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쁜 이야기 Sep 11. 2022

나를 품어준 사람들.

 1. 언니와 추석.

언니는 착하고 순하다. 언니는 시집을 갔고 회사를 다닌다.

언니는 사회생활의 한 몫을 담당하며 회사 집 시댁에서 큰소리 나지 않게 무언가를 하고 있다.

추석 때 시댁을 갔다가 친정에 넘어오는 길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묻힌 국립묘지에도 가야 하고  요식업이라 명절이 더 바쁜 회사일도 챙겨야 한다. 언니는 소리나지 않게 모든 이를 편안하게 맞춰주려고 늘 생각이 많다.


나 역시 생각이 많지만 내 생각은 오직 나의 관심사에만 집중되어 있다. 주위에 대한 관심이 없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집중해서 남들이 질릴때까지 해버리는 편집증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 내 시간과 내가 소중히여기는 것을 하는 시간을 무엇보다 아낀다. 그래서 시집은 못 갔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범주에는 그런 것들이 들어있지 않아서다.

 

나는 언니를 내 고양이 시라 다음으로 소중히 여긴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형부는 나를 보통의 처제처럼 대하며 백화점 가서 좋은 옷을 사주거나 함께하는  술자리나 식사시간을 가지면 점수를 많이 딸 수 있을 줄 알고.  잘못된 시도를 많이 했었다.


내 소중함의 범주에 언니가 있었기에 나는 형부와 언니와 함께하는 시간에 가끔 내 시간을 내어주곤 했지만 내 소중함의 범주에는 형부가 사주려는 선물 같은 건 없었기 때문에 형부가 백화점가자고 할 때 매정하게도 실은티를 내며  끊어버렸다. 생각지 못한 반응에 형부의 마음고생이 좀 심하셨던 것 같지만 그런 것까지 생각할 줄 몰랐던  나의 악의 없는 형부에 대한 만행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선 아니었을까...


대기업마케팅팀에 갓입사했던 23살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나보다 10살 정도 많으신 VMD분과 협업을 해야 했는데 협업이 잘 될리 만무한 내 성격이 사단을 만들 뻔했다.


나는 매우 칭찬할만한 프로모션기획을 승인받았는데 그분이 나를 불편해서 매장에 세울 이벤트 POP를 만들어 달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이미 휴가 중이셔서 개인적으로 방해가 되는 전화를 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우리 언니도 시각디자인 전공을 했으니 언니를 회사에 데려와서 내가 원하는 매장 전시 홍보시안을 만들게 했다.


당시 언니 나이도 25살. 사회생활이 뭔지 잘 모르는 나이였던지라 언니도 동생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러 우리 회사에 출근했다.  직원도 아닌 언니와 공채신입직원인 나의 사회생활 1도 모르고 저지른 만행을 다른 선배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받아주셨던 것이 기억이난다. 일러스트와 포토샵이 깔린 과장님 자리에 언니를 앉혀 놓고 우리는 우리만의 자매애로 홍보시안을 완성시켜 부장님께 승인을 받았다.


당시 마흔 중반의 사람좋으신  부장님은 고생했다며 잘만들었다고 칭찬해 주셨고. 다다음날 출근했다가 내가 언니를 불러 회사마케팅 홍보시안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VMD 과장님이 언니것 보다 훨씬 더 크고 예쁜 POP를 다시 만들어 사람 좋으신 부장님께 재 승인을 받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황당무개한 사건에도 그분들은 직장 생활 십수년차 답게 문제가 불거지지않는 방향으로  잘 넘어가 주셨던 것 같다. 10살이나 어린애랑 싸울 수도 없고...  과장님의 마음은 그런 느낌이셨을 듯하다.


당시나 지금이나 여전히 정서적 공감보단 결과적 선익을 더 중시 여기는 INTP 인 나는 과장님이 왜 나를 불편해하는지 이해 못한 상태로 어쨌든 매장에 예쁜 POP가 들어서게 된 것을 뿌듯해 했다.


이런 식이라서.

이미 시집을 가버린 언니와 시집안간 동생의 명절 만남 스케쥴 문제는 종종 불똥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기도 한다.


언니는 챙겨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그 와중에 짬을 내서 나를 어떤 모임으로 함께 보고 싶어 했다. 일 다 끝내고 친정으로 찾아갔을 때 내가 있으면 좋은 정도 였겠지만.  나도 명절이지만 요일마다 다른 스케쥴이 잡혀있어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좀체 잡기가 어려웠다.


"언니는 내가 보고 싶은거야? 아님 나를 요리조리 편한 쪽으로 같다붙이고 싶은거야?"


직설적으로 물어보는 나 때문에 마음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말이 길어지는 언니. 결국 간단하게 볼수 없으면 보지 말기로 했는데도 우유부단한 언니때문에 내 스케쥴이 이리틀렸다 저리틀렸다 했다. 완전히 빡친 내가 선언했다.


"내가 일하러 갈게!

언니 일하는데 사람 모자라다며? 내가 가서 같이 일해 주면 되잖아. 으유~언니가 못오면 내가 가야지 뭐."


그렇게 나는 성질은 다 부려 놓고 언니를 위해주는 착한 동생이 되어 언니의 명절에 언니처럼 직원 유니폼을 차려 입고 일일 알바를 뛰기로 했다.


하지만 당일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와서 그냥 사진이나 찍고 맛있는 거 많다고 홍보글이나 좀 올려주라고.

'뭐 대충 이런 사진 같은 거 말이지?'


듣기에 솔깃한 나는 인플루언서처럼 언니 가게를 홍보해 주는 일이

원 오브 알바가 되는 것보다 더 효율 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알았다고 언니가 일하는 가게로 가서

맛나게 냠냠 공짜밥을 먹고 왔다.


사진을 엄청 많이 찍었지만 그런 홍보성 글들은 이미 인터넷에 수도 없이 많았다.


"아니... 이렇게 글들이 많은데 나를 왜 부른거야?"


언니는 시간내서 와줘서 고맙다고만 하고 별 말은 안했다.


결국 나는

명절에도 바쁘게 서빙하는 언니가 차려주는 특별 추석차림 한상을 맛있게 먹고 온 게 다였다.


언니는 늘 그런식이다.


동생이 아무리 품어준다 해도 언니가 품어주게 마련이었다.


뷔폐식 레스토랑이라

보름달 같이 부푼 배와 노오란 얼굴로...

어린 나를 품어준 언니와

또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우리네 마음도 관계도 한가위만 같아라!


작가의 이전글 하느님께 쓰는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