 부모님이 같이 마스크를 쓰고 부스에서 사진찍는 것밖에 없어서 아쉬웠다.
교복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일요일 밤에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오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주차장에서 혹시나 전화가 올까 30분 가량 남편과 아무말 없이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주차장은 야외였으나 지붕이 씌워져있어서 어두웠고
그 어두움에서 매주 금요일 아이를 기다리는 맘이 즐겁기 보단 맘 졸였던 3년을 이제 하나씩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