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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영 Jul 26. 2023

아름다운 귀환


아름다운 귀환. / 벼리영



  캐나다 밴쿠버 공항은 안개가 스며든 듯 적막하고 을씨년스러운 겨울을 껴안고 있었다.

  모든 게 낯설기만 한 그곳 풍경은 곧 쏟아질 것 같은 회색 날씨로 인하여 내 불안을 더욱 가중시켰다.


 너무 먼 곳으로 와 버렸다.


  이제는 내가 가장으로서 모든 일을 책임지며 헤쳐나가야 한다.

  언제는 가장 노릇을 안 했던가. 그렇지만 곁에 남편이 있다는 것은 아무것을 해주지 않아도 버팀목 같은 든든함이 있다.  

그 버팀목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것은 많은 이들이 힘들어하면서도 결별할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이제부터 모든 일을 지휘하고 보호해야 할 보호자는 나 혼자라는 불안감으로 비행기 안에서 쉽게 잠들 수 없었다.

 공지영의 소설 '고등어'를 읽었고 그 외 시간들은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했다.


  하필 내가 떠나온 남쪽 지방엔 호우주의보가 내려지고 사천공항은 모든 비행기 편이 결항이어서 우릴 태운 밴은 부산 김해 공항으로 내 달렸다. 김해 공항도 사정은 만찬가지여서 오전 비행기가 모두 결항된 상태였고 날씨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없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캐나다행은 무기한 연기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그날 한편의 극적인 시나리오가 연출됐다.

우릴 태운 비행기 한대만이 폭우를 뚫고 하늘을 날았고 더 이상 비행기는 뜨지 않았음을 뒤에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어렵사리 인천공항에 도착해 오후 6시 반 캐나다 밴쿠버행 대한항공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이처럼 극적으로 아슬아슬하게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이 줄타기를 하듯 살아온 것 같다.

다행히도 낙오되지 않고 잘 버티고 견디며 살아낸 것에 감사하다.


  시차 적응으로 고생하는 것이 어떤 것인 지 딱히 알지도 못한 채 첫발을 내디딘 밴쿠버 공항, 거대하고 기름진 축복받은 땅 캐나다 밴쿠버

그리고 한 시간을 더 자동차로 달려야 나오는 작은 도시 아보스포드는 나와 우리 아이들이 살아 갈 해외에서의 첫 터전이었다.


  2002년은 내게 또 다른 먼 이국땅에서 5년 반의 인생을 설계하며 힘들었지만 행복하기도 했고 가치로운 생활에 푹 빠져 살기도 했던 삶의 첫 도약의 해로 평생 잊을 수없는 해가 되었다.


  밴쿠버는 겨울이 우기여서 자주 비가 내린다. 스산한 날씨와 차가운 빗줄기는 체감 온도를 낮추고 우울한 환경을 만들기도 해서 자칫 우울증을 앓기 싶다.


    '하필 겨울에 떠나올게 뭐람'


시차적응 때문에 노랗게 뜬 얼굴이지만 아들과 딸의 먼 미래 당찬 꿈을 일구기 위해 내디딘 땅에서 두 눈은 말똥말똥하게 빛났다


캐나다 서부 작은 도시 아보스포드는 뿌연 안개에 휩싸인 미로처럼 차갑기만 했다

중2학년의 아들과 초등 6학년의 딸을 데리고 새로운 곳에서 기러기 가족의 삶은 시작되었다.


  밴쿠버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는 무조건 자야 한다는 경험자들의 말을 곧이들을 필요가 있다.

도착하면 아침이기에 푹 잠을 잔다면 빨리 시차를 극복할 수 있지만 한숨도 못 잔 경우엔 너무 힘든 시차적응의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난 일주일 넘게 밤 낮이 바뀐 생활을 해야 했다.

원대한 바다처럼 뜨거운 태양처럼 요동치는 꿈, 자식의  비상을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며 두려운 가슴을 감추고 긴장과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곳 생활에 적응해 갔다.


  아이들은 쉽게 적응을 했다. 그 당시 틀에 박힌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한국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특기와 취미를 살려나갔다. 자유로운 선택에 의의를 두는 그곳 교육 방식은 아이들의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중2학년이었던 아들은 전교 1~5등을 다투는 공부 잘하는 아이였다. 공부에 열중해야 했기에 운동을 따로 시간 내서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바이올린 연주 또한 수준급이어서 많은 이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던 아들,

모두가 부러워했던 아이도 한국 교육의 치열한 경쟁에서 유발되는 긴장과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한 문제라도 틀리면 순위가 바뀌는 성적표, 나와 아이는 혼연일체가 되어 시험에 대비하곤 했었다.

