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성장기 내내 학교 선생님이나 회사 우두머리나 조직 대표의 지원과 믿음을 받으며 행복한 울타리로 픽업이 잘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 예수님께 픽업당해 버리는 대형 사건까지!! ㅎㅎ
내가 아빠를 사랑하고
아빠가 우리를 참 많이도 사랑하셨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어린이가 이해 불가능한 트라우마를 가진 아빠 - 월남전 참여한 기억으로 술만 드시면 전쟁 중에 죽은 사람들 이야기를 하시며 울고 밥상을 뒤엎으셨다 - 는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밥을 함께 먹는 기쁨과 즐거움을 앗아가 버렸다.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이야
아주 느리지만 차츰차츰...
나는 부엌이 가지는 열기와 맛과 정성과
사랑으로 함께하는 식탁에서의 즐거움을 알아가게 되었다.
지금껏 인생길을 걸오며 거쳐간 수많은 부엌을 생각해 본다.
아빠퇴근 시간에 맞춰
강제로 진수성찬을 차려야 했던 엄마의 부엌.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인스턴트로만 때우던 나의 원룸 부엌.
언니와 함께 살면서
없는 요리실력이지만 초보 요리사 시도는 해봤던 투룸 부엌.
쪽방촌 봉사를 나가면서 대형급식시설에서 나날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온 단체식 부엌.
떡볶이집 알바를 하면서
작지만 가성비 좋은 꿈과 열기 가득한 맵단짠단 부엌.
각각 다른 온기와 추억과 가치를 가지며
내 기억 속에 살아 있는 부엌과
그 부엌을 함께 나누었던 사람들.
그들이 새삼 떠오른 건
어제
롯데월드 31층의 마키노차야에 들러서였다.
석촌호수를 매일 산책해도
시그니엘은 딴 나라라고 생각하며 가 본 적은 없는데
마키노차야 블랙 31 오픈에 맞춰
호텔 요리사들이 직접 요리하고 전 직원이 함께 서빙하며
직원 가족들을 불러 잔치를 열어 준 덕에
나는 경이로운 부엌에 초대되었다.
가난을 살기로 예수님과 약속한 몸으로
평생 한 번도 (예수님과 약속 전에 다녔던 해외출장 때도)
맛보지 못한 진수성찬이 가득해서
입은 쉴 새 없이 먹느라 바쁜 와중에
언니와 형부와 엄마와 즐겁고 따뜻한 시간을 가져서
배만큼 마음도 가득 차버렸다.
아마도 장담컨대 이후로도 이토록 크고 따뜻하며
전문적인 부엌을 만나지는 못할 것 같다.
오픈된 주방에서 직접 요리해 주시는 요리사님
한 사람 한 사람의 손길에는 얼마나 많은 열정과 사람을위한 마음이 함께 했을까?
고단함이 느껴지지 않은 매니저님과 직원들의 친절한 미소에는 얼마나 많은 노고와 사랑이 함께 해왔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