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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쁜 이야기 Jul 07. 2023

나를 품어준 사람들

5.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총명함이야. 차야!

중학교 3학년 때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하면

어쩌면 한부모 가정의 어린이라 불우하였을 거라고

지레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두 부모일 때보다 더 행복하게 자랐다.


돌이켜 보면 성장기 내내 학교 선생님이나 회사 우두머리나 조직 대표의 지원과 믿음을 받으며 행복한 울타리로 픽업이 잘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 예수님께 픽업당해 버리는 대형 사건까지!! ㅎㅎ


내가 아빠를  사랑하고

아빠가 우리를 참 많이도 사랑하셨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어린이가 이해 불가능한 트라우마를 가진 아빠 - 월남전 참여한 기억으로 술만 드시면  전쟁 중에 죽은 사람들 이야기를 하시며 울고 밥상을 뒤엎으셨다 - 는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밥을 함께 먹는 기쁨과 즐거움을  앗아가 버렸다.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이야

 아주 느리지만 차츰차츰...

나는 부엌이 가지는 열기와 맛과 정성과

사랑으로 함께하는 식탁에서의 즐거움을 알아가게 되었다.


지금껏 인생길을 걸오며 거쳐간 수많은 부엌을 생각해 본다.


아빠퇴근 시간에 맞춰

강제로 진수성찬을 차려야 했던 엄마의 부엌.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인스턴트로만 때우던 나의 원룸 부엌.


 언니와 함께 살면서

없는 요리실력이지만 초보 요리사 시도는 해봤던 투룸 부엌.


쪽방촌 봉사를 나가면서 대형급식시설에서 나날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온 단체식 부엌.


떡볶이집 알바를 하면서

작지만 가성비 좋은 꿈과 열기 가득한 맵단짠단 부엌.


각각 다른 온기와 추억과 가치를 가지며

내 기억 속에 살아 있는 부엌과

그 부엌을  함께 나누었던 사람들.


그들이 새삼 떠오른 건

어제

롯데월드 31층의 마키노차야에 들러서였다.


석촌호수를 매일 산책해도

시그니엘은 딴 나라라고 생각하며 가 본 적은 없는데


마키노차야 블랙 31 오픈에 맞춰

호텔 요리사들이 직접 요리하고 전 직원이 함께 서빙하며

직원 가족들을 불러 잔치를 열어 준 덕에


나는 경이로운  부엌에 초대되었다.


가난을 살기로 예수님과 약속한 몸으로

평생 한 번도 (예수님과 약속 전에 다녔던 해외출장 때도)

맛보지 못한 진수성찬이 가득해서

입은 쉴 새 없이 먹느라 바쁜 와중에

언니와 형부와 엄마와 즐겁고 따뜻한 시간을 가져서

배만큼 마음도 가득 차버렸다.


아마도 장담컨대 이후로도 이토록 크고 따뜻하며

전문적인 부엌을 만나지는 못할 것 같다.


오픈된 주방에서 직접 요리해 주시는 요리사님

한 사람 한 사람의 손길에는 얼마나 많은 열정과 사람을 위한 마음이 함께 했을까?

고단함이 느껴지지 않은 매니저님과 직원들의 친절한 미소에는  얼마나 많은 노고와 사랑이 함께 해왔던 걸까?


전문적이고 따뜻한 성찬을 대접받은 어제

나는 정말 31층보다 더 높이 뜬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이 모든 즐거운 대접은

우리 삼촌의 지혜를  통해 이뤄졌다.


키다리아저씨처럼

한부모가족으로 어떻게 저떻게 살아온 우리들의 성장기에

우리 가족을 돌보고 지켜주셨던 삼촌은

우리 가족에게 그러하셨듯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수백 명에 이르는 직원들을 지키고 계신다.


내가 예수님을 만났다고

돈은 다 필요 없다며 들어오는 돈마다 남에게 퍼주고 살 때

삼촌은 기업을 퇴사하고 차곡차곡 열심히 장사를 하셨고


내가 기후위기를 걱정하며 환경을 보호하자고 떠들 때

삼촌은 아예 땅을 사서 나무를 심어버렸다.


또 가난을 살겠다고 하면서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돈은 늘 흐르듯이 내게 들어왔는데

그것이 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해서 주시는 용돈이라며 교만 떨던 내가

 땡전 한 푼 없이 옥탑에서 쫓겨날 신세가 되었을 때

막상 알거지로 노숙을 할 순 없는 여자의 몸이란 말이야~~~ 나 변명하던 철없는 나에게

삼촌은 비빌 언덕이 되어주셨다.


겨우 고양이를 품으며 소신껏 살아간다 자부하는

극단적이고 제멋대로인 나 같은 사람도

 아무 일 없던 듯이 품으려면

그 사람의 품이 매우 넓어야 한다는 걸

삼촌을 보며 느낀다.


많은 사람을 아우를 수 있는

아주 큰 울타리가 되게 하는 건

품이 넓은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결국 지혜다.


세상이 힘들어지니 한 때 유행했던 말.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야!


를  

60을 넘긴 나이에도 눈이 초롱초롱하신

우리 삼촌에게 빗대어 보면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총명함이야!


될 것이다.


한 사람 두 사람 품다 보면 어느새

나도 그렇게 품이 넓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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