어느 날 아들은 교환 교수 또는 안식년으로 부모를 따라 외국을 다녀온 친구들의 영어 회화 실력을 보고 부러웠던 모양이다.

지금은 해외를 가지 않아도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현지인처럼 영어를 잘할 수가 있다. 모든 시스템이 그만큼 발전하고 좋아졌다.

그 당시 지방에서는 회화를 잘하기가 쉽지 않았다. 학원들도 대부분 시험 점수 잘 받게 하는데만 신경을 쓰고 가르쳤다.


회화가 서툴렀던 아이들은 유학생이 된 지 1년이 안되어 영어가 쑥쑥 늘기 시작했다. 회화가 필요한 업무를 볼 때면 난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아보스포드에서 8학년이었던 아이는 방과 후 럭비를 했고 달리기가 빠르다며 한국에선 상상도 못 할 공격수까지 맡게 된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는 9학년때 밴쿠버 시와 가까운 코퀴틀람으로 이사를 했고 IB반(영재반)이 있는 포트무디 하이스쿨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많은 유학생들이 부모 없이 현지인 집에서 혹은 한국인에게 홈스테이를 한다. 그 애들 역시 태평양 바다만큼이나 큰 꿈을 안고 비행기 트랩을 올랐을 것이다. 가디언이 보호자 역할을 한다지만 부모에 비할까 그들 역시 직업으로 소임을 다할 뿐이다. 가끔 사랑으로 대하는 가디언을 본다.  마음이 천사 같은 사람을 가디언으로 두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비행기가 삼만 피트 이상을 날아갈 때 아이를 두고 홀로 귀국하는 아이의 엄마는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간간이 훌쩍이는 소리는 비행기 안을 공허하게 메우며 많은 이들을 아프게 한다.


 홀로 이방인이 된 아이들은 어둠 속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제법 모범생이었던 아이가 마약과 술에서 자유롭지 못해 망가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부모의 보호와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 아직 성인이 아닌 미숙한 아이들일 뿐이다.


  무엇 때문에 사는가!

우린 거대한 세상의 물살에 표류하다가 소금에 절여진 물고기처럼 생을 마칠 것이다. 삶의 희망도, 응어리도, 두려움도, 외로움도 모두 짠물에 녹아 형체마저 사라져 버리는 물고기가 되고 말 것이다.


  무엇 때문에 여기 있는가!

  삶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난 아이들의 꿈을 핑계 삼아 평범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고자 했던 삶의 이단자는 아닌가!  무수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지럽혔다.


  칠리왁 프레이저 강을 오르는 연어 떼를 보았다.

큰 바다로 나아 간 새끼 치어들은 산란할 때가 되면 본향으로 다시 거슬러 오른다

치헬리스 부화장으로 오르는 계곡에 바글거리는 연어들

  높은 장벽을 뛰어넘느라 살점 찢기며 피나는 그들의 사투는 눈물겨웠고 가슴이 아렸다. 힘차게 응원했지만 결국 장벽을 넘지 못하고 죽어 가는 물고기

 삶의 목적은 젊을 때나 늙을 때나 끊임없는 도전이다. 도전은 죽음 직전까지 계속되기도 한다.


 해외에 내 던져진 우리 아이들,

저 연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수한 경쟁의 시대는 한고비 넘으면 또 다른 장벽의 고비로 힘들기만 하다.

홀로 감내해야 하는 아직은 서툴고 어린 우리 고국의 아이들

  저 아이들을 사지로 몰기도 하는 어른들의  욕심과 무지함을 개탄하면서 불편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열세 살 아이였던 아들과 열두 살 딸은 잘 성장해 주었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자신들의 세계에서 크게 도약 중이다.

미국 게임 회사인 EA에 취직해서 목표를 성취한 아들은 여전히 밴쿠버에 산다.

 그동안 팬데믹 코로나로 하늘 길이 막혔었다.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어 영상 속에서 안부를 묻고 보고픔을 달래야 했다.


 딸과 사위는 성공한 젊은 사업가로 자리를 잡았다. 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와 손자를 보기 위해 김포행 비행기에 자주 오른다.


  금년 8월 아들과 며느리 귀여운 손자가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4년 반 만이다.

아들은 해외에서 뿌리를 내렸지만 태어난 고국, 대한민국을 누구 못지않게 사랑하는 것을 안다.

아름다운 아들네의 귀환을 마중하기 위해 벌써부터 마음은 인천 공항으로 달려가고 있다.

   


2022. 7. 1


그림과  디자인- 벼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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